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청년, 길을 묻다 – 이학봉 목사 편(마지막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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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kbtlove@kuc.or.kr
입력 2019.02.08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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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 사상의 정립 △정직으로 희망을 △이웃의 천사가 되는 봉사
- 오늘의 대화 주제가 정체성과 관련한 것이니까,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라는 우리의 이름을 갖고 이야기를 시작해보죠. 우선 △안식에 대한 발전적 사상의 정립 △정직으로 희망을 주는 사람 △이웃의 천사가 되는 봉사 등 세 분야로 나눠 제안하려 합니다.
이런 의식과 실천이 재림청(소)년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살아 숨 쉬고, 준비된다면 세상의 인식을 바꿀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 안식에 대한 발전적 사상의 정립
먼저 ‘안식일’이라는 가치를 어디서부터 정립해가야 할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른바 ‘안식 사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솔직히 지금까지는 ‘제칠일안식일 = 아무 일도 하지 말라’라는 개념이 아주 강했어요.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하나 놓친 게 있습니다. 영어로 ‘안식을 지킬지니라(레 23:32 NIV)의 ‘지킬지니라’라는 말이 ‘Observe’라는 단어에요. 그것은 법규적인 ‘지킨다’의 뜻을 갖고 있죠.
의식적 법에서부터 출발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요구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게 안식일 사상과 연결되어 있어요. ‘안식하게 하라(레 25:2 NIV)’ 이건 법적 개념입니다.
그런데, 십계명에는 ‘안식일을 준수하라’고 말하지 않고, ‘Remember the sabbath day, to keep it holy(출 20:8 KJV)’라고 표현합니다. ‘Keep’이라는 단어를 썼어요. 그건 ‘누리라’ ‘보유하라’라는 의미입니다. 뜻이 전혀 다르죠. 법적으로 준수하라고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그 안식의 축복을 보유하고 누리라는 것입니다. ‘Keeping’이에요. 영어 성경에는 명료하게 ‘Keep’이라고 써놨어요. ‘Keep it holy’ - 이것을 거룩히 유지하라 - 라고 말이죠.
저는 여기서 우리 청(소)년들에게 안식일 사상의 좀 더 발전적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 말이 잘못 곡해되면 자칫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꼭 하고 싶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우리의 안식일 사상은 단순히 ‘쉬면 된다’는 개념이었어요. 안식일 자체를 투쟁적으로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했지만, 담장 너머에 있는 누군가 쉼과 평안을 누릴 수 있도록 희생했는가에 대해서는 고민이 적었다는 뜻입니다.
질문 하나 할게요.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우리에게 주셨을 때, 안식일을 법률적 혹은 교리적 준수로 지키라고 주셨을까요? 아니면 그 안식의 축복이 세상의 보편적 가치가 되어 누구든지 고통 받는 사람은 일곱째 날에 평안을 누리고 쉬라는 의미에서 주셨을까요? 이게 바로 ‘안식 사상’이고 ‘안식년 사상’이에요. 일로부터 자유롭고 평화롭게 혹은 어떤 제재로부터 속박하지 말고 오히려 자유롭게 하라는 겁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재림청(소)년들의 안식일 사상은 적어도 ‘내가 뭔가를 집요하게 지켜야 한다’는 사상보다는 내가 사랑으로 봉사하고 희생함으로 누군가가 평화롭게 쉼을 얻을 수 있다면, 그런 사랑을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게 진정한 안식일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이제는 ‘(법규적)준수’라는 개념에서 하나님의 안식의 축복을 Keep할 수 있고, 세상이 누릴 수 있도록 배려된 안식으로 ‘거룩’이란 개념이 전환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약성경에 예수님과 관계된 안식일의 debate가 일곱 번 기록되어 있어요. 그 중 한 번도 준수의 개념은 없습니다.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나 마구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눅 13:15)’를 비롯해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마 12:5)’ 등 하나같이 ‘준수’의 의미가 아닙니다. 안식 사상을 얼마나 누리게 했느냐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우리의 이웃에게 ‘재림교회는 하나님의 안식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형성되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없으면 그들에게 진정한 쉼과 위로가 없다는 고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안식의 개념입니다. 나만의 안식이 아니라, 고통 받는 이웃의 쉼을 위하여 하나님의 평안을 함께 나눈다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날 때 우리가 안식일을 준수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 연장선에서 일곱째 날을 일에서부터 쉼으로 주실 때, 그 가치를 ‘어댑터’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봐요. 우리 청(소)년들이 복음에 구별된 의미로 세상을 빛으로 비출 수 있는 길은 그렇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고백컨대, 내가 그렇게 살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매우 아픕니다. 나는 요즘 안식일에 우리 병원 식당에서 조리보조 일을 하곤 합니다. 내가 가서 한 사람 분량의 봉사를 하면 우리 조리원 중 한 사람은 그 안식일에 예배를 드리며 쉼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나는 안식일을 그렇게 지키고 싶어요.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하나님을 배반하거나 안식일의 거룩함을 훼손한 게 아니에요. 적어도 내가 수고해서 우리 직원 중 누군가가 예배드릴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 방법을 선택하겠다는 겁니다.
우리 청(소)년들에게 바라는 점이 바로 그런 거예요. 거기에 ‘살 길’이 있고, 생명이 있다고 봐요. 재림청(소)년들이 많은 비난과 고통 속에서도 안식일을 준수하는 충성스러운 믿음이 있어야 하지만, 그만큼 안식일에 하나님의 안식을 세상에 보일 수 있는 의식과 의지와 도전을 해 봤으면 좋겠어요.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주셨는지 그 진정한 뜻을 되살리고 회복해 실천한다면 세상도 그걸 알게 될 겁니다.
안식에 대한 사상을 좀 더 확장해 가십시오. 그래서 누군가 여러분을 볼 때 ‘안식을 주는 친구’라는 담론이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도록 하십시오. 재림교인이 있을 때 언제나 평안과 쉼이 있고, 누군가를 돕고 회복하는 날이 안식일이라는 인식을 우리 사회에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교리적으로 더 연구하고, 정리해야 할 부분도 있죠.
■ 정직으로 희망을 주는 사람
두 번째는 우리 교회의 이름에 드러나 있는 ‘예수재림’ 속에 우리가 발견하고 지향해야 할 가치가 내재되어 있다는 겁니다. 흔히 마태복음 24장을 ‘말세의 장’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말세에 대한 징조는 강조하면서도, 마지막 비유는 간과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세에 일어날 일을 언급하시고, 마지막에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에 대한 비유로 말세 행동강령을 보여주십니다.
이 말씀은 말세에 그러한 징조가 일어나는 걸 볼 때, 조금만 참으면 재림이 온다는 짧은 위안을 주려는 게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강령을 제시합니다. 때를 따라 일용할 양식을 주듯 이웃을 살피고, 무너진 곳에 뛰어가서 희망을 줄 수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라고 지적합니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삶을 강조하는 것이죠.
재림은 희망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자신이 소속한 집단에서, 혹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세상에서 어떤 희망의 존재가 될 것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아니면 내가 가진 ‘무엇’ 때문에 주변에서 나를 희망으로 볼 것이지 고민해야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 희망을 ‘정직’으로 구현하길 기대합니다.
아리마대사람 요셉은 불의가 장악된 상황에서도 ‘저희의 결의와 행사에 가타 하지 아니한 자라(눅 23:51)’로, 불이익이 불 보듯 뻔해도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막 15:43)’는 행동하는 양심의 사람으로 기록됩니다. 그리고 그의 행위가 기록될 때마다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로 기록됩니다. 재림성도입니다. 재림교회 초기 역사에서 베틀클릭에 살았던 데이빗 휘트(David Hewitt)는 ‘마을에서 가장 정직한 사람’으로 기억됩니다. 하늘을 기다리는 백성의 특성은 충성스러운 사람들입니다. 그 충성스러움이 부도덕한 사회에서 정직한 생각과 행동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데이비드 휘트. 그의 묘비에는 ‘마을에서 가장 정직한 사람’이란 소개와 ‘베틀클릭 최초의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이라는 비문이 기록돼 있다. 재림교회의 교회명을 제안한 한 사람으로써 상징적 의미가 큰 인물이다.
■ 앞서 재림교회의 신념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 어떤 가치로 드러날 수 있는가?에 대한 지적과 맥을 같이하는 군요.
- 그렇습니다. 좀 억지 같지만, 내가 기회가 되면 꼭 해보고 싶은 사업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정직을 파는’ 회사를 설립하는 겁니다. ‘누구든지 정직한 사람이 필요하면 우리 인재를 등용하십시오. 만약에 우리 자원이 귀 회사에 부정직한 일로 손해를 끼치면 법인이 100% 보상합니다’라는 카피로 인력이 아닌, 정직을 파는 거죠. 그래서 우리 재림청년들이 정직의 가치로 직장인이 되게 하고 싶습니다. 거짓을 능력으로 가르치는 절망적인 세상에 순수함의 희망을 주고, 부도덕한 사회에서 정직을 인력자원의 가치로 만들고 싶습니다.
나는 삼육교육을 받으면 그 누구보다 정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급여수준이 다소 낮더라도 자신이 봉사할 수 있다면 충성스럽고 기쁘게, 그리고 결코 부정직한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이러한 정직과 신념이 사회적 담론으로 확산하면 세상을 바꿔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삼육교육이 갖는 가치고,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재림청년의 미래를 열어주는 길이 될 겁니다.
이러한 등식을 누군가 해낼 수 있다면 ‘사람’으로 승부할 수 있는 희망의 공동체가 되고,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에 대한 사회적 가치가 한껏 고양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아마 갈수록 사회는 더욱 강퍅해지고, 부도덕해질 겁니다. 그래서 정직한 사람이 더 필요합니다. ‘정직이 자랑이 되는 삶’ 그런 개념이 재림청(소)년의 세계에 충만하게 가득차면 우리의 살 길은 열릴 겁니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정직한 삶의 가치를 배우고 그걸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졸업 후 정직을 바탕으로 직장인이 되는 길이 보장된다면 재림청소년들의 심적 방황은 끝날 것이며 그런 행복감이 교회의 보편적인 가치와 의미로 확고해진다면 재림교회의 선교지형이 바뀔 겁니다.
실제로 그런 사례가 있습니다. 제주에 가면 김 모 장로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가 군 복무를 할 때, 철저하게 안식일을 지키며, 매우 정직하게 국가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당시 중대장이었던 분이 훗날 한 대기업의 사장이 됐습니다. 그래서 제주에 별장을 지었는데, 그 별장을 관리할 사람으로 자기가 군대에서 부하로 데리고 있던 그 정직하고 철저한 재림청년을 수소문해서 찾아 그 별장을 맡깁니다.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희망은 이렇듯 사람이어야 합니다. 불법이 성하고 사랑이 식어지는 말세에 기업마다 찾아야 할 희망의 사람으로서 재림청소년의 정직이 기억되기를, 비록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정직을 재산으로 삼으려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 이웃의 천사가 되는 봉사
우리가 전하는 기별을 일컬어 ‘세 천사의 기별’이라고 합니다. 그 핵심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입니다. 곧 ‘그리스도의 의’를 뜻합니다. 예수의 품성이죠. 그렇다면 ‘세 천사의 기별을 메시지로 전해야 할 것인가?’ ‘세상에 품성으로 나타내야 할 것인가?’ 자문해 볼 수 있겠습니다. 제가 보기에 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세 천사의 기별을 믿는다면, 그리고 그 핵심인 그리스도의 의를 품고 사는 사람이라면, 그 삶에서 분명히 그 의를 드러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각박한 세상에 천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개념을 어떻게 실행 가능한 팩트로 제시할 수 있는가 의문이 생기겠죠. 몇 가지 예를 들어 볼게요.
우선 ‘TOMS shoes’ 이야기를 잘 알 겁니다. 미국의 사업가 블레이크 마이코스키라는 사람이 아르헨티나를 여행하던 중 신발이 없어 맨발로 살아가는 아이들을 만납니다. 그들을 돕고 싶었던 블레이크는 지속 가능하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게 되고, 마침내 고객이 신발 한 켤레를 구매할 때마다 한 켤레를 신발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전달하는 One for One 기부를 시작합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죠. 한 신체장애인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불편함 때문에 사회에 기여하는 게 제한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책을 읽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는 시각장애인 아동에게 책을 읽어주고, 때론 녹음 파일을 전송해주는 봉사활동을 합니다. 그건 특별한 재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글을 읽고, 말을 할 수 있고, 약간의 시간만 들일 수 있으면 가능한 일입니다.
광주 무등산 자락에 한 돌솥밥집이 있었습니다. 이 식당에서는 밥 한 그릇을 먹으면 수익금의 1%를 아프리카 사람의 한 끼 식사로 기부하는 캠페인을 했습니다. ‘여러분의 돌솥밥 한 그릇은 아이들에게 한 그릇의 식량이 됩니다’라고 현수막을 붙여놨어요. 작은 수익이라도 지구 반대편 누군가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말하는 천사의 개념이 이런 겁니다. 막연하게 선한 모습으로 살라는 게 아니라, 작은 일이라도 누군가를 위해, 그들이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는 것. 그 일에 도전해 보길 권유합니다. 자신이 전공하는 영역에서, 생활하는 부분에서 사회적으로 기여한다면 그게 비로소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천사의 모습으로 비칠 겁니다.
그런 우리의 모습에 누군가 “당신은 왜 그런 선행을 하는가?”라고 물으면 “예수님의 삶이 너무 좋아서”고 말한다면 얼마나 큰 감동이 될까요?
재림성도의 이런 모습이 지역사회에 보석처럼 고르게 박힌다면 곧 세상을 바꿀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불안한 세상이지만, 더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고 당당하게 살길 바랍니다.
아마 이런 가치가 우리 안에서 계속 공유되고, 현실에서 들불처럼 번져나간다면 지역사회와 공동체를 빠르게 변화시킬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의식이 DNA처럼 뿌리내리고, 다양한 영역에서 성숙해져 나타나면 더욱 자랑스러운 재림신앙인이 될 겁니다.
재림을 사모하며, 하늘을 기다리는 사람의 의미 있는 삶을 위해 이런 일을 실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내용을 전할까도 중요하지만, 그동안 우리가 간과했던 일을 돌아보는 것, 즉 영원한 복음이 삶이 되는 것도 이 시점에서는 매우 중요합니다.
■ “나눔과 공유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삶 돼야”
- 이제 은퇴를 앞둔 시점에서 ‘이 교회를 어떤 방법으로 사랑해야 하나’ ‘어떤 방법으로 자라나는 세대에게 아름다운 미래를 제시할 수 있을까’ ‘그들이 어떻게 보람과 의미를 갖고 삶을 가치 있게 살아갈까’ ‘성서의 진리와 현실 사이에서 어떻게 미래를 설계하고, 조율해야 할까’ 나아가 ‘우리의 발걸음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가?’ ‘성서적 사실과 일치하는가’ ‘어디까지 바꿔갈 수 있을까’ 등 여러 가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이러한 고민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면서 하나의 새로운 청소년 문화와 운동으로 전개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돌이켜보면 이러한 시도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죠. 그러나 에너지가 집약되어 나타나지 못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기성세대는 플랫폼을 만들어주지 못했고, 무브먼트는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모체마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청(소)년들은 딜레마에 빠져 길을 찾고 있습니다. 스스로 선택하는데도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이제 정리하려 합니다. 첫째, ‘제칠일안식일’에서 창조주가 제시한 안식 사상이 무엇인지 바르게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사상을 원래대로 회복해 가려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제칠일을 법규적으로 준수(observance)한다는 의미를 넘어, 안식의 진정한 누림(keeping)을 실현해야 합니다. 내가 안식(rest)하는 것을 넘어, 담장너머의 인생이 안식(peace)할 수 있도록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확장해야 합니다. 이것이 창조주의 이상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예수재림교회’에서 재림하실 예수의 기다림이 ‘희망’이 되게 해야 합니다. 그 희망을 기다리는 사람은 아리마대 요셉처럼, 초기 재림성도 데이빗 휘트처럼 소속 집단과 사회에서 ‘충성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부도덕한 사회에서 정직한 사람이 희망이 되는 가치의 실현을 우선해야 합니다. ‘정직함으로 세상에 충성한 사람들’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끝으로 ‘세 천사의 기별’에서 천사의 손길이 되는 삶과 실천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세 천사 기별의 중심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이며, 그 중심 사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품성입니다. 이 품성을 기별로 전할 것인지, 사회 속에 실천된 모습으로 전할 것인지 답은 분명히 정해져 있죠. 입술의 기별에 그치지 말고, 실천된 사랑과 행동으로 나타내 보여야 합니다.
나눔과 공유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실천해 가는 것이 재림청년들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강조 방향은 재림교회의 신조와 기별이 ‘체제의 유지방법’이거나 ‘상대적 우월감’ 혹은 ‘이기집단의 옹호수단’이 아닌, 사회가 읽고 공감할 수 있는, 사회적 옹호와 영향력이 확대되는 삶으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 장시간 동안, 우리에게 실질적이고 교훈적인 말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끝으로 교회와 성도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 알고 실천하지 못한 저의 죄가 더 크지요.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 재림교회에 대한 사랑이 불타고 있으며, 한 개인으로서 빛이 되는 불이 되도록 더 노력하겠습니다. 재림교회를 섬기는 일에도 일궤십기의 정신을 실현해 가겠습니다.
부디,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든지 그 세상에서 사랑받는 재림교회와 재림청년들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빛난 내일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갈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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