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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하신 일을 보라 한일호(안식일인가? 형무소인가)

작성자 : 김동원 2018-06-26 조회 : 225 댓글 : 3


안식일인가, 형무소인가

기밀실 브리핑

6사단 공병참모부 군수과장을 할 때였다.

우리나라 국군이 조직되면서 국군이 사용할 땅들을 가에로 징발하여 사용하였다.

 이러한 때인 1960년대, 고 박정희 대통령이 군사혁명을 일으켜 경제발전을 이룩하여 나라가 점점 부유해지면서 국방부가 점진적으로 강제 징발하여 사용하고있던 토지에 대한 보상을 하기 위해 전군에 걸쳐 부대마다 사용하는 토지를 파악하게 되었다.

그래서 6사단이 사용하는 토지 전체를 지목별 면적이 얼마나 되는지를 파악하도록 하여 국방부에서 서기관급 이상의 7명이 6사단에 내려가면 사단기밀실에서 브리핑을 하라는 공문이 내려 온 것이다.

 

 이 장의 제목 “안식일인가, 형무소인가”를 보아 이 날이 어느 날이었겠는가?

두말할 것도 없이 바로 안식일이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러한 일로 인하여 더욱 연단하시며 더 큰 믿음을 발휘하게 하시며 나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증거 하는 일에 더 깊고 풍성한 경험을 하게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안식일은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엿개 동안에 창조하시고 제 칠일이 되는 날에 안식하셨고 이날을 거룩하게 하시며 복을 받는 날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였다.

 

출애굽기 20:8~11에 말씀하시기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일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니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너무나도 분명한 진리이기 때문에 그때나 지금이나 신앙생활 61년의 “믿음 회갑”을 맞이할 동안 금요일 저녁집회와 토요일 안식일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지켰다.

이러한 까닭에 이 공문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왜 그런가 하면 군부대가 사용하는 토지에 관하여 시청이나 군청에 드나들면서 업무를 취급하는 장교는 사단 내에 단 한명의 실무 장교인 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명령에 살고 죽는 군대에서

나는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국방부에서 오시는 분들에게 사정이 생겨 안식일을 피하여 오도록 해 달라는 기도였다. 하루하루 진지하게 기도하면서 혹시나 하고 기다렸지만 좋은 소식은 오지 않았고 이제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몹시 불안하였다. 드디어 금요일이 돌아왔다.

그 당시에 경기도 가평군 하면 현리에 가정 예배소가 있었다.

이곳에서도 나는 안식일마다 교과공부를 가르치고 설교를 하였다.

금요일 저녁예배를 들고 돌아왔다. 당시 결혼을 하여 자녀까지 있었지만 가정 형편상 혼자 장교 BOQ에서 살았다. 혼자 심한 고민에 빠졌다.

만일 안식에 내가 부대에 안 나가서 사단 사령부 기밀실에서 사단장과 사단 참모들, 국방부에서 오신 손님들을 모시고 6사단이 사용하는 토지에 대하여 브리핑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군대는 명령에 살고 죽는 것이다. 전시 같으면 이러한 사항에 브리핑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총살감이다. 나 자신이 형무소를 가고 안 가고는 둘째이고 6사단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할 때 도무지 내 자신도 인식일 예배를 드리러 간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 당시 믿음으로는 안식일을 범하는 일도 결코 용납할 수가 없었다. 정말로 진퇴양난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실감하게 되었다. 부대와 사단장을 생각하면 도무지 안식일을 지킬 수가 없었다. 또한 한 평생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영하 25℃를 오르내리는 모진 추위 속에서도 철저하게 고수해 온 안식일을 범할 수도 없었다.

 

 

형무소 길을 택하다

밤 12시가 넘도록 마음에 결심이 서지 않아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진땀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였고 남에게 이야기하기도 햇지만 진실로 진땀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가만히 앉아만 있는데도 내복이 땀에 축축하게 젖어 오는 것이었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새벽 1시쯤 되었을 때 기도를 열심히 하고 잇는데 문득 다니엘과 세 친구의 일이 생각이 났다.

아마도 이런 것을 가리켜 성령의 음성이라고 하는 것일 것이다.

 다니엘 3:!7~18에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이때 나의 결심이 서게 되었다. 안식일인가 형무소인가를 놓고 그렇게도 결정이 되지 않아 고민하던 나의 마음은 형무소 가는 길을 택하였다.

사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부대가 당할 어려움과 모친과 처자식을 생각하면 도저히 그렇게 결정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일단 결심을 하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고 믿음으로 승리의 길을 택한 것에 대하여 영적으로 위로를 받았다.

몇 시간 잠을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니 만감이 교차되는 착잡한 심정이었다. 아침식사를 대충하고 교회에 갔다. 안식일학교 교과공부를 진행하려고 하는데 군수과 서무계가 나의 지프차를 가지고 데리러 왔다. 부대에서 야단이 났다는 것이다. 빨리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조금 후 막 설교예배 시간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선임 하사가 또 데리러 나왔다.

그가 하는 말이 “과장님, 정신 나갔습니까? 아무리 신앙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누가 봐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면서 내 소매를 잡아끌며 차에 타라는 것이었다. 나는 내 입장과 각오를 설명하면서 그냥 들어가도록 하였다. 그리고 교회로 다시 들어와서 어떻게 제정신으로 설교를 하였는지 몰라도 예배를 마친 다음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사항을 교인들에게 설명을 할까 말까 하다가 말하지 않기로 하였다.

 

이유는 당시 교인으로 민간인 10여 명, 군인 형제 7명 정도가 있었는데 그 이야기를 하면 마음 약한 여자들이 근심하고 고통을 느낄 것 같았고 군인 형제들에게는 공포심을 느끼게 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 자신은 이 어려움을 만난 것을 근심하거나 낙망하지 않고 주님께서 잘 해결해 주시리라는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비난을 받거나 형무소를 간다 할지라도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셨으니 옳은 일을 위해 굳게 서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고, 십자가 없이는 면류관도 없다는 것을 생각하며 온갖 근심걱정을 내려놓기로 하니 마음에 평화와 담대함이 생겼다.

 

 

백차를 기다렸으나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는 이제 헌병 백차가 잡으러 올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3시, 4시, 5시가 되어도 잡으러 오지 않았다. 그래서 이상하게 생각하고 6시쯤 되어 부대로 들어갔다.

직속상관인 공병참모에게 갔다. 그때 그 광경은 입술로 표현하기 싫을 만큼 고통스러운 장면이었다. 장교니까 구타는 하지 않았지만 갖은 모욕과 욕설과 신앙에 대한 저주를 퍼부으며 야단을 치다가 내가 보기 싫다는 뜻으로 밖으로 나가 버렸다.

나는 그 순간 신앙적으로는 잘한 일이지만 부대와 모든 사람들에게 너무나 잘못된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고 고개를 숙이고 한참동안 있다가 내 숙소로 돌아와서 다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러한 경우에 신앙만을 생각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군복을 입고 있는 사람이 아닌가? 게다가 일반 사병이 아니라 계급장을 단 장교로서 국가로부터 보수를 받으며 부하를 교육하고 지도하는 장교가 아닌가? 생각하면 할수록 더 큰 죄인이 된 것 같았다. 그러나 한편 “안시일을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치 아니 하여야 하리니 이같이 행하는 사람, 이같이 굳이 잡는 인생은 복이 있느니라”하신

이사야 56:2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며 비록 조소와 온갖 박해를 받더라도 그분의 창조의 기념일이요 권위의 표요 그분의 명령을 따를 신성한 의무가 있는 이날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날 헌병대에서 잡으러 오지 않은 것은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이 일은 군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서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고 사단장에게 브리핑을 해야 할 실무 장교가 갑작스럽게 병이 나서 못 왔다고 보고하고 준비된 자료만 제출하였다는 것이었다.

 

 

찢어진 편지

나는 그날 밤에 만리장서(萬里長書)의 편지를 썼다. 그 내용은 나의 신앙 때문에 부대와 지휘관들에게 있을 수 없는 죄를 지었으니 육군 본부에 찾아가서 사유를 설명하고 하루속히 예편시켜 달라는 부탁을 하겠노라고 하는 내용의 편지였다.

그 다음날 아침 참모회의가 끝난 다음 과장들이 다 나간 다음 참모에게 A4용지 4장에 달하는 편지를 건네 드렸다. 그가 받아 들고 2장 정도를 읽은 다음 참모는 그 자리에서 박박 찢어 버리는 것이었다. 왜 그랬을까? 나쁜 편지도 아닌데... 그 이유는 꼭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다음과 같은 이유였을 것이다.

나는 사실 안식일 문제 때문에 누를 끼칠 때가 있기는 하지만 항상 근무에 모범적이었고 항상 모범부대를 만들었으며 표창장도 군대에서만 10여 개를 받았다. 안식일 하루 빠지는 대신 평일에는 몇 배의 일을 더 하였다. 그래서 이번 일에는 한없이 밉지만 근무에는 언제나 변함없이 정직하게 그리고 성실하게 하기 때문에 그러한 양면의 마음에서 그 편지를 찢었다고 생각이 된다.

 

이글은 

한일호 장로님이 쓰신 책 내용의 일부분이다.

책이 두껍지 않아 단숨에 읽혀지는 책, 교회 청년들에게 반듯이 1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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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원 : 2018-06-26 09-31

맨 뒷장의 장로님의 약력을 보면서 29세 때 호남합회 본부교회에서 장로 안수 받음 ...
모르긴 해도 우리나라에서 거의 최연소 장로님이 되신 것 같네요 와우!! 놀랍군요
68년간의 신앙 생활 중 48년간 목회자 부재교회에서 봉사... 그야말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하나님이 크게 쓰셨습니다. 할렐루야 !!


김동원 : 2018-06-26 09-32

안식일의 중요성을 말씀하실 때 목사님들께서 위의 내용을 그냥 천천히 읽어만 주셔도
엄청난 파워와 감동을 경험하실 것이라 확신합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보라 2017년 3월 12일 3쇄 발행
서적주문: 010-8945-1844 모두 220페이지, 현재 장로님은 노목교회에 계십니다.


김동원 : 2018-06-26 09-32

우리 막둥이가 타이핑 친거라 혹 오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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