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MM 수기②] 비록 나이는 어리고, 힘은 약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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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 김범태 기자
kbtlove@kuc.or.kr
입력 2019.02.19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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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선교사들의 해외선교 체험담 ... “나누고 섬기고 함께한 시간”
내가 처음 CMM 선교사를 알게 된 건 중학교 1학년 때다. 엄마의 권유로 호기심에 참가했다. 당시 해외여행이 처음이어서 엄청 기대가 컸다. 우리는 필리핀 1000명선교사훈련원에서 이틀 동안 기본적인 선교사훈련을 받고, 8시간가량 떨어진 선교지로 배정됐다. 하지만 도착하자마자 나는 실망과 충격을 받았다. 기대했던 것과 달리 환경이 너무 열악했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작은 교회에 의자들을 치우고, 땅바닥을 빗자루로 쓸어 거기에 매트를 깔고, 모기장을 쳐야 잘 수 있었다. 먹고, 자고, 씻는 모든 것을 그런 곳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좀 두려웠다. 함께 간 친구, 동생들과 함께 다들 둘러 앉아 찬양과 율동을 연습했다. 초대장에 사탕을 하나하나 붙인 후에 마을 아이들에게 나눠주러 나섰다.
다음날 어느 한 가정집 앞에 아이들이 모였고, 우리는 그 가운데에서 찬양과 율동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모든 활동을 마치고 쉬는 줄 알았다. 하지만 부스 활동이 남아있었다. 커다란 체육관에 마을의 모든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우리는 각자 맡은 자리로 흩어져 아이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페이스페인팅, 한복 입기, 팽이치기 등 다양한 부스가 차려졌다.
‘아이들이 하기 싫어하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오히려 너무 많은 아이들이 좋아해 주어 깜짝 놀랐다. 짧은 시간에 아이들과 꽤 많이 친해졌다. 며칠을 그곳에서 지내면서 무척 가까워졌다. 그러나 우리는 떠나야했다. 아쉬운 작별을 하며 ‘다음 CMM 때도 꼭 와야겠다’고 다짐했다.
나의 두 번째 CMM 선교지는 캄보디아였다. 우리는 캄보디아의 어느 삼육학교에서 머무르게 되었다. 그곳은 숙소이자 선교지였다. 들어서는 입구부터 많은 아이들이 나와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한국인 선교사님이 계셨다. 부모님이 안 계시거나 가난한 형편의 아이들이 주로 다니는 학교라고 했다. 하지만 그런 환경에서도 아이들은 밝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보며 더 좋은 환경에서 살면서도 늘 불평불만이 많은 나를 되돌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언어가 통하지 않았지만, 각자 자기 나라 말을 하는데도, 서로 무슨 말을 하는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곳에 있을 때는 잘 느끼지 못했는데, 한국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모두가 하나가 되어 하나님을 찾고, 예배하고, 전도하고, 기도드리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나는 그곳에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서로의 모습과 언어는 달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름으로 서로 통하고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걸 말이다.
이번에 세 번째 CMM 활동에 참가했다. 첫 목적지였던 인도네시아 1000명선교사훈련원은 고산지대에 위치해 있었다. 우리 앞에 펼쳐진 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한동안 입을 다물 수 없을 만큼, 옆 사람에게 말을 걸 수도 없을 만큼 경이로워서 나는 몇 분 동안 우두커니 서서 그 모습을 눈과 가슴에 가득 담았다. 하지만 고산지대다 보니 추위를 굉장히 잘 타는 나로서는 너무 추웠다. 전력이 약해 밥을 먹다가도 가끔씩 정전이 됐다.
드디어 선교지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바퀴벌레가 우리를 환영해주었다. 물도 마음대로 쓸 수가 없고, 쓰다가 물이 끊기는 경우도 생겼다. 하지만 그런 환경에도 누구하나 짜증을 내지 않았다. 나는 그 많은 아이들 중 리더가 되었다. 워낙 낯을 가리고, 소심한 성격이라 부담과 책임감이 크게 느껴졌다. 고맙게도 아이들이 나를 믿고 잘 따라와 주어 연습을 재밌고 완벽하게 할 수 있었다.
강당에 모여 준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기대만큼 사람들이 많이 오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약간 실망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내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가 그곳에서 하나님을 전한다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안식일에 나는 아름다운 장면을 목격했다. 예배를 마친 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든 성도들이 악수를 한 뒤, 다 같이 둥글게 모여 짧은 메시지를 듣고는 손을 맞잡고 “행복한 안식일”이라고 외치는 것이었다. ‘우리 교회에서도 이런 것을 하면 어색한 교인들이 없이 다함께 인사하는 행복한 분위기가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세 번의 CMM 해외선교 봉사를 다니면서 느낀 점이 있다. 나는 선교지의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하나님에 대해 알려주고, 그분께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가르치러 가지만, 오히려 내가 선교지의 아이들을 통해 즐거움을 얻고, 하나님께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가고, 그분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배우게 됐다는 것이다.
CMM 활동을 하면서 꼭 해보고 싶은 ‘버킷리스트’가 생겼다. 그건 전 세계에 있는 우리 재림교인들을 만나보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다 만나지 못한다면, 하늘에 가서라도 만나고 싶다. 비록 나이가 어리고, 힘이 약하지만 이 활동을 통해 조금 더 성장하고, 하나님을 찾을 수 있으니 나는 CMM 선교사를 ‘강추’한다!
■ 임경빈 선교사(기지시교회)
나는 이번 CMM 선교활동에 김윤호 목사님과 지경선 선생님의 추천으로 참가했다. 이번이 CMM에 참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도 했다. 충청합회에서 나 혼자만 중학교 3학년이라서 어린 동생들과 함께 잘 지낼 수 있을지 약간 걱정됐다. 다행히 사전모임에서 만난 친구들이 다들 착하고 밝아서 안심이었다.
나는 기대 반 걱정 반의 마음으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우리 일행은 7시간을 날아 경유지인 말레이시아에 도착했다. 환승을 기다리는 동안 얼굴을 제외한 전신을 검정색 천으로 가리고 다니는 무슬림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심지어는 휠체어에 아내를 태우고, 전신을 가린 상태로 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을 보면서 ‘과연 그 나라에 가서 우리가 무사히 하나님을 전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은근 걱정됐다. 다시 비행기를 타고 인도네시아로 향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메단이라는 지역이었다. 하지만 공항에서 내 짐이 도착하지 않아 1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우리 일행의 물건이 너무 많아 장사하러 온 것으로 오해하는 바람에 검사시간이 오래 걸렸다. 공항에서 2시간정도 지체한 후에야 겨우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걱정하며 오랫동안 기다렸던 남진구 목사님과 현지인 선교사가 환한 미소로 환영해 주셨다. 차를 타고 1000명선교사훈련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중에 한 식당에 들러 ‘나시고렝’이라는 볶음밥을 사먹었다. 현지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을까봐 걱정했던 나의 마음은 나시고렝을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저 멀리 사라졌다. 잊지 못할 만큼 맛있는 인도네시아에서의 첫 식사였다.
4시간 정도 달려 우리는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훈련원은 해발 1200m 고지에 위치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날씨가 무척 시원했다. 캠퍼스에서 바라본 풍경은 말이 나오지 않을 만큼 환상적이었다. 우리는 짐을 풀고 악기와 노래연습을 한 뒤 저녁예배를 드렸다. 김윤호 목사님께서 “선교사는 섬기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첫 날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이튿날, 우리는 영남합회와 호남합회 대원들이 오기를 기다리며 하루를 시작했다. 현지인 선교사들과 게임을 하며 교제를 나눴다. 근처의 유명관광지인 폭포와 호수를 보러 갔다. 통깅이라는 이름의 호수는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훈련원으로 다시 돌아가니 그 사이, 영남과 호남합회 대원들이 도착해 있었다. 드디어 3개 합회 선교사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게 됐다.
식당에 모여 예배를 드릴 때, 민경채 목사님은 “선교사는 함께하는 사람이다. 어려운 상황이 있을 때, 언제나 함께해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예배 후 우리는 조를 이뤄 선교활동을 할 영남합회 대원들과 연습을 했다. 그 자체가 목사님의 말씀대로 ‘함께’의 경험이었다. 잠자리에 들려하자, 낮에 마을답사를 다녀오신 목사님이 “선교지가 흙바닥이라 활동하기 힘들 거”라고 귀띔해 주셨던 게 떠올랐다. 나는 선교지가 안전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선교지로 출발했다. 그곳에 도착하자 나는 기도응답을 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숙소가 너무 깨끗하고, 화장실도 좋았기 때문이다. 짐을 풀자말자 우리는 그곳 마을로 여름성경학교 홍보를 나섰다. 오후 인사인 ‘살라맛 씨앙’이라고 말하며 준비해 간 부채를 나눠주었다.
대망의 여름성경학교 아침이 밝았다. 우리는 성경학교를 진행할 장소에 가서 일찌감치 청소를 했다. 오랜 시간 사용하지 않았던 곳이어서 생각보다 많이 더러웠지만, 물청소도 하고 빗자루질도 하니 금세 깨끗하게 재탄생했다. 모두가 힘을 모으니 더 빨리 끝난 것 같았다.
성경학교 첫째 날, 성경이야기 순서를 맡은 나는 아침부터 무척 긴장됐다. 많은 사람 앞에서 영어로 발표하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선교사님이 통역을 매우 잘해주셔서 순조롭게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우리는 ‘한복입기’ ‘페이스페인팅’ ‘팽이치기’ 등 다양한 부스활동도 준비했다. 그 중에서 나는 풍선아트를 담당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만들어달라는 걸 열심히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감당하기 어려웠다. 우리는 빠르고 쉽게 만들 수 있는 것들로 손이 보이지 않을 만큼 재빨리 만들었다. 힘은 들었지만, 매우 보람찼다.
둘째 날에는 우리나라와 인도네시아 국기를 색칠하고, 바람개비를 만들었다. 작은 것에도 무척 행복해하며 좋아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니 덩달아 내 기분도 좋아졌다. 부스를 함께 운영한 민서와도 손발이 척척 잘 맞아 얼굴 한 번 찌푸리지 않고, 즐겁게 봉사할 수 있었다.
벌써 마지막 날이 되었다. 안식일이어서 인근 지역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후 성경학교를 하기로 했다. 교회에 가는 길에 마을아이들이 반갑게 인사해주었다. 우리가 성경학교를 하러 올 줄 알고 벌써부터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성도들도 우리를 따뜻하게 환영해 주었다. 그날 오후 우리는 풍선아트 부스와 페이스페인팅 부스를 한 번 더 열었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좋아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정말 행복했다.
아쉽지만 우리의 성경학교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부족한 점도 많았고, 실수도 했지만 친구들의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많이 웃었다.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재능을 나누고, 그들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어서 정말 뜻 깊은 시간이었다. ‘선교사는 나누는 사람 섬기는 사람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이라는 목사님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생각한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CMM을 다녀온 내게 가장 큰 변화는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것이다. 화장실이 있다는 것, 휴대폰이 있어 언제든 누구와도 자유롭게 연락할 수 있다는 것 등 주변을 둘러보면 모두 다 감사할 것들이다. 선교사 활동을 하면서 힘들고 지쳐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언제나 웃으면서 봉사하려고 노력했다.
한국에서도 그곳에서 배운 것처럼 지내고 싶다. 내가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누고, 어려운 사람을 섬기고, 늘 기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되기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다. 그러면 머잖은 어느 날, 나는 내가 그토록 꿈꾸던 선교사가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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