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선 씨의 주장에 대한 반증’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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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kbtlove@kuc.or.kr
입력 2011.09.19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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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위 “재림교 역사, 교리 발전에 무지한 결과”
한국연합회 이단/이설대책 및 연구위원회
2011년 8월, 홍영선 씨는 다음의 세 권의 책을 출판하여 전국에 배포하고 있다.
▲지구종말 1335일, 카운트다운 (서울: 화남출판사, 2011; 이하 지구종말)
▲경배와 흔들림 (서울: 화남출판사, 2011; 이하 경배)
▲깨끗한 피, 정결한 마음 (서울: 화남출판사, 2011; 이하 깨끗한 피)
지구종말(516쪽 분량)은 2018년을 예수 재림의 시기로 주장한 것이 그 내용이다. 경배(316쪽 분량)는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주장을 다루면서 재림교회를 바벨론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깨끗한 피(579쪽 분량)는 품성변화를 위해서 볶은 곡식을 먹어야 한다는 주장이 중심내용이다. 또한 홍 씨는 문자로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 재림의 시기에 관한 주장을 전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이 가운데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이하 재림교회)의 교리와 상충되는 심각한 오류들이 들어 있는 처음 두 권을 중심으로 한국연합회 이단/이설 대책 및 연구위원회의 입장을 정리하였다.
1. 재림교회는 예수 재림에 대한 어떠한 시기도 정하지 않는다.
홍 씨는 재림교회가 한 번도 정하지 않은 재림의 시기를 정하여 2015년에 미국에서 일요일 휴업령이 내리고, 2018년에 예수께서 재림하신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그는 어떤 근거를 가지고 예수 재림의 시기를 정하고 있는가?
* 홍 씨의 시기 설정의 근거와 그 문제점
1) 각 시대의 대쟁투, 30쪽에 대한 추측과 왜곡
각 시대의 대쟁투, 30쪽. “그리고 7년 동안 예루살렘의 시가를 오르내리며 성도(聖都)에 재앙이 내릴 것을 선포한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밤낮으로 슬픈 노래를 불렀다... 그는 온갖 능욕과 모욕을 당하면서도, ‘화 있을진저, 화 있을진저 예루살렘이여, 화 있을진저, 화 있을진저 그 거민들이여’라고 말할 뿐이었다. 그의 경고의 외침은 그 자신이 예언한 그대로 예루살렘이 포위되어 그가 죽는 순간까지 그치지 아니하였다.”
홍 씨는 위의 인용문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2018년 예수 재림, 지구 멸망을 주장하고 있다. “예루살렘 멸망의 경고 7년의 패턴이, 세상이 멸망할 때도 7년의 패턴을 따른다는 것이다. 2011년 8월에 지구멸망의 동일한 경고를 전파하게 된다면 2018년이 7년이 마쳐지는 해로 예수 재림과 지구 멸망의 해가 된다”(지구종말, 39). “2011년 8월, 현시점에서 볼 때 지금부터 7년을 계산하면 2018년이다”(지구종말, 48).
* 문제점
홍 씨는 예루살렘 멸망 당시 상황에 대한 한 진술을 가지고 재림의 시기를 계산하는 시간 패턴으로 왜곡하고 있다. 각 시대의 대쟁투에 소개된 내용은 당시 예루살렘을 오르내리며 7년 동안 그 성을 경고한 어떤 사람에 대한 단순한 묘사에 불과하다. 그런데 홍 씨는 거기 나오는 7년 기간을 아무런 성경적인 근거 없이 자기 마음대로 재림의 연대를 정하는 기준으로 삼고 있다.
더욱이 홍 씨는 자신의 가정적 생각(“2011년 8월에 지구멸망의 동일한 경고를 전파하게 된다면”)에 근거하여 2011년을 7년 기간의 시작점으로 잡고 있다. 이것은 어린 아이가 보아도 알 수 있는 순전히 개인의 추측에 기초한 엉터리 주장임을 알 수 있다. 그처럼 터무니없는 주장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2) 단 12:11, 12의 1290일, 1335일을 문자적인 실제 기간으로 잘못 해석함
단 12:11-12.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세울 때부터 일천이백구십 일을 지낼 것이요 기다려서 일천삼백삼십오 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
홍 씨는 이곳에 나오는 1290일과 1335일을 실제적인 날 수로 해석하여 2015년에 일요일 휴업령이 내리며, 또 2015년부터 1290일 동안 은혜의 기간이 주어지고, 그 후 45일간 대환난이 있고 그 마지막에 특별부활과 함께 예수 재림이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2011년 8월, 현시점에서 볼 때 지금부터 7년을 계산하면 2018년이다. 7년의 기간 중 일요일 휴업령에서 1335일까지 3년 8개월을 빼면 일요일 휴업령이 내리기까지 법적 제재 없이 복음을 맘껏 전할 수 있는 기회는 2015년까지 3년 반 남짓 남았다”(지구종말, 48).
“일요일 휴업령으로부터 조사심판이 끝나는 기간인 3년 7개월(1290일) 동안은 우리가 생계를 책임져야 하고, 은혜의 시기 끝에서부터 특별부활 사이에 있을 기간, 몇이든 다 죽이라는 45일간은 생명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것이다”(지구종말, 321).
“다니엘 12장의 예언은 미국에서 국가적 일요일 휴업령이 선포되면 그 날로부터 1290일째가 지구상 모든 이에게 은혜의 시기가 끝난다. 그리고 45일간의 야곱의 환난이 있고 1335일째가 예수 재림과 지구 멸망이라는 내용이다.”(지구종말, 44; 참고. 같은 책 300, 301, 312, 313, 350).
“엘렌 G. 화잇은 그의 저서를 통해 이 역사적 사건[미국이 일요일 휴업령을 내리는 사건]은 2015년에 일어날 것이며 그 예언이 성취되는 날로부터 1335일이 마쳐지는 날 예수 재림이라고 경고하고 있다”(지구종말, 516).
* 문제점
엘렌 화잇은 그의 책 어디에서도 2015년에 일요일 휴업령이 있고 2018년에 예수 재림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한 적이 결코 없다. 홍 씨는 그 근거 자료를 제시함이 없이 엘렌 화잇이 그렇게 경고하고 있다고 허위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또한 홍 씨는 단 12:11, 12의 1290일과 1335일을 실제 날수로 해석하여 2015년이라는 시간을 산출하고 있다. 홍 씨는 묵시 예언이 아닌 다니엘서 4장의 “일곱 때,” 바벨론 포로 70년, 노아홍수 120년, 그리고 애굽의 노예 400년 예언 등을 예로 들면서 모든 예언에 연일원칙을 무조건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지구종말, 296-98).
그러면서 묵시적 예언인 단 12:11, 12의 “1290일”과 “1335일”을 연일원칙을 적용하지 않고 실제 날수로 해석하고 있다. 이것은 홍 씨가 묵시적 예언과 일반 예언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 12:11, 12의 1290일과 1335일은 묵시적 예언에 속하는 부분으로 묵시적 예언은 연일원칙에 따라 해석해야 한다. 이 예언 기간들을 1290년, 1335년으로 해석하는 것은 이미 8세기 유대인 주석가들에게서 발견된다.
또한 이러한 해석은 종교개혁 시대와 이어지는 개신교 시대 동안 다른 여러 성경 주석가들에 의해 계속 옹호되어 왔다. 그리고 이러한 해석 전통은 초기 재림신자들에 의해 이어져 왔으며, 그것은 오늘날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역사적 입장이 되었다.
예를 들면, 윌리암 밀러(1782-1849)는 1290년과 1335년이 모두 AD 508년에 시작되는 것으로 믿었다. 또한 1290년은 1798년에 성취되었다고 믿었으며, 1335년은 거기서 45년을 더 가서 단 8:14의 2300년이 마치는 1843/1844년에 이른다고 믿었다.
제임스 화잇도 1857년에 말하기를, “1335일이 2300주야, 1844년의 밤중소리와 함께 마쳤다는 증거는 결정적이다. 그 때 천사(계 10:1-6)는 때가 더 이상 없다고 맹세하였다”고 하였다. 우라이어 스미스도 1290일에 대해 말하면서, “그러므로 두 기간들, 즉 1260일과 1290일은 모두 1798년에 끝난다. 전자는 538년에 시작하고 후자는 그보다 30년 앞선 508년에 시작한다.”고 하였다.
역사를 살펴보면, 496년 로마 가톨릭 교인이 된 프랑크 왕 클로비스(Clovis)는 AD 508년에 교황을 반대하는 아리안주의를 고수하는 서고트(Arian Visigoths)를 정복하였다. 그리하여 중세 가톨릭교회는 AD 508년에 정치적, 교회적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1335일에 대해서 스미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 기간은 1843년까지 이르게 되는데, 왜냐하면 508년에다가 1335년을 더하면 1843년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미스는 밀러의 부흥운동을 가리켜 단 12:12에 약속된 복이라고 말하였다.
엘렌 화잇도 단 12장의 예언이 첫째 천사의 기별이 전파될 때까지만 봉인되었다고 말한다. “두 번씩이나 다니엘은 시대의 종말까지 얼마나 걸릴 것인지를 질문하였다. ‘내가 듣고도 깨닫지 못한지라 내가 가로되 내 주여 이 모든 일의 결국이 어떠하겠삽나이까 그가 가로되 다니엘아 갈지어다 대저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케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세울 때부터 일천 이백 구십 일을 지낼 것이요 기다려서 일천 삼백 삼십 오 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 날에는 네 업을 누릴 것임이니라’(단 12:8-13). 그 책의 봉인을 떼어 말세에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계시를 요한에게 주신 분은 유다 지파의 사자이셨다. 다니엘은 종말, 곧 이 세상에 첫째 천사의 기별이 전파되는 때까지 봉인된 그의 증언을 전해야 했다”(목사와 복음교역자에게 보내는 증언, 114-115).
1998년 5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자신의 목회서신 “주의 날”(Dies Domini)을 발간했는데, 거기에서 그는 일요일 미사 출석을 강조하면서 초기 역사에 대해 언급하였다. 기독교 역사 초기에 사람들은 미사에 참석하도록 깨우침을 받았으며, 때로 교회는 특정한 교회법에 호소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것은 (그저 의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 번 결석하면 처벌할 것을 말한 AD 300년에 열린 엘비라 공의회[Council of Elvira]처럼) 4세기 이래 많은 공의회가 내린 결정과 같은 경우였으며 (506년 에그떼 공의회[Council of Agde]처럼) 6세기부터는 더욱 강화되었다. 이 공의회들의 법령들은 세계적으로 실행되었으며, 미사 참석에 의무성을 부여하는 것은 매우 일반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재림교회는 바오로 2세가 언급한 것처럼 6세기에 매일 드리는 제사가 폐해졌고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세워졌다고 이해한다. 그 이유는 1260년과 1290년의 끝인 1798년에서 1290년을 빼면 508년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홍 씨의 주장은 성경적 예언해석의 원칙과 전통을 무시한 자의적 해석이며, 최근 단 12장의 1290일과 1335일을 미래주의 해석원칙에 따라 실제적인 날들로 계산하는 빗나간 사람들의 주장을 반복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3) 단 12:11의 “매일 드리는 제사,”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각각 ‘안식일’과 ‘일요일 휴업령’이라고 자의적으로 해석함
홍 씨는 단 12:11의 “매일 드리는 제사”와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매일 드리는 제사는 히브리어로 ‘타미드’(Tamid)라고 한다... 성경 전체를 통하여 ‘타미드’의 의미에 가장 접[적]합한 것은 안식일 외에 찾아볼 수가 없다... ‘타미드’가 폐지되고, 즉 ‘안식일이 폐지되고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세울 때부터’라고 한 말의 뜻은 매일 드리는 제사가 안식일이라면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은 ‘안식일’이 폐지되니까 일요일 신성설, 즉 ‘일요일 휴업령’으로 볼 수 있다.”(지구종말, 280, 283).
* 문제점
이러한 해석은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되고 한 구절은 다른 구절을 해결하는 열쇠가 된다”(복음전도, 581)는 성경 해석원칙을 무시한 자의적인 해석이다. 다니엘서에는 “매일 드리는 제사”가 세 곳에 나온다.
“또 스스로 높아져서 군대의 주재를 대적하며 그에게 매일 드리는 제사를 제하여 버렸고 그의 성소를 헐었으며”(단 8:11).
“군대는 그의 편에 서서 성소 곧 견고한 곳을 더럽히며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하는 미운 물건을 세울 것이며”(단 11:31).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세울 때부터 일천이백구십 일을 지낼 것이요”(단 12:11).
이곳에 나오는 “매일 드리는 제사”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타미드'(tamid)인데, 그 뜻은 “매일의”, “계속적인” 어떤 것을 말한다. 성경에서 이 말은 지상성소에서 매일 드리는 제사(출 29:38, 42)를 가리킬 뿐만 아니라 성소에서 날마다 계속적으로 진행되는 여러 봉사들을 가리켰다(출 25:30; 27:20; 28:29, 38; 30:8; 대상 16:6).
다니엘서에서 ‘타미드’는 중세 교황권이 미사와 고해 성사로 강탈한 하늘성소에서의 그리스도의 계속적인 봉사를 가리키고 있다(단 8:9-14). 또한 단 11:31과 12:11을 비교해서 살펴보면 두 구절은 평행관계로써 동일한 사건을 가리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단 8:11과 단 11:31이 분명히 과거 사건을 가리키고 있음으로 단 12:11도 과거 사건을 언급함이 분명하다.
또한 “멸망케 하는 미운 물건”이란 말이 다니엘서에서 사용된 문맥을 살펴보면(단 9:27; 11:31: 12:11), 그것은 하늘성소에서의 그리스도의 계속적인 제사장 봉사를 모조한 모든 거짓 제도를 가리키고 있다.
예를 들면, 영혼 불멸, 성인의 중보, 고해성사, 미사 등을 가리킨다. 다니엘서의 예언을 전체적으로 연구하면 단 12:11의 “매일 드리는 제사”와 “멸망케 하는 미운 물건”은 단 11:31 뿐만 아니라 단 8:9-14에 나오는 2300주야와도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단 12:11의 “매일 드리는 제사” 대신에 “멸망케 하는 미운 물건”을 세우고자 하는 세력은 단 8장에 나오는 “작은 뿔”과 단 11장에 나오는 “북방 왕”과 같은 배도의 세력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단 12:11, 12의 1290일과 1335일은 미래의 어떤 일과 관련된 기간이 아니라 단 8장과 11장과 관계된 과거의 사건과 관계된 기간임이 분명하다.
홍 씨는 전 어메이징 팩츠(Amazing Facts)의 복음전도자였던 휠링(Charles E. Wheeling)이 단 12:11, 12의 1290일과 1335일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단 12:11에 나오는 “매일 드리는 제사”를 안식일로,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일요일 휴업령으로 해석한 주장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하지만 대총회 성서연구위원회에서는 휠링의 주장이 비성경적임을 이미 지적하여 밝힌 바 있다.
* 예수 재림 시기에 관한 성경과 예언의 신의 입장
예수 재림의 시기를 알고 싶어 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관심사이다. 기독교 역사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그럴 듯한 연대를 가지고 예수 재림의 시기를 정하여 전파하곤 하였다. 하지만 그 모든 주장은 언제나 허사로 돌아갔고 많은 상처만을 남겼다. 근자에 등장한 홍영선 씨의 2018년 예수 재림 주장도 결국은 실패로 돌아갈 것이다.
다만 무지한 백성들이 피해를 입을까 하는 것이 큰 염려일 뿐이다. 예수 재림의 시기를 정하는 문제는 앞으로 그 누가 아무리 주도면밀한 근거를 제시할지라도 그 모든 시도는 완전히 실패할 것이 틀림없는데, 그 이유는 재림의 주인공이신 예수님께서 이미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행 1:7).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재림의 날과 시간은 밝히지 않으셨다. 그분은 당신이 다시 나타나실 날이나 시간은 자신이 알게 할 수 없다고 제자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셨다. 만일 그분이 이것을 자유로 나타내실 수 있었다면 왜 항상 기다리는 태도를 가지도록 그들을 권유하실 필요가 있었을까? 우리 주님께서 나타나실 그날과 시간을 안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 매우 열심히 그들은 미래의 시간표를 상세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주께서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근거에 대하여 그들을 경고하신다. 인자의 재림의 정확한 시간은 하나님의 오묘이다”(시대의 소망, 632-633).
엘렌 화잇은 재림의 시기를 정하는 일에 대하여 거듭 경고하고 있다. “나는 거듭거듭 시기 설정에 관한 경고의 말을 해왔다.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시기에 근거를 둔 기별은 결코 다시 주시는 일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성령의 강림이나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한 정확한 시기를 알 필요가 없다... 주님께서는 기별이 전파되어야 하고 시기 문제로 인해서 지장을 받아서는 안 되며 또한 시기 문제는 결코 시험 거리가 되지 않을 것을 나에게 보여주셨다”(가려 뽑은 기별, 1:188).
이렇게 분명히 말씀하시고 경고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재림의 시기를 정하여 주장하는 것은 참람된 일이며 이것은 원수 마귀를 기쁘게 하는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참람되게도 정해진 시간을 설교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함으로 영혼의 대적을 기쁘게 만들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로 인해 그리스도교 신앙보다는 불신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들은 성경절을 이끌어 내고, 거기에 거짓 해석을 보태 자신들의 입장을 명백히 입증하는 듯이 보이는 일련의 논증들을 보여 준다. 그러나 그들의 실패는 그들이 거짓 선지자라는 사실과 그들이 영감의 언어를 잘못 해석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교회증언, 4:307).
성경을 보면 1844년 이후에는 어떤 시기도 주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1844년 이후에는 어떤 시기를 정해도 그것은 거짓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나는 그 때에 공중 앞에서 1844년 이래로 하나님께서 주신 기별 가운데 확정적인 시기를 주신 것이 없음을 주님께서 기꺼이 나에게 보여 주셨다”(가려뽑은기별, 2:73). 재림의 시기를 정하는 것의 피해는 정한 시기까지의 잠시의 자극과 흥분이 지나면 냉담과 무관심에 떨어지게 되어 신앙생활에 큰 손해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백성들에게 감명을 끼치기 위해, 정확한 때를 전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올바른 관점에서 일하고 있지 않다. 백성들의 감정이 분기되고 그들의 두려움이 일어날지 모르나 그들은 원칙에 입각하여 행동하지 않는다. 흥분은 생길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반복되었듯이 시간에 의해 움직인 사람들은 냉담함과 어두움과, 그리고 죄에 빠지게 되고, 어떤 큰 흥분 없이는 그들의 양심을 일깨우기가 불가능하다”(교회증언, 4:307-308).
엘렌 화잇의 언급 가운데 유일한 재림의 시기 언급은 은혜의 시기가 끝난 다음, 재림 직전에 재림의 날짜와 시간이 선포된다는 것이다.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날짜와 시간이 선포되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영원한 언약이 주어진다”(각 시대의 대쟁투, 640). 따라서 은혜의 시기가 끝나지 않은 때에 이런저런 근거를 가지고 예수 재림의 시기를 정하는 것은 전혀 거짓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거짓말에 그 근거를 둔 믿음은 생활이나 품성에 성화시키는 감화력을 끼치지 못할 것이다. 오류는 진리가 아니며 그것을 반복한다거나 믿는다고 해서 오류가 진리로 변할 수 없다. 아무리 성실성이 귀하다 하더라도 오류를 믿는 결과에서 결코 영혼을 구원하지 못할 것이다. 성실성이 없는 참된 종교가 있을 수 없지만 거짓 종교에 대한 성실성은 결코 그 인간을 구원하지 못할 것이다”(가려뽑은기별, 2:56).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깨어 기다리며 영혼 구원 사업에 헌신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제 기별이 끝을 맺을 것이며 언제 은혜의 시기가 끝날 것인지에 대하여 우리들에게 그 시기를 밝히시지 않으셨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자녀들을 위하여 밝히 드러난 증거들을 받을 것이나 전능하신 분의 총회에서 비밀로 감추기로 한 것을 알려고 애쓰지 말 것이다. 깨어 일하며 기다리고 멸망하여 가는 인간의 영혼들을 위하여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의무이다”(가려뽑은기별, 1:191).
2. 재림교회는 삼위일체 교리를 성경에 기초한 가르침으로 믿는다.
홍 씨는 삼위일체 교리를 가리켜 “이 시대에 죽음이 선고된 선악과”라고 주장한다. 또 이 교리는 “법왕권의 교리”라고 주장하면서 재림교회가 삼위일체 교리를 받아들임으로써 바벨론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홍 씨의 이러한 주장은 성경적으로 역사적으로 사실인가?
* 삼위일체 교리에 관한 홍 씨의 주장과 문제점
1) 삼위일체 교리는 법왕권의 교리라는 주장
홍 씨는 삼위일체 교리는 법왕권의 교리로써 성경의 진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성경 전체의 기록을 볼 때 선지자들이나 신약성경을 쓴 사도들 중 그 어느 누구도 삼위이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삼위일체 교리는 역사적으로 니케아 종교회의(325년)에서 공인된 법왕권의 교리다. 또 오늘날 개신교회가 받아들인 교리이지 성경의 진리와는 무관한 것이다”(경배, 11, 12; 참고. 지구종말, 136, 348, 349).
* 문제점
홍 씨는 ‘삼위일체’라는 용어가 성경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성경적으로 올바른 교리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비록 삼위일체라는 말이 성경에 없지만 삼위일체 사상은 성경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
이것은 ‘성육신’이라는 용어가 성경에 나오진 않지만, 그 사상이 성경에 분명히 나타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성경에 그 용어가 없기 때문에 그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주장은 합당치 않다. 비록 성경이 우리에게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정교한 삼위일체 교리를 제공하고 있지는 않지만, 성경은 “신학이 삼위일체 교리를 구성할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애매한 구절이나 증언들을 가지고 확실한 말씀의 가르침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 덜 분명한 성경구절은 더 분명한 성경의 다른 말씀들과 조화시킬 때 가장 잘 이해되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을 연구할 때에는 더 확실한 말씀을 가지고 덜 분명한 말씀을 해석해야 한다는 성경 해석의 원칙을 가지고 성경말씀을 해석해야 한다.
삼위일체 교리가 법왕권에서 나온 교리라는 주장은 기독교 역사를 잘못 이해한 결과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홍 씨의 주장처럼 법왕권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성경에서 시작된 것이다. 초기 교회의 신자들은 유대인 기독교인들로서 본래 구약성경에 나오는 하나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있었다(신 6:4).
하지만 그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고 또한 오순절에 성령 하나님을 체험한 이 후에 구약성경의 하나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으로 계심을 경험으로 확신하게 되었다. 따라서 삼위일체 교리는 초대 기독교 신자들의 구원 체험에 기초한 매우 구체적이며 신앙적인 교리라고 할 수 있다.
삼위일체 교리가 공식화 된 니케아 종교회의(325년)는 아리우스주의 논쟁을 다루기 위해 소집되었다. 이 종교회의에서는 그리스도의 온전하고도 참된 신성을 고백했는데, 그 고백은 그 성격이 전적으로 신앙적인 것으로서, “그것은 기독교의 구원론적 원리를 드러낸 것이다.” 그 회의에는 318명의 감독들이 참석했는데 서방교회에서 온 사람은 7명뿐이었으며, 나머지는 가톨릭교회가 아닌 동방교회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이 회의에 로마 주교는 직접 참석하지 않고 그를 대신해서 두 명의 사제만 보냈다. 따라서 로마의 주교는 그 영향력이 미미했다. 물론 이것이 삼위일체 교리 발전에 가톨릭교회의 신학자들의 역할이 있었음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한편 중세 가톨릭교회의 전통적 삼위일체론은 헬라 철학에 영향을 받아 하나님의 무감각성(impassibility)과 불변성(immutability)을 주장한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삼위일체 교리는 초기교회의 구원경험에서 삼위일체를 이해했던 본래의 신앙고백에서 벗어나 존재론적 관점에서 삼위의 내적 관계를 묻는 추상적인 탐구로 빗나간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중세 가톨릭교회의 “삼위일체론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와 거의 단절되어 철저히 내적 비밀에 대한 사변적인 탐구”가 되어 버렸다. 그 결과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삼위일체 교리는 “하나님 안의 신비를 다루는 무의미한 사변” 혹은 “신앙의 본질과는 관계없는 부수적 교리”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재림교회가 삼위일체 하나님을 이해하는 방식은 이런 철학적이고 사변적인 전통적 삼위일체론과는 다르다. 특히 엘렌 화잇은 전통적 삼위일체론의 바탕에 있는 철학적 전제를 거부했다. 그녀는 성부, 성자, 성령을 철학적인 용어가 아닌 인격적인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하늘에는 이와 같이 살아계신 세 분이 있는데, 위대한 능력을 가진 세 분, 곧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There are three living persons of the heavenly trio; ...the Father, the Son, and the Holy Spirit)”이다. “하늘에는 이와 같이 살아계신 세 분이 있”다는 엘렌 화잇의 개념은 전통적 삼위일체론의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하나님의 개념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근년에 여러 학자들이 이러한 전통적 삼위일체론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신학 역사가인 올슨(Roger Olson)은 말하기를, “어거스틴의 하나님은 비록 삼위일체이기는 하지만 거룩한 단순성, 불변성, 그리고 무감각성이라는 헬라 철학적 신학에 포로가 되어 버렸다. 그 결과 그 하나님은 사랑과 동정심 많은 하늘 아버지라기보다는 위대한 우주적 황제를 더 많이 닮았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최근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서로 구별되는 세 신격의 영원한 사귐, 교제, 일치, 연합의 관점에서 재조명하는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 삼위일체를 관계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설명한 엘렌 화잇의 저술은 시대를 앞지르는 신학적 통찰임을 확인해준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교리를 법왕권의 교리라고 부정하는 홍 씨의 주장은 성경과 기독교 역사, 나아가 엘렌 화잇의 증언에 대한 무지와 오해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2) 성령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사단을 경배하는 것이라는 주장
홍 씨는 성령의 개성을 부인하면서 삼위일체 교리에 나타난 성령은 사단의 영이며, 따라서 성령을 경배하는 것은 사단을 경배하는 것이라는 해괴한 주장을 하고 있다.
“그리스도와 아버지의 영인 성령을 삼위일체 교리를 통해 독립된 개체의 성령 하나님이라는 실체로 만들고 경배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성령 하나님은 삼위일체 교리를 통해 교회에 들어온 사단의 영이다... 사단의 영인 성령 하나님을 믿음으로 교회는 ‘나는 저 구름 꼭대기에 올라가 가장 높으신 분처럼 되리라’(사 14:14 공동번역)고 한 사단을 경배하는 것이다”(경배, 11; 지구종말, 215, 348).
“성령 하나님의 이름 ‘신비’는 존재가 없음을 증명할 뿐이다. 삼위일체 교리에 의해 만들어진 철학적 우상인 성령 하나님은 실체가 없기에 인간의 생각 속에 존재할 뿐이다. 삼위일체 교리는 이 시대에 죽음이 선고된 선악과다”(경배, 뒷표지).
* 문제점
홍 씨의 이러한 주장은 성령의 신성과 개성을 말하는 성경과 예언의 신의 많은 증언들을 부인하는 이단적인 오류이다.
◎ 성경과 예언의 신에 나타난 성령의 신성과 개성
☞ 성령은 하나님으로 묘사됨
베드로는 성령을 하나님으로 묘사하고 있다.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행 5:3-4).
바울도 성령이 하나님이심을 말하고 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6-17).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 성령은 삼위의 한분으로 나타남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마 28:19).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 13:13).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고전 12:4-6).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벧전 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유 1:20-21).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 3:16-17).
☞ 예언의 신에 나타난 성령의 신성과 개성
“성령은 갱생시키는 주선자로서 주시는 바 되었으며 이분이 없이는 그리스도의 희생이 아무 소용도 없을 것이다. 악의 세력은 여러 세기 동안 강해졌으며 이 사단의 속박에 사람들이 복종 당하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죄는 신성의 제 삼위(the Third Person of the Godhead)의 강력한 작용을 통하여만 물리칠 수 있고 이겨낼 수 있으며, 그분은 제한된 능력을 가지고 오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충만한 가운데 오실 것이었다. 세상의 구주께서 이루신 일을 효력 있게 만드시는 분은 성령이시다”(시대의 소망, 671).
“하나님께서 하나의 개성을 가지고 계신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개성을 가지고 계신 성령(the Holy Spirit, who is as much a person as God is a person)께서는 이러한 근거를 통하여 일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할 필요가 있다.”
“성부, 성자, 성령은 무한한 능력의 전지하신 분들(The Father, the Son, and the Holy Ghost, powers infinite and omniscient)로서 하나님과 진실로 언약관계에 들어가는 자들을 받아주신다.”
“성부, 성자, 성령의 세 분의 별개의 개체들(three distinct agencies)이 인류를 위해 함께 일하신다.”
“영원 지존하신 삼위일체, 곧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령(The eternal heavenly dignitaries―God, and Christ, and the Holy Spirit)께서는 제자들을 인간을 초월한 힘으로 무장시켜 저들과 함께 사업을 이루기 위하여 전진하시며 세상 사람들로 죄를 깨닫게 하실 것이다.”
“우리는 하늘의 지극히 높으신 세 분, 곧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the three highest powers in heaven,―the Father, the Son, and the Holy Ghost)과 협력해야 하며, 이들은 우리를 통해 일하시며 우리를 하나님의 동역자들로 만드실 것이다.”
“성령께서는 개성을 가지고 계신다(The Holy Spirit is a person). 그렇지 않으면 그분께서는 우리의 심령에, 그리고 우리의 심령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증거하지 못할 것이다. 그분은 또한 신성에 속한 개성을 갖고 계셔야만 한다(He must also be a divine person). 만일 그렇지 않으면 그분은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 감추어져 있는 비밀을 알아내지 못할 것이다.”
홍 씨는 엘렌 화잇이 성령을 개성을 가지신 “신성의 제3위”라고 그처럼 분명하게 말한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은 억지 주장을 하고 있다. “‘제3위’라는 말이 성경의 진리와 반대되지만 삼위일체론을 통해 실체 없는 성령 하나님을 믿는 일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신 것이다”(경배, 214, 215). 따라서 홍 씨는 성경과 예언의 신에 나오는 성령의 신성과 개성에 대한 분명한 증거를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왜곡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참으로 두려운 죄악이다.
성령의 신성과 개성을 부인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멸망을 초래하게 만든다. 이는 예수께서 성령을 거역하는 죄는 사함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 12:31, 32).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중보하시는 동안(히 7:17-8:2), 성령께서는 이 땅에서 “또 다른 보혜사”로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신다(롬 8:26-27). 우리가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와 중보의 은혜를 얻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성령의 사역을 통해서이다. 또한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그리스도를 구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없다(고전 12:3). 따라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상실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실재를 상실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신앙이 구원에 필수적임을 확신할 수 있다.
3. 재림교회는 결코 바벨론이 아니다.
홍 씨는 재림교회가 1980년 삼위일체 교리를 공식적으로 채택함으로 바벨론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이후로 재림교회는 하나님이 떠난 사단의 교회가 되었다는 엄청난 배도의 주장을 하고 있다. 그는 무슨 근거를 가지고 그런 두려운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인가?
* 재림교회는 바벨론이라는 주장과 그 문제점
홍 씨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재림교회가 1980년 댈라스에서 열린 53차 세계 대총회에서 삼위일체를 공식적인 교리로 받아들인 그 시점을 기준해서, 그 이전에는 바벨론이 아니었지만 그 이후에는 바벨론이다. 그 이전에는 라오디게아 교회가 아니었지만 그 사건 이후로는 라오디게아 교회다. 그 이전에는 하나님이 함께 했지만 그 사건 이후에는 사단이 함께 한다. 그 이전에는 대총회가 하나님의 음성을 대변했지만 그 이후에는 사단의 음성을 대변한다”(경배와 흔들림, 235, 참고. 243, 263).
“재림교회 내의 배교의 알파는 1904년 삼위일체를 믿는 켈록을 통해 범신론으로 시작되었다. 배교의 오메가는 1980년 댈라스에서 열렸던 제 53차 대총회에서 삼위일체론을 공식적인 교리로 채택함으로 성취되었다”(경배와 흔들림, 208, 참고. 235). “1980년을 기점으로 하나님 앞에 재림교회의 교단적인 은혜는 끝났다. 이제는 배교한 교회 안에서 흔들림의 시기가 이르렀다.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고후 6:17) 불러냄을 받을 남은 무리의 시대, 종말의 때가 이르렀다”(경배와 흔들림, 242).
* 문제점
홍 씨의 이러한 주장은 재림교회의 역사와 교리 발전에 대해 무지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재림교회가 외부에 삼위일체 신앙을 표명한 것은 1980년이 처음이 아니고 그보다 오래 전인 1931년이었다. 역사를 통해서 재림교회는 성경 외에는 어떤 신조도 채택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그래서 매년 출간되는 연감에는 기본 교리 혹은 신앙에 대한 진술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31년에 입장이 바뀌었다. 이것은 1930년에 아프리카 지역의 교회 행정자들이 대총회에 재림교회가 믿는 바를 진술하는 내용을 연감에 포함시켜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말하기를 “그러한 진술은 정부 관리들과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 사업을 보다 잘 이해하게 해 줄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대총회는 네 명의 위원을 임명하여 그 진술의 초안을 작성하게 하였다.
이들은 22개의 기본 교리에 대한 진술을 만들었고 그리하여 그 “기본 교리들”에 대한 진술이 1931년 재림교회 연감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여기에 삼위일체 교리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기본 교리의 제3항은 다음과 같다.
“신성 혹은 삼위일체는 인격적이고 영적인 존재이시며, 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며 전지하시며, 지혜와 사랑이 무한하신 영원하신 아버지와 영원하신 아버지의 아들이시며, 그를 통해 만물이 창조되었고 그를 통해 구속받은 무리들의 구원이 완성될 주 예수 그리스도와 신성의 제삼위이시며, 구속 사업에서 위대한 재창조의 능력이 되신 성령으로 이루어져 있다(마 28:19).”
1980년에 재림교회는 그간 믿어오던 삼위일체 교리를 포함한 기본교리를 27가지로 정리하여 대총회에서 공식적으로 결의하였다. 재림교회는 대총회가 개최되기 전에, 전 세계 지회들에 27개 기본교리의 초안을 보내 검토하게 하였다. 또한 10개의 지회들로부터 온 194명의 위원들로 구성된 위원회가 각 분야의 신학자들의 자문을 받아 지회들에서 온 제안들을 실행 소위원회들에 보내어 연구하게 하였다.
달라스에서 있었던 대총회에서는 각 지회들에서 온 많은 제안들을 수렴한 개정안을 가지고 토의한 후 마침내 재림교회 기본교리로 결의하였다. 27개 기본교리에 나오는 삼위일체에 대한 진술은 그 때 새롭게 첨가된 것이 아니고 이미 믿어온 내용을 다듬어 진술한 것이다. 기본교리 제2항은 다음과 같다.
“성부, 성자, 성령 곧 함께 영원하신 세 신격의 통일체이신 한 하나님이 계신다. 하나님은 불멸이시고, 전지전능하시고, 만유 위에 계시고, 항상 존재하신다. 그분은 무한하시고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분이시면서도 그분의 자기 계시를 통해 알려지신다. 그분은 모든 피조물에게 영원히 경배와 숭배와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 (신 6:4; 마 28:19; 고후 13:14; 엡 4:4-6; 벧전 1:2; 딤전 1:17; 계 14:7).”
따라서 1980년 이후의 재림교회를 “바벨론”이요 “사단의 음성을 대변하”고 “사단이 함께”하는 “교단적인 은혜가 끝”난 교회라는 홍 씨의 주장은 재림교회의 역사적 신앙을 부정하고 재림교회 자체를 부인하는 반역적이고 거짓된 주장임을 알 수 있다.
* 남은 교회를 바벨론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에 대한 예언의 신의 입장
엘렌 화잇은 남은 교회를 바벨론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의 기만을 다음과 같이 경고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온 하늘이 관심을 갖고 있는 한 백성을 갖고 계시는데 그들은 지상에서 그분이 마음속에 소중하게 여기시는 대상이다. 이 말씀을 읽는 이들은 이것을 철저하게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이것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든 영혼에게 확신시키고 싶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바벨론과 함께 계수되었다고 선포하는 기별을 가지고 우리 중에서나 우리 외부에서 어떤 사람이 일어나서 큰 외침은 거기서 나오라는 호소라고 주장할 때, 그대는 그가 진리의 기별을 전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를 받아들이지도 말고 그의 성공을 기원하지도 말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해 말씀하지도 않으셨고, 그에게 어떤 기별도 주지 않으셨지만 그는 보내심을 받기도 전에 달려갔기 때문이다”(목사와 복음교역자에게 보내는 증언, 41, 참고. 같은 책 32-62, “남은 교회는 바벨론이 아님”).
또한 그녀는 재림교회가 영적으로 타락한 상태에 이르러 바벨론이 되었다고 결론을 내린 M 형제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하였다.
“주님께서는 형제에게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를 바벨론이라고 부르라는 것과 하나님의 백성을 그 가운데서 불러내야 한다는 기별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나에게 그러한 기별들에 대하여 반대되는 결정적인 빛을 주셨으므로 형제가 어떤 이유들을 제시할지라도 그것은 저에게는 일고(一考)의 가치도 없습니다. 나는 형제의 성실성이나 정직성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과거에 나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바벨론이 되었다고 비난하는 자들에게 그들이 진리를 다루고 있지 않다는 것을 여러 다른 시기에 긴 편지들을 쓴 일이 있습니다”(가려 뽑은 기별, 2:63).
엘렌 화잇은 비록 재림교회가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책망을 받을 일이 있지만 하나님의 택하신 남은 교회임을 확실히 믿었다.
“하나님께서는 한 백성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율법의 보관자들로 정하신 당신의 택하신 백성 곧 지상의 한 교회를 가지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저들에게 거룩한 책임을 맡기셨으며 이 세상에 전해야 할 영원한 진리를 주셨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저들을 견책하실 것이며 바로잡아 주실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기별은 큰 빛을 벌써 받았으나 그 빛 가운데서 행하지 않고 있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에게 적절한 것입니다. 입으로는 믿음을 크게 공언하면서도 저들의 지도자이신 주님을 따르지 않고 있는 자들이 회개하지 않는다면 주님께서 뱉어 버리실 것입니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를 바벨론이라고 공언하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 가운데서 나오라고 부르는 기별은 하늘의 사자가 준 기별이 아니며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어떤 사람이 전하는 기별도 아닌 것입니다”(가려 뽑은 기별, 2: 66).
따라서 우리는 재림교회를 바벨론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의 특성이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비난하고 헐어버리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또다시 제가 말하는데 주님께서는 어떤 사람들을 통하여서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교회를 가리켜 바벨론이라고 부르도록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보내는 경고의 기별이 그들에게 해당된다는 증거가 아무리 많을지라도 교인들 중 어떤 이들은 교만하고 자부심이 강하며 완고한 불신을 나타내고 저들의 생각을 굽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을 제거하기 위하여 교회를 없애버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추수기가 이를 때까지 가라지와 알곡이 함께 자라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 때에 가서 분리시키는 일은 천사들의 할 일인 것입니다. 나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에 모든 새로운 이론과 큰 빛을 가졌노라고 주장하는 자들을 받아들이는 데 대하여 조심하도록 경고하는 바입니다. 대개 저들이 하는 사업의 특성은 비난하는 것과 헐어버리는 것입니다”(가려 뽑은 기별, 2:68-69).
그러므로 재림교회를 비난하고 허는 사람들은 아무리 훌륭한 기별을 가졌다고 주장할지라도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스스로 개인적인 책임을 느끼고 어떤 기별을 선포하기 시작하는 이들이 하나님의 교훈과 지도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하나님께서 여러 해 동안 쌓아 올리신 것을 무너뜨리는 일을 자기의 특별한 일로 삼고 있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인물들은 대기만자의 편에 서 있다는 것을 알게 하라. 그들을 믿지 말라. 그들은 하나님과 진리의 원수와 동맹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아무리 많은 증언의 말씀을 인용하고 그것으로 자신의 입장을 든든히 할지라도 그런 이들로부터 돌아서고, 그들의 기별에 전혀 동조하지 말라. 그들을 받아들이지 말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 일을 하도록 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목사와 복음교역자에게 보내는 증언, 51).
* 결론
이상의 연구를 통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첫째, 홍 씨의 주장은 성경과 예언의 신을 왜곡한 것이다.
홍 씨는 성경과 예언의 신의 분명한 말씀을 자의적으로 왜곡하여 가르침으로써 남은 교회를 대적하고 남은 백성을 파멸로 인도하고 있다. 홍 씨의 주장이 현재 매우 사소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이 큰 올무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재림성도들은 그의 가르침에 현혹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오늘날 기만에 속하는 많은 것들이 마치 진리인 것처7럼 가르쳐지고 있다. 우리 형제들 중의 어떤 이들은 우리들이 찬성할 수 없는 견해들을 가르쳐왔다. 성경에 관하여 괴이한 견해와 억지로 특이하게 해석하는 풍조가 침투해 들어오고 있다. 이러한 가르침의 일부가 현재에는 매우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마는 점점 심각한 문제로 변하여 신앙생활에 미숙한 이들에게 큰 올무가 될 것이다”(가려 뽑은 기별, 1:169).
“사단은 기만하는 힘으로 일하여 진리를 흐리게 하는 여러 가지 오류 가운데로 이끌어 간다. 오류는 진리의 나무에 기생충처럼 굳게 붙어 있지 아니하였을 것 같으면 곧 소멸되어 버렸을 것이다. 오류는 하나님의 진리에서 그의 생명을 취한다... 거짓된 교리들을 통하여 사단은 발판을 얻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진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론들을 붙들게 한다... 사단이 인간의 마음을 정복하는 힘을 얻는 것은 거짓 교리와 유전을 통해서이다”(복음전도, 589).
이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의 하나는 자기주장을 옹호하기 위하여 예언의 신을 많이 인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언의 신을 아무리 많이 인용한다고 하여 그것이 엘렌 화잇의 주장과 일치한다는 증거는 되지 못한다. 홍 씨도 그의 책 곳곳에 예언의 신을 많이 인용하고 있어 마치 그의 주장이 예언의 신에 기초된 것처럼 오도하고 있다. 그러나 말씀의 본래 의미를 부정하고 왜곡한 그의 주장이야말로 남은 백성을 혼란케 하고 멸망으로 인도하는 바벨론적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성도들은 홍 씨의 가르침에 미혹되지 말아야 한다.
이처럼 분명한 오류임을 알고서도 그러한 가르침에 귀 기울이는 것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가 없다. 이설과 오류의 주장은 언제나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모임에 참석하여 그러한 주장에 빠지면 개인과 가정에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된다. 따라서 그러한 해독이 당장에 드러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말씀에서 떠난 가르침은 반드시 쓰라린 결과를 가져오게 됨을 기억하고 그러한 집회에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나는 마지막 자비의 기별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자들이 날마다 새로운 오류를 범하는 자들로부터 분리되어 있어야 할 필요를 보았다. 나는 노소를 막론하고 그러한 자들이 여는 집회에 참석해서는 안 될 것을 보았는데 이는 그들이 인간의 계명을 교리로 삼아 가르칠 뿐 아니라 영혼들에게 치명적인 해독이 되는 오류를 가르치면서 사람들을 깨우쳐 주고자 하는 것은 잘못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집회가 끼치는 감화는 좋지 못하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어두움과 오류 속에서 우리를 구해 주셨으나 우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해 준 그 자유 가운데 굳게 서서 진리와 함께 기뻐하여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꼭 가야 할 의무가 없는데도 당신이 허락지 아니하시는 집회에 참석하여 오류를 듣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의지의 힘으로 사람을 휘어잡는 그러한 오류에서 우리를 지켜 주시지 않으실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천사들은 우리를 지키는 일을 그치게 되고 우리는 원수의 손아귀에 버려져 그와 그의 악한 천사들의 세력으로 암담해지고 약화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두른 빛은 어두움으로 흐려지고 만다”(초기문집, 124-125).
셋째, 교회는 깨어 부흥을 이루어야 한다.
교회 역사를 보면 교회가 뜨뜻미지근하여 허약해질 때 이설과 이단이 득세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엘렌 화잇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깨우치실 것이다. 만일 다른 방법으로 되지 않을 때에는 저들 가운데 이단이 들어오게 하여 그것으로 저들을 체로 쳐서 알곡과 쭉정이로 갈라놓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말씀을 신봉하는 모든 자들이 잠에서 깨어나기를 요청하신다”(복음교역자, 299). 어린 아이가 보아도 그 허구성을 쉽게 알 수 있는 홍 씨의 주장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신자들의 상태가 영적으로 너무나 허약하다는 것을 증거 한다. 사람의 몸이 건강할 때에는 바이러스에 쉽게 감염되지 않듯이 교회가 영적으로 건강하면 이단과 이설이 발을 붙이지 못한다.
그러면 교회가 부흥하고 각 신자들이 영적으로 건강해질 수 방안은 무엇인가? 먼저, 교회 강단에서 현대진리가 힘 있게 전파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재림의 징조가 우리의 목전에서 신속히 성취되고 있는 시기를 살고 있다. 이러한 때 우리의 강단에서 예수 재림의 기별과 현대진리를 힘 있게 전파함으로써 성도들을 준비시켜야 한다. 교회 강단에서 이러한 기별이 전하여지지 않을 때 연약한 성도들은 자극적인 주장과 이설에 쉽게 귀를 기울이게 된다.
다음으로, 성도들은 매일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깊이 교통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스스로 말씀을 연구하지 않는 사람은 이설에 빠질 위험이 매우 높다. 종말을 사는 성도의 지혜는 날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분의 모본을 온전히 따르는 것이다. 엘렌 화잇은 우리의 모본 되시는 예수님의 생애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는 매일 아침 여러 시간 동안 아버지와 교통하심으로 하늘의 빛을 사람에게 나누어 줄 준비를 하셨다. 그는 날마다 성령의 새로운 침례를 받으셨다”(실물교훈, 139). 이처럼 말씀과 기도로써 매일 하늘과 깊이 연결된 삶을 살게 될 때 성도들은 마지막 때에 난무하게 될 각종 이설들과 거짓 선지자들의 가르침에 미혹되지 않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철저한 회개와 더불어 온전한 순종의 길로 나아가는 특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사단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고 분내어서 하나님의 남은 백성들을 넘어뜨리고자 할 것이다. 이러한 때 교회는 진정으로 죄를 버리고 온전한 순종으로 나아가는 부흥을 일으켜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이 세상과 멀어지고 하늘과 점점 가까워지도록 해야 한다. 날마다 죄를 반복하는 것은 사단에게 발판을 제공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성령의 충만을 힘입고 예수의 증인으로서 세상에 뚜렷한 증거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을 계기로 교회는 분기하여 부흥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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