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1세기, 다가올 100년’ 서울삼육초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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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kbtlove@kuc.or.kr
입력 2013.10.18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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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야간학교로 개교 ... 특성화교육으로 명문사학 우뚝
당시 선지자의 말씀에 따른 교육의 필요성을 느낀 본부교회 선교회가 주관해 설립했다.
이후 학생 수의 증가와 협소한 공간의 확장을 위해 청량리정신병원 인근의 초가를 구입해 학교를 이전하고, 4년제 ‘동명학원’으로 인가를 받았다.
어려운 여건에도 꾸준히 발전을 거듭한 학교는 1926년 회기동 99번지에 교사를 신축하고, 정규 6년제 ‘동명학교’로 새 발걸음을 내딛었다. 이듬해 3월에는 제1회 졸업생을 배출했다. 하지만, 1945년 해방 후 정부 시책으로 부득이하게 2년간 휴교했다.
1948년 교명을 ‘서울삼육국민학교’로 개칭하며 서울시의 정식 인가를 받았으나, 1950년 한국전쟁 발발로 또 다시 학교 문을 닫아야 했다. 그러나 임시휴교의 악조건에도 교육열은 식지 않았다. 교사와 학부모들은 제주도 성산포 피난길에도 젓갈 통조림 공장을 빌려 다시 학교를 세우고, 4회와 5회 졸업생을 배출했다.
1951년 서울 수복 후 다시 옛 터전으로 돌아왔지만, 학교를 재건하기엔 여러모로 역부족이었다. 학교 측은 중한대회 사무실을 빌려 임시 교실로 삼고 수업을 시작했다. 이후 회기동 본부교회 예배당과 연합회 선교사 사택을 교사로 사용하며 선지자 교육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러나 날로 증가하는 학생들을 모두 수용하기에는 공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1956년 새 교사를 준공해 이전한 학교는 10년 후 다시한번 자리를 옮겨 현재의 위치에 터를 잡고 덕.지.체의 교육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1970년대 들어 산업화의 물결 속에 국가의 교육제도도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사회의 급속한 발전에 따라 사립학교 교육의 질도 향상시키지 않고서는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서울삼육초등학교는 이후 예체능관, 100주년 기념관 건립 등 적극적인 시설개선과 교사의 전문성 향상을 위해 노력했으며, 1990년 이후 서서히 결실이 나타났다. 특히 2000년대 들어 인성교육, 영어몰입교육, 예체능교육 등 특성화교육이 뿌리 내리며 교육과정과 경영면에서 우수학교로 인정받게 됐다.
그동안 교육과학기술부 주관 ‘영어교육리더학교’ 최우수학교, ‘아름다운 교육상’ 대상, ‘아름다운 학교상’ 대상, ‘서울시 교육청 학교종합평가 최우수학교’, ‘기본이 바로된 어린이 서울시교육감 표창’ ‘미래를 여는 핵심인물 – 교육 부문’ 등에 선정되며 지역을 대표하는 명문 사학으로 발돋움했다. 올해도 인성교육을 위한 영어 뮤지컬 연구학교로 지정돼 3년간 교육과학기술부의 지원을 받게 됐다.
100년의 짧지 않은 역사 동안 서울삼육초등학교는 5352명의 인재를 사회 각처에 배출했다. 학교는 앞으로도 ‘德(덕) 참되게, 智(지) 슬기롭게, 體(체) 튼튼하게’의 교훈을 바탕으로 교회와 사회, 하나님과 이웃에게 사랑받는 사람을 양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겠다는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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