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성수기] 김은아 양의 입양가족 이야기
페이지 정보
정리-김범태 기자
kbtlove@kuc.or.kr
입력 2012.06.18 10:50
글씨크기
본문
“나는 너를 죽을 때까지 버리지 않을거야...”
저는 엄마의 부탁을 받고 제 경험이 아이들을 키우는 입양부모께 다소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줄 알았습니다.
저는 5살 때쯤 어떤 가정으로 입양을 가게 됐습니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지금도 잊고 싶은 기억이지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그곳으로 가던 날, 저는 차 안에서 집에 도착할 때까지 울음을 그치지 못했습니다. 왜 그렇게 울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 앞날이 두려워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대부분의 고아원 아이들은 ‘엄마’라는 말을 보물처럼 여깁니다. 그러나 저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무서움 그 자체였습니다. 입양을 가면서 저는 정말 행복한 날들이 펼쳐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의 생활은 행복이 아닌, 불행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집의 아주머니는 자신이 낳은 아들을 잃고, 저와 제 동생을 입양했습니다. 그분으로부터 “엄마라고 부르지 마!”라는 말을 듣는 순간, 저는 어른이라는 사람들에 대해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어른을 증오했고, 미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세상에 있는 어른을 죄다 없앴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한때는 ‘엄마’라는 말을 정말 너무 하고 싶어서 키우던 강아지 ‘해피’에게 매일 같이 몰래 ‘엄마’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곳에서의 하루하루는 정말 너무나 지치고 힘들었습니다.
하루는 집도, 아줌마도 보기 싫어서 윗집 할머니댁 화장실에 숨어버렸습니다. 하지만 곧 들키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죽으려고 앞에 있는 강가로 나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 저 자신이 너무나 싫었습니다.
매일 같이 밤에 잠도 못자고 방을 닦고, 낮에는 마당에 있는 풀을 뽑고, 콩밥과 깻잎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먹는 게 너무 지겨웠습니다. 어느 겨울에는 도로에 있는 눈을 치우는데, 맨발로 치우다 너무 추워 발을 잡고 울었습니다.
이 모든 일보다 더 싫었던 한 가지는 아줌마가 타고 다니는 하얀 승용차였습니다. 저는 그것만 보면 숨이 막히고 앞이 캄캄해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집에 그 차가 있으면 아줌마가 있는 것이기에 항상 집을 가지 않으려고 학교에서 오는 길에 돌아서 오고, 다시 뒤로 갔다가 가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저는 자동차가 너무 무서웠습니다.
하루는 교회에서 순서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가 했던 한 가지 말이 아직도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잘못하면 혼나는데, 어른들은 왜 안 혼나요?”
정말 그때는 하나님이 죽도록 밉고 싫었습니다. 아줌마 같이 나쁜 어른들은 왜 가만 놔두는 건지, 그리고 이렇게 연약한 나에게, 아무 죄도 없는 나에게, 왜 이런 고통을 주시는지 정말 묻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불평 때문이었을까. 아줌마, 아저씨가 저를 다시 고아원으로 보낸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저는 겉으로는 엄청 울었습니다. 나오지도 않는 눈물을 쥐어짜가면서까지. 하지만 속으로는 무척 기뻤습니다. 이 지긋지긋한 집보다, 이 꼴도 보기 싫은 아줌마보다 차라리 엄마 없는 고아가 되는 편이 더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충북 음성의 한 고아원에 맡겨졌습니다. 하지만, 그곳 생활도 그리 쉽지는 않았습니다. 매일 같이 청소를 하는데, 언니들은 약한 동생들에게 모두 시켰습니다. 심지어 일주일에 한 번씩 받는 우리들의 용돈을 뺏앗아 자기들끼리 놀러 나갔습니다. 그래도 참았습니다. ‘이곳에 있으면 언젠가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줄 엄마가 나타날 것이니까’라는 생각으로.
그러던 어느 날, 제 심장을 멈추게 하는 분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저를 고아원에 데리고 왔던 아저씨가 다시 데리러 온 것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간절히, 절박하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정말 시키는 대로 뭐든지 다 할게요. 그러니까 제발 저 집에는 가지 않게 해 주세요. 만약 간다면 전 죽어버릴 거예요”
원장님의 말씀대로 숙소로 가서 짐을 챙기고 그 아저씨의 차에 올라 탔습니다. 그런데, 그 지긋지긋한 곳으로 갈줄 알았던 차가 다른 곳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저와 동생을 요한이 오빠네 부모님께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싫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기도를 들으시고 다른 집으로 보내주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속으로 ‘어린아이들이 사고 팔리는 장난감이냐?’라는 반항심도 생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제가 죽었다 깨어나도 저 아저씨 댁에 있는 모든 분들을 용서하지 않을 거에요’라고 말했습니다. 당시를 떠올려보면 하나님께서 그때 어리석은 저의 기도에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한이 오빠네 집에 도착했을 때, 지금 저의 엄마께서 해주셨던 말씀이 지금도 잊혀 지지 않습니다.
“은아야, 나는 너를 죽을 때까지 버리지 않을거야...”
하지만 저는 이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때까지 많은 어른들에게 상처를 받았기에 저는 그곳에 들어가기까지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어차피 버림받을 거 내가 잘해봤자 뭐하겠어’ 라는 생각에 오히려 문제아가 되기로 작정했습니다.
이런 생각 때문인지, 3학년 때 저는 참 많은 사고를 쳤습니다. 매일 친구들의 싸움에서 빠지지 않았고, 급기야 교장선생님의 눈에 ‘사고뭉치 문제아’로 낙인찍혔습니다. 한번은 선생님께 혼나 벌을 서는데 한 시간 동안이나 울음을 그치지 않아 교장선생님께서 엄마께 전화를 하시는 일이 생겼습니다.
엄마께서는 얼마나 속이 상하셨는지 저에게 “이제껏 아이 키우면서, 학교에서 전화까지 온 건 네가 처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속으로는 너무나 많이 죄송했습니다.
그런데 엄마께서는 제가 잘못할 때마다 그런 저를 가만히 앉혀놓고 “엄마도 어렸을 때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 하지만 잘못은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고치면 된단다”라고 용기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매일 아침마다 성경과 예언의 신을 읽게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너의 힘으로 결코 네 결점을 스스로 고칠 수 없단다. 그러니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제 자신의 결점을 고치려고 무던히 노력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고아원에서 보고 배운 방법대로 행동했을 때에는 아이들과의 관계가 나빠지고, 왕따까지 당하게 될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엄마께서 일러주신 대로, 예수님의 방법대로 섬기고 겸손하게 낮아지면서 결점을 고치려고 노력하자 친구들과의 관계도 점차 회복되었습니다.
저는 엄마의 말씀대로 학교에 가서 아이들이 필요한 물건도 빌려주고, 그 어떤 부탁도 거절하지 않고 내 자신을 낮추고 섬겼습니다. 그러자 오히려 아이들이 나에게 미안하다면서 먼저 다가와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방법대로 실천했을 때에 저의 삶이 조금씩 바뀌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입양홍보를 위해 전국에 있는 교회를 방문할 때마다 저는 이사야 58장의 말씀을 낭독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한 교회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순서를 쓰기 직전에 갑자기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당황한 저는 곧장 엄마께 달려가 목소리가 안 나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엄마께서는 즉시 제 손을 잡고 기도를 해주셨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기도 덕분에 우리는 준비된 순서를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저를 사이에 두고 하나님과 사단이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것을 경험했고,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꿈속에서 하나님의 모습과 음성을 듣기도 하는 행복한 경험을 하면서 제 마음은 치유되어 갔습니다. 지금은 엄마의 말씀대로 그분을 용서하는 마음도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나만 사랑받고 싶어서 이미 먼저 입양된 오빠와 동생과 몸싸움을 벌이고 미워했는데, 지금은 오빠와 많이 친해졌습니다. 때때로 오빠 운동화와 옷도 빨아주고, 필리핀에 간 오빠가 보고 싶어 핸드폰 배경화면에 오빠사진을 저장해 놓았습니다.
또 살렘선교사학교에서 일주일마다 오는 동생들을 위해 피 같은 용돈을 모아 과자를 사주기도 합니다. 산에서 톱으로 나무를 자르는 험한 일을 하시는 아빠의 모습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연약한 몸을 가진 엄마가 새벽마다 일찍 일어나 행복과 구원을 위해 기도하시고 가족을 위해 일하는 모습을 보고 콧등이 짠해지면서 부모님의 희생과 사랑을 느끼면서 효도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비록 가족의 한 일원이 되는 여정이 힘들었지만, 지금의 저의 삶은 행복하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소망 속에 하루하루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리기 때문에 폭넓은 생각을 못하고 그저 자신이 받은 상처만 크게 보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처음에는 감사하지 못하고, 오히려 반항하거나 눈치를 보고, 사랑을 저울질하고 말썽을 부려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래 참아주시고, 인내해 주신다면 아이들은 어른을 믿게 되고,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면서 부모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달라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아침고요입양복지회 부모님들께 정말 감사합니다. 더 많은 아이들이 가족을 찾을 수 있도록 좀 더 힘써주시기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특집
-
인공지능 시대, ‘목회자’는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2024.10.24
-
인공지능 시대, ‘재림성도’는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2024.10.24
최신뉴스
-
[현장 인터뷰] “초기 선교사들의 희생 결코 못 잊어” 2024.11.14
-
[현장 인터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한 ‘돕는 손길’ 2024.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