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라코리아 ‘사랑의 의료봉사대’ 네팔 봉사체험기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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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kbtlove@kuc.or.kr
입력 2015.07.0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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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재난에도 변변한 치료조차 받지 못하던 이들에게...
홍보 현수막을 붙이고, 수북이 쌓인 먼지를 손수 털어내며 집기를 정리했다. 변변한 탁자도, 의자도, 베드도 없는 곳이지만, 책상을 붙여 하얀 도포를 깔면 곧 외과와 내과, 치과가 됐다. 약을 진열하면 그곳에 약국이 차려졌다.
지진 이후 전기가 끊겨 불이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는 밝은 창가에 자리를 잡고, 창문 안으로 새어 들어오는 햇빛에 의지해 진료를 해야 했고, 때때로 비좁은 실내엔 약국을 차릴 공간이 없어 작열하는 뙤약볕 밑에서 현수막을 지붕 삼아 조제해야 했다.
찜통 같은 더위는 의료진의 옷은 금세 땀으로 흠뻑 적었고, 사방이 뻥 뚫린 진료소는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금세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았다. 정신없이 밀려드는 환자들에 변변하게 식사를 하거나 물 한 모금 마실 겨를도, 잠시 앉아 쉬거나 화장실을 갈 여유도 없었다.
현지인 간호사가 접수창구에서 환자의 이름과 나이, 증상, 혈압, 체온 등 기본적인 사항을 체크하면 각 과별로 이동하는 방식으로 진료가 진행됐다. 환자가 네팔인 봉사자에게 현지어로 증상을 말하면, 이를 다시 영어로 통역해 의사를 소통해야 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한국에서 의료진이 왔다는 소문이 퍼지자 삽시간에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엄마 품에 안긴 젖먹이부터 지팡이를 든 꼬부랑 할머니까지 동네 사람들이 진료소로 향했다. 크고 작은 질병과 부상의 흔적을 안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 지진이 일어나던 날, 아비규환의 현장을 대신 보여주는 듯했다.
밀려드는 환자를 정리하는 것도 일이었다. 사람의 행렬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빠져나가길 반복했다. 네팔사랑선교회 송해섭 회장은 환자들의 번호표를 만들어 배부했다. 아드라코리아 사무총장 신원식 목사도 접수창구에서 주민들의 대기 순서를 정리하며 일손을 거들었다.
환자들은 동남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화불량이나 영양결핍, 고혈압, 관절염 등 만성질환자가 대부분이었지만, 지진으로 인한 2차 감염자도 상당수였다. 지진 당시 급작스럽게 몸을 피하다 다리를 삐거나 피부에 열상이 발생한 주민도 많았다. 게 중에는 골절환자도 있었다. 응급조치를 하지 않고, 위생상태가 불결한 환경에서 오랫동안 지내온 터라 찰과상이나 타방상이 깊은 염증으로 번진 사례가 많았다.
의료진은 감염이 심한 환자는 그 자리에서 농양을 제거하는 시술을 했다. 상처를 소독하고, 연고를 바르고, 약을 처방하거나 주사제로 환부를 어루만졌다. 그러나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염증이 더 심해지면 입원하고 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후속치료가 제대로 이뤄질지 걱정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상처가 더 깊어져 농양이 패혈증까지 이어질 수 있어 염려가 됐다.
치과를 찾는 사람들은 한결 같이 아래턱을 부여잡고 극심한 치통을 호소했다. 제3세계나 극빈국 오지마을 사람들 대개가 그렇듯, 이곳 주민 역시 대부분 평소 구강관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치아상태가 엉망이었다. 칫솔도 없어 양치질을 하는 사람 자체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렇다보니 어려서부터 치아가 빨리 망가지고, 충치나 염증이 생기는 경우가 허다했다. 심지어 잠시 통증을 잊기 위해 잇몸에 담뱃잎을 한가득 물고 온 환자도 있었다.
한국 사람이야 병원이 가까우니까 아프면 언제든 치과에 갈 수 있지만, 이곳 사람들은 평생 의사를 한 번도 못 만나는 사람도 많았다. 권마태 원장은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평소 구강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개념을 설명해주고, 핸드 스케일러로 치아 사이에 잔뜩 낀 치석을 제거했다.
발치가 필요한 사람은 썩은 치아를 깨끗이 뽑아주고, 지긋지긋하게 속 썩였던 잇몸통증과 염증은 말끔하게 제거해 주었다. 한동안 잠도 못 잘 정도로 아파서 힘들어하던 사람들의 얼굴에 오랜 만에 웃음꽃이 피었다. 불도 들어오지 않는 진료소에서 의료용 헤드라이트 낮은 불빛에 의지해 진료를 해야 했지만, 보람이 한줄기 바람처럼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해외 의료봉사대를 나오면 약국이 가장 바쁘기 마련이다. 이번 기간에도 약국은 몰려드는 환자들의 발길로 숨 돌릴 틈 없이 분주했다. 내과, 외과, 치과 등 각 진료 과별 환자들이 모두 몰리면서 문전성시를 이뤘다. 최선혜 약사는 흐르는 땀을 연신 손수건으로 닦아내며 약을 조제했다. 장진옥 간호사도 손발을 맞추느라 한눈을 팔 겨를이 없었다.
게다가 복약지도까지 동시에 이뤄지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만에 하나 환자가 뒤바뀌거나 복용방법을 잘못 이해해 오용한다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처방된 약을 잘 이해하고 복용할 수 있도록, 큰 목소리로 몇 번이고 같은 설명을 반복하는 모습이 며칠 동안 계속 됐다. 약국은 이번 기간 동안 제일 일찍 문을 열고, 제일 늦게 문을 닫았다.
진료소 밖에서 길게 줄을 늘어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대기 환자들에게는 일일이 구충제를 나눠줬다. 하지만 달달한 맛의 구충제가 비타민이나 영양제인 줄 알고 한 번에 몇 개씩 받아먹으려 달려드는 철부지들의 모습이 슬프게 다가왔다.
초등학생 아이에게는 준비해간 연필과 가방 등 학용품을 선물하기도 했다.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이지만, 소중하게 여기며 연신 방긋방긋 웃음꽃을 터트리는 아이들의 구김 없는 모습이 천진난만했다.
거대한 재난을 겪고도 제때 의료진을 만나지 못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신음하던 주민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드라코리아 의료봉사대의 모습은 현지인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섰다.
라케쉬 장로는 “식사할 자리마저 없어 동네 구멍가게 의자를 빌려 끼니를 때우는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계속되는 여진으로 인해 불안해하고 있는 주민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우리의 아픔을 나눠주어 정말 고맙다. 국가도 해주지 못한 일을 한국의 의사들이 해 주었다. 그 숭고한 희생과 봉사를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고 진한 고마움을 표시했다.
근로자의 한 달 평균수입이 우리 돈으로 6-7만원에 불과한 이들에게 병원 진료는 언감생심이었다. 대개 한 번 치료를 받는데 2-3만원이 든다. 벽지에 사는 사람은 큰 병원에 가려면 카트만두까지 오가는 교통비와 식비 등 진료비 이외의 부대비용이 더 지출되기 때문에 부담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이로 인해 아무리 아파도 의사를 만나 치료를 받는다는 건 이곳 사정상 큰맘을 먹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어떤 환자에겐 이번 치료가 평생 한번뿐인 의사의 진료일 수도 있었다.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은 죽음의 땅에 한국 성도들의 따뜻한 사랑의 손길이 꽃처럼 한껏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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