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의 회복과 안식일 정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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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기자
kbtlove@kuc.or.kr
입력 2021.11.11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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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을 고민하기 전, 예배에 대한 올바른 이해부터 가져야”
예고 없이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팬데믹. 짧은 기간 사이, 우리의 모든 생활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이 질병 앞에 우리는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절실히 느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코로나19 사태가 우리의 예배문화에도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말세에 일어날 일들로 신앙의 자유가 제한될 것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위협받으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와 더불어 정부가 종교집회를 제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요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교회는 아무런 준비나 대책도 없이 당장 예배드릴 공간을 잃어버렸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온라인예배라는 ‘도구’는 어떠한 검증 절차도 없이 성도들에게 적용됐다. 놀라운 사실은 처음에는 ‘과연 온라인예배가 옳은 방법인가?’라는 질문이 있었으나, 시간이 흐르며 대부분의 교회와 성도들이 특별한 의문 제기 없이 온라인예배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팬데믹 현상이 신속하게 진압되리라는 기대감 때문이었을까. 우리는 온라인예배가 잠시 사용될 임시방편으로 생각했었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면 다시 이전처럼 돌아갈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이 기간은 벌써 2년 가까이 지속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팬데믹 상황이 종료된다 할지라도 이미 적용된 온라인예배 문화는 어떠한 형태로든 유지될 것이라 예견한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교회는 현재 진행하고 있는 예배에 대해 다시 한 번 고찰해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성경에서 말하는 올바른 예배정신이 무엇인지 또 어떻게 실제적으로 그 정신을 우리의 신앙생활에 적용해야 할지 방향을 고민하고 제시해야 한다. 우리는 그 답을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 예배의 정신과 그 실천이 한꺼번에 잘 묘사된 사건이 요한복음 4장에 기록돼 있다. 바로 예수님과 수가의 우물가에 나왔던 여인의 만남이다.
■ 예배의 의미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요한복음 4:13~15)
육체적인 갈증으로 우물가에 나왔던 이 여인은 사실 심리적으로 더욱 갈급해 있었다. 그녀는 삶에 대해 진지했고 또 치열하게 살아왔다. 당시 시대적 상황으로 볼 때 여인의 운명은 어떤 남편을 만나느냐에 따라 결정됐다. 그녀는 첫 번째 남편에게서 만족함을 얻지 못했고, 무려 다섯 번이나 또 다른 시도들을 반복했다. 그리고 이제 일곱 번째 한 남성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바로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심령의 갈급함을 해결해 주시겠다고 제안하셨다. 그녀는 그것을 간절히 원했다.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예배의 의미는 여기에 담겨 있다. 세상에서 해소할 수 없는 심령의 갈증을 예수님 앞으로 가지고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을 통해 근본적인 영적 육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현대 교회가 변해가는 예배의 형식을 고민하기 이전에 먼저 바로 세워야 할 것은 바로 예배에 대한 올바른 이해일 것이다. 예배를 어떻게 드리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배를 왜 드리는가?’ 그리고 ‘그 예배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경험할 수 있는가?’에 주목해야 한다. 예배는 예수님을 만나 그분을 통해 치유받고 회복되는 것이다.
■ 예배의 방법
성서적 예배의 의미를 올바로 구현하기 위한 방법을 주님께서는 이 여인과의 대화를 통해 제안하신다. 사마리아 여인은 영혼의 갈증이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이 문제가 하나님을 만남으로 해결될 것이라는 것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녀는 하나님을 만나는 일 즉 예배를 드리기 위해 어디로 가야 할지를 고민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 공식적으로 던진 질문이 바로 예배 장소에 대한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요 4:20).
어느 곳에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 질문하는 그녀에게 예수님께서는 전혀 다른 대답을 하신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요 4:21).
예수님께서는 예배가 장소에 국한된 것이 아닌 시간과 관련이 있음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이 말을 믿으라고 강조하신다.
오늘날 감염증 대유행으로 인해 많은 성도들이 사마리아 여인처럼 집안에 발이 묶여 있다. 예배는 커녕 물 길러 나가는 일상생활 조차 자유롭지 못했던 이 여인의 신세가 된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 교회에 출석해 예배드리는 일은 여러 방면에서 심적 부담을 안겨 준다. 그렇다고 가정에서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린다한들 마음의 만족감이나 영적 충족함을 얻지도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과의 대화를 통해 예배장소에 집중하기 보다 예배를 드리는 시간에 집중하라고 권면하신다. 예배는 어느 곳에 있든지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시간이라고 강조하신다. 재림교회 주석은 “신령과 진정”의 의미를 “성심 성의껏, 마음과 감정의 최상의 기능들을 다해, 진리의 원칙들을 마음에 새김”이라고 풀이한다. 즉 진정한 예배는 어느 장소에서 예배를 드리든 진정성을 가지고 드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 예배의 실천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요한복음 4장 23~24절)
이 여인은 예루살렘에서도 아니요 그리심산에서도 아닌 우물가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의 때”를 맞게 된다. 즉 예수님을 대면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모든 근본적 문제들이 해결함을 받게 된다. 그렇다면 이 여인은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또 이와 같은 진정한 예배의 때를 맞게 된 것일까?
예수님께서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에게 주어진다고 말씀하셨다. 왜냐면 이와 같은 참다운 예배자들을 주님께서 찾으시기 때문이다. 위 구절에는 두 예배가 소개된다. 하나는 “참예배”요, 또 하나는 “신령과 진정의 예배”이다. 신령과 진정의 예배는 예수님과 이 여인이 만난 그때에 이루어졌다. 예수님께서 그녀를 찾아오셨고 예수님을 통해 그녀의 삶의 변화된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찾아오시도록 했던 또 다른 예배, “참예배”는 무엇일까?
그녀에게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영적 비밀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녀가 ‘참예배자’였다는 것이다. 시대의 소망은 두문불출하며 갇혀있던 집에서 그녀가 어떤 삶을 살고 있었는지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이 여인의 마음은 깨달을 수 있는 상태에 놓여있었다. 그녀는 가장 고상한 계시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그녀가 성경 말씀에 흥미를 느꼈으며 성령께서 더욱 많은 빛을 받도록 그녀의 마음을 준비시키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구약 성경의 … 약속을 연구하였다 … 빛은 이미 그녀의 마음을 환히 비추고 있었다” (시대의 소망 190)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그녀의 반전이다. 이 반전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그녀를 찾아오게 만들었다. 그녀는 비록 집안에 갇혀있는 상황 가운데서도 말씀을 연구하며 주님 만날 때, 즉 진정의 예배를 고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일상에서 말씀을 열어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것이 참다운 예배다. 이 일을 통해 그녀는 성령의 역사를 경험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삶의 변화를 맛보게 됐다. 참예배를 통해 신령과 진정의 예배가 이뤄진 것이다.
이 여인의 일상 속에서 이뤄진 ‘참예배’의 삶은 오늘날 온라인으로 예배에 참석하는 성도들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준다.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성전에 출입하는 것이 어려운 이 때에 어쩌면 우리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영상을 통해 누군가의 말씀을 듣고 예배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다음 우리의 삶은 이 여인이 드렸던 ‘참예배’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우리의 영적 갈증이 해결되지 않고 우리의 삶이 변화되지 않는 이유이다. “삶이 예배요 예배가 삶”이라는 말이 있다. 예수님을 만나는 진정한 예배를 원한다면 우리의 삶이 ‘참예배’로 채워져야 한다. 참예배가 삶 속에서 실천돼야 한다.
■ 예배의 확장
참예배자였던 여인을 찾으신 예수님께서는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경험케 하셨다. 그러나 이 예배를 통해 그녀의 지난 남편들이나 오늘의 남편이 변화를 일으킨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녀를 향한 이웃의 시선이 바뀐 것도 아니다. 그녀는 여전히 손가락질이 두려운 이방 여인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영혼과 마음은 송두리째 변화됐다. 그리고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저희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요한복음 4:28~30)
진정한 예배를 경험한 그녀가 보인 반응은 다른 이들에게도 진정한 예배를 경험하게 한다는 것이다. ‘와 보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사용하신 그 단어다. 즉, 진정한 예배를 경험한 자는 자원해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하게 된다. 더이상 ‘물동이’라는 현실에 묶여 있지 않는다. 마음속에 넘치는 마르지 않는 샘물을 다른 이들에게 나눠주기 원하는 것이다.
■ 결언
온라인예배의 도입으로 우리는 오늘날 예배의 현주소를 확인했다. 그동안 우리는 정해진 날에 성전에 나와 찬미 부르고, 기도 드리고, 말씀 듣고, “아멘”하는 것으로 예배가 이뤄졌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이런 패턴이 코로나19 사태로 방해를 받자 예배 자체가 방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해오던 형식대로 예배를 드리지 못하니 영적 공황을 경험하거나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한다. 진정한 예배는 단순히 형식에 따라 드려지는 것이 아니다. 매일의 삶에서 주님을 만나는 경험이 필요하고, 그 감동을 다른 이들에게 전달하는 것까지가 진정한 예배인 것이라고 말이다. 비록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우리의 육신은 성전에 출입하는 것이 자유롭지 못하나 있는 곳에서 참예배자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예배의 첫걸음이요, 받은 은혜를 다른 이들에게 전하며 함께 예배자로 서게 하는 것이 진정한 예배의 완성이다.
교회와 성도들은 이제 코로나19 시대를 지나 ‘위드 코로나’라는 새로운 국면을 마주하고 있다. 우리는 다시 한번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상황은 언제든 변할 수 있다. 하지만 예배의 본질과 실천에는 변함이 없다. 이제는 더이상 형식적 예배에 얽매여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 참예배를 회복하고, 어느 곳에서든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진정한 예배를 드리며 교회라는 담장을 넘어 세상을 향하여 ‘와 보라’고 외칠 줄 아는 예배자들로 설 준비를 해야 한다. 상황의 변화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하는 형식과 방법이 아닌 진정한 예배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요한복음 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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