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효수 선교사의 ‘아프리카 PMM 보고서’(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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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kbtlove@kuc.or.kr
입력 2010.09.13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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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 속 열매 맺은 부니아 전도회 ... 기대와 실망의 연속된 교차
파키스탄 선교사인 굴자르 교수와 대회 선교부장 무하사 목사가 우리 부부와 함께 했고, 스펜서빌한인교회 선교사인 라스웨카 목사, 횡천교회 선교사인 무붕가 목사, 그리고 이고운 선교사가 합류했다.
인구 60만이 살고 있는 부니아라는 도시는 부템보에서 약 270km 떨어져 있으며, 자동차로 거의 하룻길을 가야 하는 곳이다. 재림교회의 교세가 약할 뿐만 아니라, 그저 한 사이비 종교 정도의 인식을 가지고 있는 선교환경이 아주 열악한 곳이다.
재림교회는 두 곳이 있는데 그나마 한 곳은 2년 전에 문을 닫았고, 교인의 수도 많지 않다. 게다가 부족 간 갈등으로 인해 사회뿐 아니라 교회 내에서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스펜서빌 전도회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부니아 전도회를 위하여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했다.사실 스펜서빌 전도회를 보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강하게 느꼈을 뿐 아니라, 교인들의 열정적인 참여가 있어서 어느 정도 자신감도 붙었다.
부니아로 가는 길은 단순히 멀어서 뿐만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도 고된 여행이었다. 텅 빈 어느 마을에 군인들만 돌아다니는 살벌한 장소도 있었다. 우간다 쪽에서 넘어온 반군들이 마을을 약탈했기 때문에 콩고 정부군이 반군을 소탕하기 위해 온 것이라고.
사실 한국에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군인들이 무기를 소지하고 시내에 나오지 않지만, 이곳의 군인들은 실탄이 들어있는 소총을 메고 민간 마을을 돌아다닌다. 총을 들고 마을을 어슬렁거리는 군인들과 마주 치는 것이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점심은 길가에서 택시의 트렁크를 식탁삼아 빵으로 간단히 해결하고, 거의 7시간만인 저녁 5시30분이 되어서야 겨우 숙소에 도착했다.
그러나 도착하자마자 우리의 모든 기대는 날아가는 듯 했다. 부니아교회 목사와 장로 몇 분이 나와서 환영의 악수를 한 후에 모두 사라지고 숙소엔 우리만 덩그러니 남았다. 아주 편하고 좋은 집으로 준비했다고 들었는데, 8명의 대원을 위해 준비된 방은 고작 2개뿐. 침대와 매트리스도 없었다.
제너레이터만 돌리면 전기를 쓸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연결된 전기선은 아무 것도 없었고, 샤워시설은 있었지만 물을 길어 와야 했다. 먼 길을 달려온 피곤한 여행객들을 위해 간단한 식사를 준비한 사람도 없었다.
어둠이 이미 내려앉고 있었지만, 우리는 피곤에 지친 몸을 이끌고 방을 더 빌리고, 침대와 매트리스를 얻어오는 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 예수님은 머리 둘 곳도 없으셨는데 뭘... "
그나마 마련된 숙소에 감사하면서 우리가 온 목적을 위해서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전기와 물이 없는 곳에서 17일을 살았던 것은 돌이켜보면 실망 축에 들지도 않았다.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이곳 부니아 사람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부템보와 루캉가 지역의 사람들과 굉장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도회의 주체가 되어야 할 교인들은 구경꾼에서 한 발도 나아가지 않았고, 담임목사 마저 공부를 해야 한다며 전도회 전날 루캉가로 떠나버렸다. 교회의 가장 오래된 멤버라고 소개한 한 장로는 전도회를 통해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만 찾았다. 심지어 자신이 빌려준 제너레이터를 더 이상 빌려줄 수 없다고 가져가버리는 해프닝까지 생겼다.
정말 여기가 콩고가 맞는지 의심이 생길 정도로 교인들은 아군이 아니라 적군 같았다. 지금까지 우리가 접했던 난데 부족들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선교하는 사람들이었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그래, 예수님은 유대의 지도자들에게 배척당하셨는데, 우리는 최소한 배척은 안 당하니까..."
전도회는 두 곳에서 동시에 개최되었다. 굴자르 교수와 무하사 목사는 숙소 근처에 있는 텐트에서, 나와 라스웨카 목사는 시내에 있는 큰 홀을 빌려서 각각 설교와 통역을 했다. 나의 아내도 건강을 주제로 매일 30분씩 두 곳을 번갈아 가며 강의했다.
건강과 전도 설교 모두 참석자들에겐 큰 충격이었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정말 이곳에 진리의 말씀이 있다는 것을 알겠다”고 고백했다.
전도회를 하는 2주 내내 매일 전기가 두 번 이상씩 공급이 중단되어 늘 조바심 속에 기도하며 말씀을 선포했다. 또 텐트와 홀의 분위기가 너무 많이 달랐다. 텐트에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관중이 되어서 흥미롭게 듣다가 갔지만, 홀은 그런 분위기를 기대할 수 없었다.
또 결심을 호소하며 앞으로 나오기를 초청할 때 텐트에서는 거의 70명 가까운 사람들이 주저 없이 나왔지만, 홀은 겨우 20명 미만이었다.
5일째인 수요일 집회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우리는 매주 금요일 오후 시간에는 강당을 쓸 수 없다는 보고를 듣게 되었다. 두 번의 금요일 모두 가장 중요한 시간이었다. 순복음교회의 사업가들이 매주 금요일 오후 시간을 쓰기 위해서 1년 치의 계약금을 냈다는 것이다.
정말 감당할 수 없는 절망이 밀려왔다. 애써 밝은 척 하려 했지만, 온 몸에 힘이 빠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우리는 목요일 아침을 금식하면서 간절히 주님께 매달렸다. 이스라엘을 포위했던 아람 군사들이 갑자기 돌아간 것과 같은 상황을 기대했지만, 그와 같은 응답대신 금요일 아침에 집회를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셨다.
사실 맥이 좀 끊기긴 했지만, 금요일 아침에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서 진지하게 말씀을 경청했다. 오히려 알곡을 골라 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생각에 감사했다.
처음 이 부니아 전도회를 위해서 100명 이상의 영혼들을 주시기를 기도했다. 그런데 마지막 날까지 몇 명이 침례를 받을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현실적으로 그리 많은 수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집회의 마지막을 앞둔 목요일 아침, 12명의 군인들이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는 보고를 들었다. 어느 목사님의 아들이 매일 그들에게 성경을 가르쳤다고 한다.
목요일 아침 굴자르 교수와 무하사 목사가 그들을 방문했고, 이들이 정말 준비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가져왔다. 그리고 안식일 오후 이중 3명이 군복차림으로 침례를 받았다. 이들을 포함해 모두 37명의 귀한 영혼이 거듭남을 입었다.
전도회가 끝나면서 가장 걱정스러웠던 것은 과연 교회가 이들을 잘 돌볼 수 있을까 하는 문제였다. 거리가 너무 멀어서 다시 방문하기도 힘든 곳이라 더 많이 걱정스러웠다.
도무지 그냥은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하루 더 머물면서 교인들을 위한 세미나를 하기로 했다.
‘얼마나 많은 교인들이 참석을 할 것인가?’
‘얼마나 많은 교인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다행히도 일요일 아침에 생각보다 많은 교인들이 왔고, 게 중에는 막 침례 받은 사람도 있었다. 특별히 이 세미나는 2년 전 문을 닫았던 교회에서 진행했다.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감사와 헌신예배를 드렸다. 교회를 다시 오픈하는 행사를 겸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니아에 보내신 목적이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우리의 기별을 들은 모든 사람들이 후에라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기도했다. 힘든 환경과 여건 속에서도 8명의 대원 중 아무도 건강을 잃지 않고 무사히 전도회를 마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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