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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클로스와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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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kbtlove@kuc.or.kr 입력 2002.1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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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니콜라스’에서 와전 ... 코카콜라에서 형상화
빨갛게 상기된 볼에 드리운 인자한 미소, 부드럽게 곱슬거리는 흰 턱수염과 빨간 모자에 까만 부츠를 신고 어깨엔 커다란 선물 보따리를 둘러멘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모습은 1931년 한 콜라회사의 광고에 사용되기 위해 개발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산타는 여러 가지의 전설과 신화들 속에서 태어난 인물이다. 다음 이야기는 그 중 하나이며, 그의 인자함이나 사랑은 어린이들에게 기쁨을 전해주고 있다.

'산타클로스'라는 이름은 '성 니콜라스'라는 말이 와전된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말로 제대로 부르자면 성 니콜라스지만 흔히 산타클로스라고 부른다. 니콜라스는 주 후 280년경 소아시아 루시아 주 파타라란느 항구에 사는 부자이고 진실한 크리스트 교인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니콜라스가 어렸을 때에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게 되어 혼자 남게 되었다.

니콜라스는 장성한 후에 하나님께 바치기로 결심하고, 미라라는 곳으로 이사해갔다. 그런데, 그 곳의 감독이 죽게 되어 후임자를 뽑아야 되게 되었다. 위원들이 모여서 적임자를 생각해 보았으나 결국 뽑지 못하고 헤어지게 되었다. 그날 밤 위원들 중에서 가장 나이 많은 노인이 꿈을 꾸었다. 내일 아침 교회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의 이름이 니콜라스이니 그를 감독으로 삼으라는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이 노인은 교회에서 꿈대로 젊은 청년을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 이름을 물었더니 니콜라스라고 대답했다. 니콜라스는 매일 아침마다 교회에 기도하러 다녔던 것이다. 늙은 위원은 꿈에 받은 지시가 꼭 맞으므로 니콜라스에게 감독이 되어 달라고 권하였다. 니콜라스는 처음에는 나이가 젊기 때문에 할 수 없다고 사양했지만, 위원들의 권유로 마침내 감독이 되기로 하였다.

니콜라스는 감독이 된 후에는 하나님을 잘 섬겼으며, 억울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였다. 니콜라스가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게 되고, 이름이 높아지게 된 것은 그의 너그러운 마음과 따뜻한 동정심 때문이었다.

어떤 마음씨 착한 귀족이 불행하게 모든 재산을 잃고 곤경에 빠지게 되었다. 그런데, 그에게 딸 세자매가 있었으며 그 중에 과년한 딸이 혼처는 났으나 혼인 지참금이 없어서 혼인할 수 없었다. 그래서 부모와 딸이 함께 염려하고 있었다. 그때의 그 곳 풍속으로는 여자가 시집을 가려면 상당히 많은 재산을 가져야 하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 사정을 소문으로 전해들은 니콜라스 감독은 돈을 가득히 담은 주머니를 밤에 남모르게 문 안에 집어 넣어주었다. 과년한 귀족의 딸은 그 돈으로 혼인을 했다. 얼마 후에 둘째 딸이 혼기에 이르렀을 때에 니콜라스가 전과 같이 하여 둘째 딸도 혼인하게 되었다. 셋째 딸이 혼기에 달하여 결혼해야 하게 되었을 때 귀족부부는 첫째, 둘째 딸을 위하여 남모르게 많은 돈을 준 사람을 고맙게 여기는 동시에 혹시 셋째 딸을 위하여서도 많은 돈을 주지 않을까 생각하고 이번에는 그 은인을 꼭 알고 싶었다.

그래서 귀족부부는 꼭 고마운 은인을 알기 위해 정신을 차리고 조심스럽게 밤마다 지키고 있었다.

그랬더니 어느 날 밤 과연 어떤 사람이 뒷창문을 바시시 열고 가득히 돈을 담은 주머니를 들여보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려고 했다. 귀족은 바삐 그 뒤를 쫓아 고마운 은인을 붙들었다. 귀족은 그가 많은 사람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는 이름 높은 성 니콜라스 감독인 것을 알았다.

귀족은 감독에게 수없이 고맙다는 말을 하고 하나님의 축복이 니콜라스에게 있기를 빌었다. 니콜라스 감독은 귀족에게 비밀을 지켜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그러나 니콜라스 감독의 은혜에 감격한 귀족은 여러 사람에게 고마운 이야기를 했다.

이 소문이 널리 퍼져서 많은 사람들은 성 니콜라스를 더욱 존경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그런데 니콜라스가 돈을 놓고 갈 때, 귀족의 딸이 난로가에 말리려고 걸어둔 양말 속에 넣고 갔다고 해서 요즈음도 아이들은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양말을 걸어두고 잔다.

※ 산타의 이미지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저 옛날, 소아시아(현재의 터키)에 위치한 미라 시(市)의 주교였던 성 니콜라스(270-310)는 12월 6일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은 그 날 성 니콜라스를 기념하는 것이다. 매우 관대했던 것으로 유명한 그는 중세에 어린 아이들의, 그 다음에는 초등학교 아이들의 대장이 되었다.

16세기에 발생한 신교 개혁 이후에, 성 니콜라스 축제는 일부 유럽 국가에서 폐지되었다. 그렇지만 네덜란드인들은 이러한 고대의 가톨릭 관습을 유지했다. 그리하여, 네덜란드 어린이들은 계속해서 12월 6일 밤이 되면 Sinterklaas(성 니콜라스)의 방문을 받았다.

17세기 초에 네덜란드인들은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뉴암스테르담이라 불리는 식민지를 건설했는데, 이곳은 1664년에 뉴욕이 되었다. 몇십 년 사이에 성 니콜라스를 기념하는 네덜란드의 이 관습은 미국에 확산되었다.

미국인들에게 Sinter Klaas는 오래지 않아 산타클로스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얀 수염을 달고, 모자 달린 긴 망토 차림에, 혹은 때로는 심지어 주교의 복장을 한 노인의 모습으로 그려진 이 다감한 할아버지는 여전히 교화적인 인물로 남았다. 그는 선물을 받을 자격이 있는 아이들에게는 선물을 주었고, 배은망덕하고 버릇없는 아이들에게는 벌을 주었다.

몇 십년이 지난 후, 기독교 사회는 이 "아이들의 축제"가 <아기 예수>의 축제와 좀더 가까워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기독교 집안에서 성 니콜라스는 그때부터 12월 24일 밤에 순회를 했다.

선물을 나눠주는 산타클로스의 다양한 모습을 단 한 사람으로 통일시킨 공적은 미국의 언론에게 있다. 산타클로스라는 인물을 통일시키는 데 가장 확실하게 기여한 사건은 의심할 여지 없이 Clement Clarke Moore의 유명한 시가 발표된 일이었다. "A Visit From St. Nocholas"라는 제목의 이 시는 1823년 12월 23일에 뉴욕의 Centinel 신문에 처음으로 발표되었다. 그 후 몇 년 동안 미국의 여러 주요 일간지에서 다시 다루어진 이 시는 여러 나라의 언어로 번역 되었고 전 세계에 널리 보급되었다.

※ 빨간 산타 복장과 하얀 수염은 ?
산타클로스의 이미지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빨갛게 상기된 볼에 드리운 인자한 미소, 부드럽게 곱슬거리는 흰 턱수염과 빨강 모자에 까만 부츠를 신고 어깨엔 커다란 선물 보따리를 둘러멘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굴뚝을 드나드는 한 장의 그림 같은 환상은 이제 너무나 친숙해진 나머지 상상이 아닌 현실처럼 여겨질 정도다.

어린이들은 물론,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전설 속의 인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어른들조차 쉽사리 깨고 싶어하지 않는 꿈과 환상의 주인공인 산타클로스.

이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이미지가 1931년, 「코카 콜라」 광고에 사용되기 위해 개발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당시만 해도 산타클로스의 전설은 나라마다 다양했고 기념방식과 기념일도 달랐으며, 이름조차 생트 헤르(Sanct Herr), 페레 노엘(Pere Noel), 크리스 크링글(Kris Kringle), 크리스마스의 아버지 등과 같이 제각기 다르게 알려져 있었다.

또한 산타클로스의 이미지 역시 꼬마 요정의 모습에서부터 장난꾸러기 요정, 싸움꾼 난쟁이 등으로 다양했는데, 「코카․콜라」 광고를 담당했던 미국의 화가 헤든 선드블롬(Jhaddon Sundblom)은 산타클로스를 작고 어린 요정의 모습이 아닌 현재 우리에게 알려진 이미지로 창조해냈는데, 산타클로스의 트레이드마크인 빨간 옷과 흰 수염은 바로 「코카 콜라」의 로고색과 거품을 상징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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