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엄마!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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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kbtlove@kuc.or.kr
입력 2022.04.28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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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보호소에서 만난 우크라이나 전쟁난민들의 애끓는 심정
현지 시각으로 지난 23일 안식일 오후, 폴란드 남동부의 드라커비스카즈. 포트카르파츠키에주의 주도(州都)이자 아드라코리아 난민 대응팀이 베이스캠프를 차린 제슈프에서 자동차로 1시간 남짓 떨어진 작은 마을이다. 이곳의 한 농가에 우크라이나 난민 18명이 살고 있다. 마음 좋은 재림교인 주인아저씨가 이들에게 선뜻 집을 내어줘 가정형 임시보호소를 차릴 수 있었다.
앞서 이날 오전 제슈프교회에서 드린 안식일예배에서는 누가 폴란드 사람이고, 누가 우크라이나 사람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누가 전쟁피해 난민인지 확연히 구분됐다.
“새벽기도를 하고 나오는데, 온 세상이 떠나갈 듯 사이렌 소리가 커다랗게 울렸어요. 전쟁이 터졌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죠. 아직 잠자리에서 자고 있던 아이를 깨워 ‘전쟁이 시작된 것 같다. 어서 빨리 피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어요”
그때 아들이 제일 먼저 한 질문은 “엄마! 그럼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였다. 이제 겨우 열 살짜리 아이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빨려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모자(母子)는 그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떨리고, 쉽게 진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카트리나 씨는 “전쟁이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났다. 물론 게 중에는 정치적으로 계속 악화하는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어느 정도 예상하던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렇게 빨리 폭격이 시작될지 몰랐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크라이나 동부의 한 도시에서 신실한 재림성도로 살던 카트리나 씨는 결국 지난달 9일 아들의 손을 잡고 폴란드로 넘어왔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의 기도는 변함없다. 어서 속히 이 전쟁이 그치고 평화가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아이는 오늘 밤도 잠자리에 들며 묻는다. “엄마!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발로디드 씨는 수도 키이우에서 자동차로 4시간가량 떨어진 소도시에서 두 딸과 함께 단란하게 살고 있었다. 집 가까이에 친척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언제든 피크닉을 즐기거나 교회에 함께 갈 수 있었다. 그러나 2월 24일 새벽, 러시아군의 무자비한 폭격이 시작되자 모든 게 뒤바뀌었다. 러시아 정부는 군 시설에만 정밀타격한다고 주장했지만, 민간인의 희생은 피할 수 없었다.
2월 27일 두 딸을 데리고 국경을 넘은 발로디드 씨는 그날의 참상을 지금도 똑똑히 기억한다. 불과 며칠 전까지 함께 시장에 가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던 이웃집 친구의 처참하게 훼손된 시신을 뒤로 한 채 피난을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전투기 소리는 하늘을 찢을 듯한 굉음을 내며 폭격을 가했고, 곳곳에서 폭탄 터지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집이 무너지고, 교회가 파괴됐다. 그는 지금도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괴로워하고 있다.
더 걱정인 것은 전쟁터에 서 있을 남편이다. 정부의 총동원령에 따라 60세 이하의 남성은 무조건 자국에 남아야 한다. 발로디드 씨가 끝내 말끝을 흐렸다.
“남편을 생각하면 우리 가족 모두가 남아있어야 했어요. 그러나 아직 어린 두 딸을 생각하면 떠나야 했죠. 점점 악화하는 상황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처음에는 전쟁이 이렇게 길어질지 몰랐어요. 남편을 비롯한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안전을 위해 우리 가족은 매일 많은 시간을 함께 기도합니다”
대학에 진학해 디자이너를 꿈꾸던 큰딸은 헌신적으로 난민을 돕는 아드라인터네셔널의 모습을 보고 생각을 바꿔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기로 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아드라에 지원해 자신처럼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을 돕고 싶은 마음에서다. 이제 겨우 11살인 동생은 언제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느냐고 보채듯 물었다. 그런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엄마는 말했다.
“지금이라도 돌아가고 싶어요. 왜냐면 거기가 우리의 고향이니까요”
그러면서 그는 나라와 문화는 달라도 재림교회와 성도들이 있어서 참 감사하다고 했다. 아드라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지금 자신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엄마는 두렵다. 언제쯤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몰라 마음이 무겁다. 전쟁이 언제 끝날지 기약할 수 없어 무섭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사랑하는 남편을 건강하게 만날 수 있을지 아득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아이들보다 자기가 먼저 지치는 것이다. 다행히 일찍 철이 든 큰딸이 틈틈이 일손을 거들고, 어린 동생을 돌보지만 생각해보면 아이도 그저 이제 겨우 고등학교에 들어간 열여섯 소녀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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