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성서예언연구, 네 문단으로 정리한 ‘매일의 연제’
페이지 정보
김범태 기자
kbtlove@kuc.or.kr
입력 2014.10.27 10:14
글씨크기
본문
홍명관 목사, 다니엘-요한계시록 중심으로 지구 역사의 미래 제시
홍명관 목사는 이번 기간 동안 ‘혼란 속에 빠진 지구 그 역사의 정점은?’ ‘종말의 서곡인가, 희망의 찬가인가’ ‘종교적 정치 세력의 출현과 십계명 변경에 관한 예언’ ‘짐승의 표와 그 수 666에 관한 예언’ ‘마지막 인류를 향한 최후의 통첩’ ‘사후세계에 대한 진실과 거짓 - 죽음의 상태’ ‘천년왕국에 대한 예언’ 등 매일의 연제를 통해 신앙의 결단을 촉구했다.
입추의 여지없이 집회장을 가득 메운 700여 청중들의 마음을 뜨겁게 달군 매일의 말씀 중 주요 핵심 내용을 압축해 네 문단으로 정리했다.
■ 혼란 속에 빠진 지구 그 역사의 정점은?(다니엘 2장)
성경은 세상 역사의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세상 종말에 관한 징조들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그러므로 너희가 다니엘이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마 24:15, 16)라고 언급하셨습니다. 즉 종말에 대해 알기를 원하는 자는 다니엘서를 연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600년 전, 기원전 6세기경에 근동 세계의 최강국이 된 바벨론의 젊은 대왕 느부갓네살은 아버지 나보폴라살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후 이전처럼 다시는 망하지 아니할 만세 왕국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 꿈을 주신 이유는 이 세상 역사가 느부갓네살 왕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깨우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 왕에게 주신 꿈을 통해서 지난 2600년의 역사와 앞으로 남아 있는 이 세상 역사가 어떻게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이루어지게 될 것인지를 한눈에 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류는 문명의 발달을 이룩하기 위해 수많은 파멸의 인자들을 발생시켜 놓았습니다. 오늘날 여러 분야의 과학자들은 지구를 구할 수 있는 뚜렷한 대책이 없다는 사실에 염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인류의 미래는 절망입니까? 아닙니다. 성경은 인류가 스스로 파멸에 이르기 전에 ‘뜨인 돌’로 예언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그의 백성들을 영원한 왕국으로 데려가시는 구원의대역사가 있을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 종말의 서곡인가, 희망의 찬가인가(마태복음 24장)
성경 예언에 의하면, 지구 역사가 맞게 될 최후의 날은 예언가나 과학자들이 말하는 비관적 종말과는 전혀 다르게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인류가 저질러 놓은 어떤 파괴적 요소들에 의해 멸망할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의 예언을 통해 이 세상에 경고되고 있는 최후의 날은 전 세계가 함께 동시에 맞게 될 최후의 날로써 어떤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멸망을 절규하며 죽게 될 최후의 날이 될 것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기쁨을 맞게 될 영광의 날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온 인류의 희비가 엇갈리는 지구역사의 최대의 사건, 최후의 사건이 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분의 백성들이 이 땅으로부터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구원받는 반면, 그분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죄악 가운데 살다 영원히 버림받게 되는 그 엄숙한 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의 날, 여러분은 어느 편에 서겠습니까?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경고의 기별을 주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웠느니라”(눅 21:28) 이 기별을 들으신 여러분은 세상 종말의 역사를 생각하며 두려워하는 자가 아닙니다. 우리 앞에는 구속의 날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류 역사의 최고의 날이 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경고의 기별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자들에게는 최후의 날이 될 것입니다. 오늘 이 기별을 접한 여러분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을 최고의 영광의 날로 맞이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종교적 정치 세력의 출현과 십계명 변경에 관한 예언(다니엘 7장)
만약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안식일이 어느 날, 무슨 요일이냐고 물으면 무엇이라고 대답할까요? 그들은 틀림없이 그날이 주일 중 일곱 번째 날 토요일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주일 중 일곱 번째 날을 ‘안식일’로 지켰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십자가 이후에는 안식일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십자가 이후에도 여전히 안식일을 지켰음을 누가복음은 기록하고 있습니다.(눅 23:53~56)
하나님의 법을 대표하는 것은 십계명입니다. 그 십계명 중에 때와 관련된 법은 안식일 계명입니다. 예언은 ‘작은 뿔’로 묘사된 세력이 이 안식일 계명을 변경시킬 것을 진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예언은 실제로 성취되었습니다.
오직 성경만을 믿음의 유일한 지침으로 삼는 개신교인들이 교회의 전통에의 의해 점진적으로 변경된 일요일을 주의 날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과연 양심적으로 타당한 일일까요? 오늘 우리에게 도전하는 한 큰 중대한 문제는 성경과 역사가 증언하는 참된 주의 날을 회복할 것인가 혹은 교회의 전승을 따라 이교의 낙인이 찍힌 날, 일요일을 그대로 주의 날로 고수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일 것입니다.
안식일과 주일, 토요일과 일요일 문제는 요일이나 날짜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사람의 전통을 지킬 것인가? 하나님께 순종할 것인가, 사람에게 순종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이며 경배의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받기를 원하시는 예배를 드리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어떤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그분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거룩하게 하시고 복되게 하신 안식일을 지키기로 선택하기 바랍니다.
■ 짐승의 표와 그 수 666의 비밀(계시록 13장)
요한계시록 13장은 이 세상 역사 마지막 때에, 이 세상에서 일어나게 될 선악의 대쟁투에 있어서 악의 세력을 주도할 두 개의 큰 정치적 종교적 세력의 정체를 예언해 주고 있습니다. 그 예언된 세력은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과 ‘땅에서 올라오는 새끼 양’으로 예언되어 있는데 이 두 세력이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하게 위해 연합하게 될 것입니다.
기묘하게도 (문자를 수치로 나타낼 때 사용하는 규칙에 따라)‘하나님 아들의 대리자’라는 이름의 라틴어 표기를 수치로 나타내면 666이 됩니다. 초기 개혁자들 대부분은 다니엘 7장(작은 뿔)과 계시록 13장(복합 짐승)에 나오는 동일한 적그리스도의 세력을 교황권에 적용했습니다. 마틴 루터는 물론, 존 칼빈이나 존 낙스도 동일한 입장을 취했습니다.
계시록 13장의 복합 짐승(교황권)은 교회와 정체적 세력이 결합된 박해 세력으로 예언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짐승의 우상은 국가 정부와 결탁된 그리고 국가 정부로부터 권세를 부여받아 교황권의 일을 도와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기 위하여 조직된 종교적 체제가 될 것입니다. 사탄은 어떤 방법으로든 이 땅의 모든 사람이 “짐승에게 경배”(계 13:8)하도록 하여 자신의 종으로 삼을 것입니다.
마지막 선의의 대쟁투에서도 어떤 위협과 핍박이 가해져도 끝까지 하나님께 충성할 백성, 즉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끝내 짐승의 표를 이기고 승리한 무리가 되어 하늘 시온산에 서게 될 것입니다(계 14:1). 바로 그 승리한 무리 가운데 우리 모두가 포함될 수 있도록 오늘 우리의 결심을 하나님께 드립시다.
■ 마지막 인류를 향한 최후의 통첩(계시록 14장)
요한계시록 14장 14~20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알곡으로 상징된 의인들의 구원과 포도송이로 상징된 악인들에 대한 심판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비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심판이 집행되기 전에 , 우리가 그 심판을 피하여 구원받을 수 있도록 마지막으로 구원의 기별을 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요한계시록 14장 6~12절까지 기록된 세 천사가 외치는 기별, 하나님의 최후의 통첩입니다.
인간의 구원은 전적으로 믿음에 의한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구원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분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분의 말씀(계명)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의 능력이나 의지로 계명에 순종할 수 없습니다. 이제 말씀에 순종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바른 길을 가르쳐 주시고, 말씀에 순종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경에서 ‘여자’는 교회를 상징합니다(고후 11:2). 순결한 여자는 참 교회를, 음녀는 배교한 교회를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다고 하는 뜻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 배도의 길을 걷고 있는 타락한 교회들의 가르침에서 떠난 자들임을 말해 줍니다. 그들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닌 이교의 가르침이나 교회의 전통이나 권위로 만들어진 가르침은 버리고 오직 성경 말씀에만 순종함으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만 충성을 드린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보내는 기별, 영원한 복음으로 선포되는 세 천사의 기별을 따라 살아온 충성된 백성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이란 자기중심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삶으로의 변화를 뜻합니다. 이 변화는 날마다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교제의 경험을 통해 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이제 자기중심의 삶이 아니요, 인본주의적 사상이나 가르침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삶으로, 그리고 그리스도 중심의 사상과 가르침만을 따라 충성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 사후세계에 대한 진실과 거짓(죽음의 상태)
우리는 성경이 아닌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죽음 저 너머의 현 주소에 대한 정확한 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성경으로 돌아가 오직 성경이 말하는 죽음의 현주소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사도 요한이 계시록의 계시를 보게 되었을 때, 계시 중에 나타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계 1:18)라고 하셨습니다. 오직 죽음을 경험하고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신 유일한 분, 예수 그리스도만이 죽음에 대한 대답을 주실 자격이 있습니다.
여러 종교들 그리고 기독교에 속한 여러 교회들 가운데서도 사람이 죽을 때에 그것은 진짜 죽는 것이 아니고, 어디론가 간다고 가르칩니다. 그곳은 지옥이나 천국, 연옥, 극락이든지, 또는 윤회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사람이 죽으면 곧 천국으로도, 지옥으로도, 연옥으로도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혹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사람의 영혼이 불멸한다고 믿을 것입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성경에 ‘영혼’ 또는 ‘혼’으로 번역된 말이 약 1600번 이상 나타나지만 한 번도 불멸하거나 죽지 않는다는 표현을 쓰지 않았습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신앙 위에 세워졌습니다. 죽음을 정복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손을 잡고 우리를 인도하여 죽음을 통과하실 것입니다. 나사로를 죽음으로부터 부활시킨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죽음의 잠으로부터 깨워 일으킬 것입니다. 죽음은 잠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경은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죽음은 인생의 끝이 아닙니다. 그것은 잠깐 쉬는 ‘잠’에 불과합니다. 죽음에서는 시간의 경과를 절대로 알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죽음을 위해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준비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오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나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 26)고 질문하십니다. 여기 영원히 사는 길이 있습니다. 죽어도 사는 길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십시오. 그분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으십시오.
■ 천년왕국에 대한 예언(계시록 20장)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치 않고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그분은 공의로우셔서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죄를 버리지 않은 자들을 공의롭게 심판하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악인의 종말에 대하여 성경이 어떻게 가르치는지 자세히 살펴보고, 우리의 잘못된 개념을 바꾸도록 합시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입니다. 하지만 ‘영원지옥설’은 하나님의 공의성에 위배됩니다. 짧은 일생 동안 지은 죄로 인해 “영원한 지옥 형벌”에 처하는 것은 죄보다 벌이 크므로 하나님의 공의를 왜곡시키는 오류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에 위배됩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며 동시에 “사랑”이십니다. 그런데 영원히 고통을 주는 것은 자비롭고 은혜로운 “사랑의 하나님의 품성”을 잘못 나타내므로 오류입니다.
주님께 우리의 삶을 굴복시키며, 주님께서 나의 구주요 주가 되어 주시길 원한다고 말씀드리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인생에서 주님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그 모든 것을 취해 가시길 원한다고 말씀드리기 바랍니다. 이처럼 지극히 중요한 결정에 그 어느 것도 방해하지 않도록 합시다. 새 예루살렘 성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든지, 그렇지 않으면 성 밖에서 그리스도를 대항하여 싸우게 될 것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어느 편에 서기로 선택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구속의 계획을 세우고, 구원받을 사람들에게 주실 엄청난 보상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 놀라운 구원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그것은 간단합니다. 구원을 받는 것은 어떤 시험처럼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 비결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십시오. 그분을 선택하십시오. 그리고 그분 안에 약속된 영생과 하늘을 취하십시오.
특집
-
인공지능 시대, ‘목회자’는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2024.10.24
-
인공지능 시대, ‘재림성도’는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2024.10.24
최신뉴스
-
윌슨 대총회장 부부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방문 2024.11.07
-
삼육서울병원, 만성폐쇄성폐질환 적정성평가 ‘1등급’ 2024.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