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혜의 interview-e] 동문엔터프라이즈 박은옥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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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청소를 하려고 막대걸레를 빨고 있는데 한 장애우가 ‘원장님, 제가.. 원장님, 제가..’ 하면서 달려왔어요. 그런데 어떻게 빨아야 할 줄은 모르고, 열심히는 하고 싶으니까 있는 힘을 다해서 막대걸레를 위아래로 흔든 거죠. 그러다 그 물이 온 사방에 튄 거예요. 걸레를 빨던 물이니까 새까맣게 더러운 물이었죠. 그 물을 제 얼굴까지 뒤집어썼는데 하나도 기분 나쁘지가 않았어요. 오히려 행복했어요”
지난 10년간 이곳에서 있었던 수많은 일 중 작은 에피소드를 떠올리며 환하게 웃는 박은옥 원장(동성학교교회)이다. 그는 ‘장애인 보호시설’ 역할에 그치던 동문엔터프라이즈를 ‘장애인 생산품 생산시설’로 탈바꿈시킨 주인공이다. 그의 안내를 받아 중증장애인들이 만드는 ‘오곡강정’ 제작과정을 둘러봤다. 작업자를 칭찬하고 격려하는 그의 모습과 활짝 웃는 장애우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으면서 덩달아 함박미소가 지어졌다.
동문엔터프라이즈가 문을 연 지 올해로 11년째다. 2013년 3월 7일에 설립한 이곳은 휘경동에 있는 동문장애인복지관의 ‘직업형 훈련팀’의 인원이 많아지자 별도의 장애인 보호작업장을 운영하라는 서울시 권고에 따라 복지관에서 분리돼 나왔다. 시립대 앞에서 30평짜리 월세 건물을 얻어 시작했다. 하지만 법률 구조상 정부 보조 없이 운영 법인이나 원장이 재량껏 운영해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행주를 포장하면 10원, 종이가방을 만들면 80원~100원을 받았다. 한 사람의 한 달 수익이 10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점심값 10만 원을 빼면 결국 아무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구조였다. 그런 상황에서 월세 130만 원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액수였다. 결국 그곳을 나와 답십리교회 지하주차장 한 켠에서 6개월간 신세를 지며 추운 겨울을 나야 했다.
“2014년 8월에 이곳이 폐원될 거라는 소식을 들은 어떤 분이 저한테 여기 좀 가서 도울 수 없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상황을 보기 위해 와봤더니 보호자들이 모여서 삼육재단에 항의하고 울고 있었어요. 동대문구 내에 병원, 보건대학, 영어학원까지 운영하는 재단이 이 작은 시설 하나 감당하지 못해서 문을 닫는 거냐고, 그럼 우리 아이들은 어딜 가야 하냐는 거죠”
그 모습을 본 그는 건물 임대 보증금 2000만 원 때문에 이 기관이 폐원한다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당시 동중한합회장이었던 이경우 목사를 찾아갔다. “저는 애들도 다 키워서 특별히 돈 들어갈 곳이 없어요. 후원을 받아 보고 후원금이 마련되지 않으면 제 월급에서 월세를 낼 테니 보증금 2000만 원만 좀 도와주세요” 합회에서 그의 간절한 마음과 이곳의 사정을 보고 도움을 줬고 월세도 그의 월급에서 많이 나가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여러 방법으로 채워 주셨다.
그렇게 30평짜리 상가건물 3층을 얻어 한시름 놨지만, 이들에게 수익이 전혀 없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점심식비라도 어떻게 해보고자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어딘가에서 매일 반찬을 얻어올 수 있게 됐고 밥만 지어 먹으면 되도록 해결을 했다. 이제는 사업 아이템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저희가 가진 기술도 없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돈이 될 만한 일거리를 찾게 도와주세요”
그러던 중 2016년, 장례식장에 갔다가 친구 부부가 건넨 강정을 먹게 됐다. 통곡물로 만든 특별하고 건강한 맛이 장애인들의 직업 재활에 도움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친구에게 절대로 개인의 이익을 위해 쓰지 않을 테니 강정 만드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친구(이헌 장로, 이일홍 집사 부부, 하동진교교회)에게 강정 만드는 기술을 배웠고 3층 작업장 베란다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기술을 터득해 냈다.
처음에는 장비를 갖출 재정이 없어 식품건조기와 휴대용 버너로 시작했지만 직원과 근로 장애인들의 노력으로 생산 설비를 갖추게 됐다. 2020년 보건복지부로부터 중증장애인 생산품 생산시설로 지정받고 쿠팡과 네이버스마트스토어, 꿈드래몰(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중증 장애인 생산품 위주로 판매하는 쇼핑몰)과 현대백화점 내 온라인몰에 납품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몇 년 만에 연 매출 2억 원을 달성하기까지 성장했다.
‘오곡강정’은 국내 쇼핑몰 곳곳에 판매되고 있다. 지금은 같은 건물 2층까지 쓰게 돼서 예전보다는 나은 환경이지만 강정 만드는 데 필요한 시설과 다른 작업에 필요한 공간으로 사용하기에는 여전히 비좁은 상황이다. 원장 사무실에도 주문을 기다리는 강정이 한가득 쌓여 있어 창고에서 행정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박 원장은 행복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시설장 1명, 사회복지사 2명으로 시작한 사업인데 서울시와 구청에서 직원수를 늘리게 해줬다. 또 한국연합회 유지재단으로 있어 1년 월세 5800만 원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마음 편히 일하고 있다. 장애인이 17명에서 30명까지 늘어나 개인당 수익이 최대 32만 원에 그치지만 길윤희 초대원장과 삼육법인, 뜻있는 분들의 후원 덕분에 행복하게 일하고 있다”며 이 복지시설을 통해 지역사회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빛을 드러내고 싶다는 비전을 그렸다.
“한 보호자 분이 ‘저는 종교가 없는데 여기 센터에 보내면서 신앙이 뭔지 알 것 같아요. 여기는 언제라도 안심하고 보낼 수 있는 곳이에요’라고 말씀해 주신다. 신실한 재림교인으로 직원을 보내달라고 기도한 것에 대한 응답이다. 우리 하나님은 마음의 동기를 보시는 분”이라고 고개를 끄덕이는 그의 말에 걸레 빨던 물을 얼굴에 뒤집어쓰고도 화가 나지 않고 오히려 행복했었다는 일화가 다시 한 번 떠올랐다.
박 원장은 3년간 안식일 오후에 분교를 운영했다. 원하는 이들에 한해 참여하도록 했고, 동성학교에서 봉사하는 친구들 덕분에 침례받는 이들이 생겼다. 함께 일하는 안영일 집사가 차량봉사를 해주어 남양주한마음교회와 중곡동교회에 매주 예배를 드리러 가는 장애우들이 생겼다. 부모 중에도 2명이 침례를 받았다. 춘계, 추계 기도주일, 장막회도 진행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외롭고 고립돼 있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이 전해지도록 하고 싶다는 그에게서 ‘작은 예수’의 모습이 보였다.
“이 친구들이 왜 장애인이 됐는지 아세요? 대부분의 경우가 정상분만이 안 된 거예요. 태어날 때 지체되거나 나오자마자 울음을 터뜨리지 못하거나 그러면 뇌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서 뇌손상이 일어나는 거죠. 뇌의 어떤 부분에 손상을 입었냐에 따라 말을 잘 못하거나 몸이 경직되거나 인지능력이 떨어지거나 그런 거예요”
세상에 태어나는 그 짧은 순간 예상치 못한 사고를 겪음으로, 평생에 걸쳐 장애를 갖고 불편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생각하니 안타까움을 넘어 왠지 모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들이 정성스레 만든 ‘오곡강정’을 지인들과 나눠먹으려고 몇 보따리를 사들고 나왔다. 이제는 그들만의 건물을 갖고 조금 더 편한 장소에서 일하고 활동하며, 그들만의 교회를 갖고 싶다는 박은옥 원장의 말이 생각났다. 운전을 하면서도 입으로는 강정을 계속 집어넣고 카카오톡 단톡방 여기저기에 사진을 찍어 올리느라 바쁜 귀가길이었다.
“이번 추석 선물이나 안식일학교 선물로 추천합니다. 맛이 기가 막히네요” 주문 및 문의: ☎ 02-2216-2233 // 010-9525-3004(박은옥 원장) // 주소: 서울 동대문구 한천로 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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