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120주년 특집] ‘복음의 시간을 거슬러’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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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반은 곧 정원걸, 김승호, 양재환 등 진남포 일대에 살던 몇몇 젊은 신앙 동지들에게 넷째 계명의 안식일은 일주일의 첫날인 일요일이 아니라, 제7일인 토요일이라는 사실을 성서적으로 증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알렌(Allen)의 루터 전기 <로득개교기략>(路得改敎紀略)을 펴 루터가 1521년 보름스(Worms)제국의회에 소환돼 황제로부터 신앙개혁의 소신을 포기하도록 위협받았을 때, 성경에 기초해 자신의 주장이 잘못됐음이 증명되지 않는 한 신앙 양심을 저버릴 수 없다고 고백한 후 하늘을 향해 머리를 들고 “내가 홀로 여기 섰나이다. 다른 데 구할 데가 없고 다만 하나님의 보호를 구할 뿐이니이다”라고 외쳤던 부분을 내보이면서 “우리도 개혁하자”라고 호소했다.
이야기를 들은 지인들은 안식일, 침례, 세족예식 등의 기별을 받아들이고, 이 신앙에 헌신할 것을 결심했다.
이들은 피가 끓는 심정으로 진리 안에 마음을 모으고 새로운 신앙단체를 조직하기로 했다. 재림교회의 교리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었다. 이를 위해 고베의 구니야 히데 전도사를 초청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 이상의 찬성자를 규합해야 했다. 이에 정원걸, 양제환, 김승호 등은 뜻을 같이하는 다수의 지지자를 모았다.
평안남도 용강군 양곡면 주흥리에서 노봉진, 홍관일, 홍원일을, 강서군 지운면 입성리(선돌)에서는 이신독의 집에서 이학승, 이봉승, 이명승 형제와 이성일 그리고 그의 시어머니인 이명심을 비롯한 몇몇 신자가 모였다. 구룡동에서는 김범준, 김두준 형제가, 황해도의 황주 충점에서는 지국현, 강창오가, 평안남도 중화군 해압면 요포에서는 김규혁이, 용강군 양곡면 주흥골 너라디라에서는 김승호, 조희찬 등이 합류했다.
그 후 임란순, 최대응, 최대범, 윤병찬, 조동선 등의 지지를 추가로 얻었다. 그리고 이들 중에서 임기반과 정원걸을 포함한 남자 18명이 서명한 서한을 준비해 진남포 일대에 30여 명의 신자가 발생했다는 소식과 함께 구니야 히데 전도사에게 “어서 와서 우리를 도와 달라”고 요청하는 서신을 몇 차례 보냈다.
구니야 전도사는 조선을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여비 조달이 어려웠고 건강도 좋지 않았다. 무엇보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구니야 전도사는 부득이한 사정 때문에 진남포 신자들의 간절한 요청에 선뜻 응하기 어렵다고 회답했다. 그러나 한국의 신자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내 다음과 같은 내용의 서신을 다시 보내 구니야 전도사의 조선 방문을 거듭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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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종 강창오는 구니야 히데 형님에게 문안합니다. 그리고 하늘 아버지의 은혜가 형님에게 내리시기를 기원합니다. 저는 2년 전에 기독교 신앙을 시작하였습니다만, 받은 빛은 매우 희미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진리 가운데 있는 임기반 형님이 저희에게 귀 교회에서 지키는 침례와 다른 의식에 대하여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 남자 16명, 여자 14명, 어린이 6명은 그 가르침을 받고 있으며 또 침례 받기를 열망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 진리를 가르치게 하고자 하늘 아버지께서 택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그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우리는 임기반 형님과 함께 귀 교회에 입교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최근에 이 형님이 어떤 일로 시련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그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친애하는 형님이시여, 이 편지를 읽으시는 즉시 지체하지 마시고 배를 타고 우리에게 오시어 이 진리를 믿는 우리와 연합하여 교회를 세우셔서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해 주십시오. 형님께서는 우리에게 보내 주신 서신에서 우리말을 모르신다고 하셨습니다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두려울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도행전 2장 4절과 에베소서 6장 9절을 읽어 보십시오. …저희는 형님께서 오시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 형님을 우리게 보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진남포의 구도자들은 이 서한 아래편에 재림교회 신앙을 받아들이기 원하는 36명의 명단을 기재했다. 앞선 서신에 서명한 18명의 외에 다시 18명이 추가된 것이었다. 이들은 모두 기존 기독교인으로서 좀 더 밝은 진리의 빛을 갈구하는 사람이었다. 이처럼 새 신앙의 구도자 집단을 짧은 기간에 형성시킨 핵심적 지도자는 바로 임기반이었다.
삼육대 신학과 교수였던 이종근 목사는 신간 <일제강점기 백성들의 함성>에서 “임기반 선생은 하늘이 제공하는 기회를 선용한 사람”이라며 “구한말 국운이 기울던 약소국의 국난 타개를 위해 그는 사회의 설움과 냉대 그리고 강대국의 횡포 등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며 끊임없이 도전했다. 그의 선교활동은 암흑이 짙게 드리운 시대에 희망의 빛을 밝힌 선각자의 면모를 보여준다”라고 평가했다.
임기반은 독립협회 활동을 하면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한반도가 외세에 유린당하는 것을 보고 비분강개했다. 이후 하와이 사탕수수농장의 이민부터 교포 계몽, 신민회 조직, 귀국 길의 재림기별 수용, 한국 재림교회 선교 시작, 불타는 선교 경험, 의명학교 개교 등 당대 개화 지식인의 선구자적 기상을 드러냈다.
하와이 귀국길에 대한해협에서 손흥조로부터 재림기별을 받아들인 그는 한국에 재림기별을 최초로 전파하고 교회를 정착시킨 지도자다. 특히 선교 역사상 선교사들에 의한 교회 조직이 아닌, 본방인들이 재림기별을 받아들이고 침례를 받고 선교사를 초청해 주체적으로 교회 조직과 선교활동을 했다는 면에서 의미가 크다.
1904년 임기반을 중심으로 시작한 한국 재림교회는 이 나라에서 민족 수난과 함께 조국 근대화에 기여하며 성장을 거듭해왔다. 교회가 강제 해산되고, 교회 지도자들이 순교 당하는 등 탄압이 극심했던 일제강점기에도 꿋꿋하게 복음기별을 전파하며 민족애를 실천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교육, 의료, 출판, 구호, 건강 등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하며 국가 발전에 이바지했다.
* 이 기사는 참교육을 회복시키는 건강한 대학 삼육보건대학교 지원으로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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