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과학은 왜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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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김범태 기자
kbtlove@kuc.or.kr
입력 2003.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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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는 구원의 기초이자 신앙의 기초”
글쓴 이: 변윤식 교수(창조세계탐구회 이사)
몇 해 전 일어난 미국 컬럼바인고등학교의 총기사고에 이어 연속적인 청소년 총기사고로 인해 많은 지성인들이 공립학교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해왔다. 미 하원에서는 십계명을 가르쳐야 한다는 법안을 통과 시켰으며, 이후 많은 공립학교에서 십계명을 게시하고 있다고 한다.
1999년 8월 11일 미국 캔자스주 10인 교육위원회에서는 진화론은 확증이 없는 하나의 이론이므로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교과 내용과 일체의 평가 시험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따라서 1858년에 발표된 이후 과학계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으며, 각급 학교에서 확실한 진리처럼 교육되어 온 다윈의 진화론이 적어도 캔자스주에서는 앞으로 가르쳐 질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한국 교육계는 이것을 각성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며, 교회는 창조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효과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시대에 창조주 하나님이 왜 강조되어야 할까? 그것은 하나님이 모든 지구와 우주를 창조하셨다는 성경의 진리를 진화론을 통해 비과학적이라며 100년 이상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진화론은 과학이고 창조는 단지 종교적 신념에 불과하다고 교육하고 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 그분이 창조주라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창조는 구원의 기초이며 또한 신앙의 기초가 된다. 하나님의 창조가 흔들리게 되면 구원의 기초도 신앙의 기초도 흔들리기 때문에 창조주 하나님이 중요한 이유가 된다.
본 주제에서는 창조과학이 왜 중요하고 필요한지를 몇 가지 관점에서 간단하게 검토해 보고자 한다.
첫째, 창조는 성경이 선포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진리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창세기 1장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으로 시작하여 6일간에 천지와 모든 생물을 종류대로 창조하셨음을 선포하고 있다.
일부의 사람들은 창세기의 기록을 하나의 신화로서 주장하기 위해 바벨론의 창조신화, 플라톤과 중국의 신화에도 비슷한 창조의 이야기가 있음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유에서 유를 만들어낸 설화로 인간의 생각으로부터 유추된 것이다. 그러나 창세기에서 말씀하고 있는 창조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신 것으로 인간의 경험과 논리를 추월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창조임을 확신하게 해준다.
둘째, 창조는 기독교 복음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슬프게 했으며, 결국 죄의 길로 흩어졌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사랑하사 우리의 죄악을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함으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기를 원하신다. 즉, 죄로 말미암아 파괴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하여 자기의 자녀로 삼으시길 원하신다.
그러나 만일 인간이 다른 생물과 함께 무기물에서 자연 발생되어 탄생된 최초의 원시 생물에서 진화되어 생겨난 것이라면 복음의 소식은 전혀 필요없게 되고 만다. 인간이 하나님을 갈구할 필요도 없고, 하나님이 인간과의 관계를 회복할 아무런 이유도 없게 된다. 그야말로 기독교의 근본 메시지가 무의미하게 되고 말기 때문이다.
셋째, 진화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때문이다. 진화론은 기독교의 근본 메시지를 무효화할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간은 창조자의 계획에 의해 창조되고 결국 창조자에게 돌아가야 할 영원한 영적 존재가 아니라 무생물로부터 자연 발생된 후 오랜 변화를 통해 얻어진 자연의 산물이라면, 인간이 다른 동물이나 심지어는 무생물과도 다를 아무 근거가 없게 되고 만다.
이런 생각은 결국 인간의 인격을 존중하는 사상을 흐리게 하며, 인간의 도덕과 윤리관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는 것이다. 우연한 화학물질의 충돌에 의해 최초의 생명체가 생겨났으며, 그 후에 오랜 생존 경쟁을 통해 적자로서 진화된 것이 인간이라면, 약육강식의 원리를 따르는 것을 버리고, 철저히 진화론을 신봉하게 된다면 이 사회는 어떻게 될까?
과학만능주의에 오염되어 살고 있는 현대인이 바로 이런 사회를 향해 줄달음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경외하고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새 생명을 주신 하나님과 교제하며 사회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야 할 때임을 절감한다.
넷째, 올바른 창조적 가치관을 통해 사람의 가치관과 삶이 완전하게 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도 인간의 지식과 실험의 결과인 과학의 범주를 벗어난 것이기 때문에 오직 개인적인 믿음의 결단에 속한 문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믿음의 결단은 그 사람의 가치관과 삶의 자세를 완전히 변화 시킬 수 있다. 즉 올바른 대인관과 대 자연관을 가지게 한다. 창조의 인정은 올바른 이웃관을 가지게 한다.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적자생존의 논리로 세상을 판단할 경우 약자는 이 사회에서 제거될 것이다. 하지만 창조의 인정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 받았다는 존엄성을 부여함으로써 개인의 존엄성을 인정한다.
또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다. 성경 창세기 1:28에서와 같이 자연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피조물이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연을 잘 관리하고 신용함으로써 인간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우리에게 맡겨주신 삶의 터전으로 여긴다.
이상으로 창조과학과 창조신앙이 왜 필요한지를 간단하게 살펴보았다. 앞으로 이러한 모임들이 활성화되어 진정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창조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인식시키며 올바른 신앙의 가치관을 갖도록 도와주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이 글은 전국 과학교사 수련회 자료집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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