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특별재난지역 선포된 청양군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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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는 역대급 피해를 남기고 사라졌다. 특히 하천이 범람하고, 제방이 무너진 충남 청양군의 상처가 깊다. 정부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할 만큼 피해가 극심하다.
땀 흘려 일구던 농경지는 밀려든 토사로 뒤덮였고, 푸르게 영글어 가던 작물은 하루아침에 회색빛으로 변했다. 출하를 앞둔 과일은 미처 걷어내지 못한 진흙 속에 파묻혀 썩어가고 있다. 수확은커녕 부디 나무가 살아나기만 바랄 뿐이다.
지난 19일 충청합회장 김삼배 목사와 총무 고윤호 목사, 보건복지부장 안명찬 목사 등이 청양군 장평면 일대 재림성도 농가를 찾았다. <재림신문>도 동행해 피해현장을 살폈다.
■ 강신용 장로(장평교회) … 사과나무 200주 훼손
사과 재배 하우스에 들어서자 숨이 턱 막혔다. 사람 키보다 높게 차오른 흙탕물을 뒤집어쓴 나무는 온통 잿빛이었다. 범벅이 된 진흙은 언제쯤 걷어낼 수 있을지 가늠 조차 어렵다. 이번 물난리로 훼손된 사과나무는 200주. 낙과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추정하는 피해 규모만 2500만 원이 훌쩍 넘는다.
강신용 장로는 “올해 수확은 포기했다. 다만 나무가 죽지 않고 살아나기만 기도할 뿐”이라며 흘러내리는 구슬땀을 닦았다. 물탱크 차량을 동원해 나뭇잎의 진흙을 씻어내지만, 역부족이다. 걱정은 나뭇잎의 진흙만이 아니다. 바닥 흙더미를 아직 다 걷어내지 못했다. 마른 잎의 진흙을 씻어내느라 온종일 물을 뿌리고 있어 바닥은 뻘이나 다름없다. 뿌리가 숨을 쉬지 못해 썩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돼 가슴은 타들어 간다.
강 장로는 “예배드리는 중에는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줄 꿈에도 몰랐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예배하고 교제를 나누던 안식일이었다. 실제로 16일 집중호우가 내릴 때도 하우스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그날 밤 11시40분쯤 인근 하천 제방이 터지며 일대가 순식간에 물바다로 변했다.
사과품종은 부사의 일종인 피덱스. 당도가 높고 맛이 좋아 프리미엄 품종으로 인정받는다. 10년 전 친구의 권유로 심었다. 지난해 5평 규모의 저온저장고 두 동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수확률도 좋았다. 열매가 아직은 탁구공만한 크기밖에 되지 않아 현재로서는 낙과를 활용할 수도 없다. 그나마 정부 보상을 기대해야 하는데 이마저도 언제, 얼마나, 어떤 기준으로 지원할지 몰라 갑갑하다.
■ 이재복 장로(장평교회) … 샤인머스캣·감나무 묘목이 48시간 동안 물속에
“나무가 살기 위해 잎을 떨어뜨리는 거예요”
이재복 장로가 맥없이 잎이 떨어지는 샤인머스캣 묘목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나무도 살기위해 발버둥을 치는데…”라며 그는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총면적 1200평에 이르는 비닐하우스 5동에는 샤인머스캣 묘목 5000주와 감나무 묘목 5000주가 빼곡히 자리하고 있었다. 피해규모만 1억5000만 원을 넘는다. 지난 2년 동안 정성을 다해 길렀고 내년에 출하를 앞둔 상황이어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나무는 48시간 동안이나 물속에 잠겨 있었다. 이 가운데 얼마나 살아날지 알 수 없다. 이 장로는 “나무의 경우 보름은 지나 봐야 살아날지 알 수 있다. 지금은 어떻게 될지 알 수도 없고 손 쓸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1만 주에 이르는 묘목이 물에 잠긴 것보다 이 장로의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보험이었다. 보통의 경우 자연재해에 대비하기 위해 ‘농업재해보험’을 들기 마련. 하지만 이 장로는 이 같은 보험이 없다. 그가 보험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다. 보험에 들 수 없기 때문이다. 농업재해보험에 묘목과 관련된 항목이 없어 보험을 들 수 없다. 따라서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하고 손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다.
그나마 청양군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돼 보상을 기대할 수 있겠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묘목은 특수한 경우라 전례가 없다며 지방자치단체마저 보상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이 장로는 “이런 경우가 어디 있느냐”며 안타까움을 토로하면서도 “저보다 더 어려움에 처한 성도들도 계실 텐데, 하나님 안에서 힘내자”고 다짐했다. 올해부터 수석장로를 맡은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희망과 용기를 되새겼다.
■ 박재린 장로(정산교회) … 흔적도 없이 쓸려 간 상추에 텅 빈 하우스
좁은 제방 길을 트럭 한 대가 막고 있었다. 하는 수없이 차에서 내려 박재린 장로의 비닐하우스가 있는 곳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트럭을 지나며 보니 역시나 진흙이 가득 실려 있었다. 인근 농민도 밭의 진흙을 걷어내는 중이었다.
발을 내딛는 순간 바닥이 힘없이 꺼졌다. 그렇게 걷어냈건만 아직도 진흙 천지였다. 하우스로 들어서자 온갖 기물이 진흙범벅이었다.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긴 비닐하우스가 텅 비어 있었다. 바닥에는 모판만이 힘없이 나뒹굴고 있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 상추로 가득했던 곳이다. 상추는 잘 물러지고 물에 약한 탓에 흔적도 없이 쓸려갔다. 14동의 하우스가 모두 마찬가지다. 총면적 2800평, 피해 규모만 3억 원 이상이다.
박 장로는 푹푹 찌는 하우스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상추와 채소는 이미 사라진 상태지만 밭을 살리려 진흙을 걷어내고 기물을 정리하던 중이라고 했다. 잠시 일손을 멈추고 피해 상황을 설명하던 박 장로의 눈이 하우스 끝을 향했다. 싱그럽게 자라고 있어야 할 ‘자식 같은’ 채소들이 아직도 눈에 밟히는 듯했다.
청양군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지만, 보상 규모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란 전망에 박 장로의 시름이 더 깊어졌다. 그는 “이제까지 보상금 규모를 살펴보면 200평짜리 하우스당 200만 원 정도였다”면서 “턱없이 부족하지만, 없는 것보다 나으니 일어나야 하지 않겠느냐”며 주인을 기다리는 일터로 다시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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