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인도 신학대학 설계한 ‘학생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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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말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한 갤러리. 삼육대 건축학과 제22회 졸업전시회 ‘인권건축’이 열리고 있었다. 도시공간을 해체하고 재구조화하며,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야심만만한 작품들이 가득했다. 그 사이로 소박한 2층짜리 건축모형이 눈에 들어왔다. 작품명은 ‘비움을 위한 채움’. 최근 인도에서 개교한 게이트 선교신학대학을 설계한 작품이다. 캠퍼스 건립안에 반영되는 실제 프로젝트로, 학생작품으로서는 전례가 매우 드물다.
작품을 설계한 김현중(건축학과 5학년, 지도교수 이태은 이윤하) 학생은 “실제 건립 프로젝트인 만큼 경제성과 기능에 집중했다”며 “형태는 자연스럽게 따라왔다”고 말했다. “인도 특유의 기후환경에 대응하고, 건축주의 한정된 예산에 맞는 설계안을 제시하는데 힘을 기울였습니다. 모든 건축가가 그러하듯 저 역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부족한 예산 때문에 더 경제적인 안과 더 매력적인 안 중에서 늘 고민을 겪어야 했다. 가령 이런 것. 건물의 층고를 높이면 개방감을 주고 사용하는 사람에게 경외감을 자아낸다. 하지만 건축비가 많이 든다.
매 순간 ‘이 정도 사치는 가치가 아닐까’ ‘이 정도는 드는 품에 비해 얻는 것이 많지 않을까’ 같은 고민과 계속 마주해야 했다. 그럴 때마다 지도교수와 상의하고 건축주를 설득해 가며 자신의 생각을 관철하기도 타협하기도 하며 최선의 답을 찾았다. 사람이 사용할 실제 건물이었으니까.
“기본에 충실한 가장 보통의 건축가가 되고 싶다”는 김현중 학생을 전시가 열리던 갤러리에서 만났다.
■ 설계봉사
게이트 선교신학대학(GATE Adventist Theology College)은 지난 7월 4일 북인도 웨스트뱅골주 팔라카타지역에 있는 1000명선교사훈련원 부지에서 개교했다. 광활한 북인도를 비롯해, 인접국인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네팔, 부탄 등 서남아시아 선교의 전초 기지가 되겠다는 비전을 품고 있다.
아직은 학교로 들어가는 진입로 등 기초 토목공사 단계다. 일단 45명의 학생이 이번 학기에 입학해 1000명선교사훈련원 건물에서 공부하며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내년 3월부터 2기 신학생이 더 들어오기에 새로운 교실과 기숙사 건축이 시급한 상황이다.
문제는 예산이다. 게이트신학대학 건축은 모금으로 진행된다. 전체 모금 목표액 200만 달러(한화 약 26억 5000만원) 중 2억원까지 모금됐다. 전체 10% 수준이다.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1000명선교사훈련원 배진성 목사는 “아직 미국과 한국 등지에서 모금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 프로젝트의 시작이 궁금하다.
- 지난해 2학기 어느 날 이태은 교수님께서 인도로 설계봉사를 함께 가자는 제안을 해주셨다. 아직 마스크를 완전히 벗은 때가 아니어서 처음에는 조금 망설였으나, 교수님께서 정말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하셨다. 고민하다가 겨울방학 때 함께 떠나게 됐다. 물리치료학과 팀도 같이 갔다. 물리치료학과 팀은 현지에서 선교봉사를 하고 나와 교수님은 설계봉사를 했다
▲ 설계봉사가 무엇인가.
- 말 그대로 설계를 해주는 거다. 빈 부지가 있고 여기에서 뭘 하고 싶다는 구상은 있는데 구체적인 계획안이 안 잡혀있으니 대지를 답사하고 분석해 계획안을 짜주는 거다. 사실 처음부터 내가 설계를 맡은 건 아니었다. 지적도만 정리하면 된다고 들었는데 현장에서 갑자기 바뀌었다.
▲ 당시 심경은.
- 솔직히 달갑지는 않았다. 졸업 학기를 앞둔 시점이어서 졸업설계로 진행해야 했다. 하지만 이미 졸업설계 아이템을 정하고 어느 정도 진행도 된 상황이었다. 더구나 실제 프로젝트라서 부담이 컸다.
봉사 기간 현지 분들에게 너무 많은 환영과 호의를 받았다. 어떤 방식이든 갚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배진성 목사님은 ‘이곳을 학생들이 꿈을 키울 수 있는 대학으로 사용하고 싶다’고 하셨다. 내가 가진 유일한 재주는 설계뿐이라고 생각했다. 감사한 마음으로 작업에 착수했다.
▲ 대지를 보니 어떻던가.
- 막상 하겠다고는 했지만, 기형적으로 긴 형상의 대지에 놀랐다. 29,926.92㎡로, 대략 9,050평 정도다. ‘이렇게나 길고 넓은 땅을 내가 계획할 수 있을까’ ‘그 계획이 성공적일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다.
비움을 위한 채움
▲ 작품의 핵심 아이디어는 무엇인가.
- ‘비움을 위한 채움’이다. 건축에서 채워진 공간을 ‘솔리드(Solid)’, 비워진 공간을 ‘보이드(Void)’라고 한다. 기존의 건축계획들은 기능이 있는 내부공간(솔리드)을 먼저 채우고 자투리가 남으면 이를 야외공간(보이드)으로 조성하곤 한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외부공간을 먼저 발생시키고 내부는 그 외부를 감싸도록 했다. 외부공간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접근이다. 비우기 위해 채우는 방식이다.
▲ 예를 들어 설명해 달라.
- 신학관(본관)을 ‘E자’ 형태로 계획해 건물 사이에 빈 공간 2개를 발생시켰다. 이런 외부공간은 다양한 이벤트가 발생하는 흥미로운 공간으로 활용된다. 각각 ‘솔로몬 마당’과 ‘램프웨이 가든’으로 명명해 사람이 모이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조성했다. 이처럼 ‘빈 공간에 대한 배려’라는 주요 콘셉트는 신학관에만 국한되지 않고, 기숙사와 사택 등에도 계속 적용된다.
▲ 왜 그렇게 했나.
- 기후에 대한 고려를 빼둘 수 없었다. 인도는 매우 덥다. 여름에는 말할 것도 없고 한겨울에도 섭씨 26도를 오르내린다. 여름에는 비가 엄청 많이 와서 매우 습하다. 사용자의 쾌적성을 위해 실내 열기를 효과적으로 배출해야 한다.
일단 건물 매스(덩어리)를 얇게 했다. 건물이 얇으면 외부와 맞닿은 면적이 넓어 더 시원하다. 또 본관 가운데 중정을 둘러싼 각 실의 복도를 최대한 밖으로 노출해 외기와 직접 면하게 했다. 그 와중에 복도가 그늘질 수 있도록 위층이 복도의 지붕이 되도록 했다. 이처럼 기능에 집중하다 보니 형태의 반복적 아름다움은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 부지가 넓기에 가능했을 것 같다.
- 이 프로젝트의 가장 큰 강점이었다. 광활한 부지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품을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땅값이 매우 비싼 도심에서는 한정된 대지 면적에서 용적률과 건폐율을 끌어올려 사용 공간, 즉 솔리드를 최대한 넓혀야 한다. 물론 실내정원이나 아트리움처럼 외부를 내부로 끌어들이려는 시도가 없는 건 아니지만, 경제성으로 인해 일반화되기 어려운 방식이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복도 하나당 한 개 실만 두는 편복도 방식을 채택했다. 우리나라에서는 2개 실을 두고 가운데 중복도를 두는 게 효율적인 공간 활용 방법이지만, 이 프로젝트는 환기를 좋게 하는 게 더 효율적인 안이었다. 건축적으로 무엇이 ‘효율’이냐는 측면에서 우리나라와 인도의 상황이 달랐다.
구글지도가 있으니까
▲ 실제 건립 프로젝트였기에 건축가로서 타협한 부분도 있을 것 같은데.
- 현실성은 없어도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들이 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기능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덥든 말든 건물을 두껍고 예쁘게 만들고 실내에는 에어컨 넣으면 되는데, 그런 건 지양했다. 층고도 2개 층이 전부다. 층고를 높이면 개방감이 있고 사용하는 사람이 경외감도 든다. 하지만 건물이 높아지면 공사 난도가 올라간다. 그만큼 건축비용이 많이 든다.
▲ 예산에 대한 고려는 어떻게 했나.
- 건축비 상한선이 주어진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성금으로 모아야 하니 최대한 아낄 수 있는 방안으로 작업했다. 예산이 얼마 있어서 그 선에서 지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그 금액까지 계속 모아야 하는 상황이니까. 지금도 모금 중이라고 들었다.
▲ 겨울방학 기간 짧은 답사 한 번만으로 설계가 가능한가.
- 구글지도가 있으니까.(웃음) 봉사 기간에는 대지조사를 하면서 매스와 기본 설계개념에 대한 구상을 마쳤다. 한국에 와서는 배 목사님과 카카오톡으로 수시로 의견을 나눴다. 또 현지에 중고등학생 정도 되는 목사님 아들이 있었는데, 요청하면 드론을 띄워서 부지를 찍어서 보내주거나 정확한 길이 측정을 해주기도 했다.
물론 모든 건축가가 그러하듯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여러 방향에서 수많은 안을 구상했다. 매주 2~3번씩 두 지도교수님의 깐깐한 크리틱을 받으며 토론하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며 장점은 남기고 단점을 걷어내면서 현재 안까지 오게 됐다.
▲ 프로젝트를 맡은 걸 후회한 적은 없는지.
- 시작 당시에는 고민이 많았지만, 막상 시작하고 나서 후회한 적은 없다. 매사에 최선을 다하자는 주의이기에 그 상황 속에서 내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해왔다. 지난겨울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은 선택의 연속으로 현재에 올 것이라 생각하기에 후회는 안 한다.
가장 보통의 건축가
▲ 삼육대 건축학과는 매년 졸업작품전시회 주제를 ‘인권건축’으로 정하고 있다. 학과의 교육철학이라고 들었다. 학교에서 배운 ‘건축’이란 무엇인가.
- 내가 감히 논하기엔 너무 깊은 개념이다. 그래도 짧게 이야기하자면, 건축은 얕게는 인간을 보호하는 공간을 짓는 일이고, 깊게는 누군가의 인생을 설계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건축은 공간을 짓는 행위이다. 처음에는 자연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지어졌지만 점차 상징적 의미와 주변 세계에 대한 인식을 반영하고 사용자의 움직임을 유도하는 공간을 만들기까지 이어져 왔다. 사용자는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지만, 프로그래머인 건축가가 그려놓은 동선을 따라 걷고 건축가가 미리 설정한 층고에 압도되기도, 안락해하기도 한다.
벽체의 재질, 조명의 조도, 실이나 복도의 가로·세로·높이·폭까지도 공간의 모든 요소 하나하나를 건축가가 정하기에 건축은 곧 사용자의 삶을 디자인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러한 건축이라는 방식으로 소외된 이웃에게 빛을 주고,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바르게 해결해 나가고, 다음 세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환경적 문화적 권리를 배려하는 것이 인권건축이며, 건축이 가진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배웠다.
▲ 졸업을 앞두고 있는데 어떤 건축가가 되고 싶나.
- 가장 보통의 건축가가 되고 싶다. 기념비적이고 특별한 공간을 짓는 건축가가 된다면 정말 좋겠지만, 나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너무 잘하려고만 하면 더 못하게 된다는 걸 지금은 알고 있다. 사소한 기본 하나하나 실수하는 것 없이, 사용자를 배려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공간을 짓는 보통의 건축가가 되고 싶다.
▲ 설계는 끝났지만, 프로젝트가 마무리된 것은 아니다. 끝으로, 건축가로서 바람은.
- 설계하는 내내 항상 기도했다. 설계를 잘하는 것보다 모금이 잘 이뤄지도록. 평등한 교육의 기회조차 없는 척박한 북인도 땅에서 학생들이 꿈을 꾸고 그 꿈이 이뤄지는 학교가 되었으면 좋겠다.
※ 이 기사는 삼육대학교 커뮤니케이션팀에서 직접 작성한 보도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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