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정 양, 보령의사수필문학상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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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kbtlove@kuc.or.kr
입력 2010.11.27 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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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터가, 사랑스러웠다’ ... 환자 아픔 치유하는 성찰 그려
수상작인 ‘흉터가, 사랑스러웠다’는 흉터라는 공통분모를 소재로, 자신의 아픔과 환자의 아픔을 치유하는 성찰을 그린 작품.
지난 8월 16일부터 2개월간 진행된 이번 공모에는 총 120여 편이 출품됐으며, 시상식은 이달 10일 보령제약 강당에서 열렸다.
보령의사수필문학상은 수필문학을 통해 생명과 사랑의 의미를 널리 알리고자, 보령제약이 지난 2005년 제정한 상이다.
조현정 양은 한국연합회 보건복지부장 조원웅 목사의 차녀이며, 의대 재학 중 재림교인 의.치.한의대생들의 모임인 'SMA(SDA Medical Association)' 회장을 맡아 헌신하기도 했다.
제6회 보령의사수필문학상 대상작 ‘흉터가, 사랑스러웠다’
"인턴 선생님! 환자 왔어요."
오늘도 어김없이 몰려드는 환자들을 맞으며 근무를 시작한다. 하루라도 조용히 하루를 시작하면 좋으련만, 응급실에서 그런 기대를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24시간 박진감 넘치는 응급실, 나는 그 중에서도 소아 응급실을 담당하는 인턴이다.
아름다운 햇살이 밝게 빛나는 아침, 그러나 유난히도 정신없었던 화요일이었다. 점심시간 즈음 여덟 살 남자 아이가 왔다. 뛰어 놀다 보면 친구가 너무 좋고 자신감을 꽃피울 천진난만한 나이!
'녀석, 무슨 장난을 하다가 다쳤으려나. 꽤나 장난꾸러기겠지'라고 생각하며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장난기 가득하고 활기찬 아이가 곧 내 앞에 서있으리라 생각하면서⋯. 그러나 마주한 아이는 세상 풍파 다 겪은 노인보다 더 큰 수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퍼렇게 멍이 들어 터질 듯 부어오른 눈두덩이 사이로 어렵사리 보이는 아이의 눈동자에는 세상의 모든 슬픔이 고여 있는 듯 했다.
"동건이, 어떻게 하다가 다쳤어요?"
아이는 대답이 없었다. 의사 선생님의 눈빛을 외면하며 시무룩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동건아, 어떻게 다쳤는지, 어디가 가장 아픈지 얘기해줘야 선생님이 치료해줄 수 있어. 그러니까 선생님한테 얘기해보자"
이래저래 아이를 달래다 아이의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옆에서 한숨만 푹푹 쉬던 아이의 엄마가 결국 대신 대답했다.
"같은 반 친구한테 맞았어요. 어제 맞았는데, 너무 심하게 멍이 들어서 오늘 학교도 안가고 이천에서부터 여기까지 왔어요."
아차, 그래서 아이의 표정도, 엄마의 표정도 한없이 무겁고 어두웠구나.
그러나 동정도 잠시, 환자가 많이 밀려있었기에 나는 더 이상의 감정이입 없이 빠른 속도로 진료를 마쳐야 했다. 아이는 CT검사 상 안와벽 골절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관련 과에 연락을 취한 후, 담당 선생님이 올 때까지 대기하도록 했다. 어떤 사정으로 다쳤건, 이래저래 바쁜 상황에서 동건이와 엄마도 내게는 그저 '안와벽 골절이 의심되는' 환자와 보호자일 뿐이었다.
그날따라 관련 과도 많이 바빴는지 아이의 대기시간이 길어졌고, 나는 응급실 앞에 나란히 앉아 있는 엄마와 아들을 여러 번 마주쳤다. 그때마다 모르는 척 하고 지나쳤지만, 엄마와 아들은 여전히 무거운 표정이었다.
둘은 말이 없었다. 두 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시종일관 어두운 표정으로 말없이 앉아있는 엄마와 아들. 그 무거운 표정과 다섯 번 쯤 마주칠 때였을까⋯.
아이의 어머니가 눈물을 닦고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자꾸 흘러내리는 눈물을 가뜩이나 주눅이 들어 있는 아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몰래 닦고 있는 듯 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어머니의 눈동자와 내 눈동자가 마주치는 순간, 네 개의 눈동자가 멈췄다. 바쁘다는 이유로 이번에도 차마 못 본 척 지나갈 수 없었다. 멈춰버린 눈동자를 따라 아이의 엄마에게 조용히 다가갔다.
"그냥, 마음이 너무 아프네요. 애가 누구한테 맞은 것도 그렇고 이렇게 많이 다친 것도 그렇고…. 게다가 얘가 맞은 게 창피해서 학교에 못가겠대요"라고 말하며 참고 있던 서러운 눈물을 더 크게 터뜨리고 만 어머니⋯.
진찰실로 아이와 엄마를 다시 불렀다. 엄마는 아직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고, 아이는 더 움추러들고 있었다. 자기 때문에 속상해서 울고 있는 엄마 옆에서, 부어오를 대로 부어오른 눈두덩이 사이로 보이는 좁은 세상이 무척이나 답답하게 느껴졌으리라.
나는 풀이 죽어 여전히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는 아이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그 작은 손을 내 이마로 가져와 내 앞머리를 들췄다. 앞머리 뒤에 숨어있던, 젊은 여자 선생님의 이마가 훤히 드러났다.
"선생님 이마 봐. 엄청 큰 흉터가 있지? 선생님도 어렸을 때 크게 다쳤었어. 그래서 몇 달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었단다. 선생님 엄마도 얼마나 많이 우셨는지 몰라. 친구들한테 놀림도 많이 당했어. 근데, 그렇게 아팠던 경험이 지금의 선생님을 만들어 주었단다. 지금은 아프지만, 잘 이겨내면 오히려 더 소중한 경험이 될 수 있고 넌 더 큰 사람이 될 수 있단다."
"어머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물론 지금은 많이 속상하시겠지만, 자라나는 아이에게 이런 경험들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닐거에요. 잘 이겨내고 극복하면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아이를 더 강하고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거에요. 저도 그랬거든요. 이마에 이렇게 큰 흉터가 남았어도 지금은 제게 그런 시련을 주셨음에 감사해요. 진심으로요."
몸도, 마음도 상처 입은 어머니와 아들에게 위로를 건네다 나의 어렸을 적 기억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어린 딸이 교통사고로 병원에 실려 갔던 날, 엄마는 응급실에 달려와 이마가 다 깨져 피투성이가 된 나를 달랜 후 밖에서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셨더란다. 반나절이 넘는 긴 수술을 위해 어린 딸을 홀로 수술장에 들여보낸 후, 고동치는 심장의 소리를 들으며 어린 딸의 수술이 잘 끝나기를 눈물로 기도하셨더란다.
드디어 실밥을 뽑기 위해 반창고를 열었던 날, 엄마는 딸에게 고생했다고, 우리 딸 장하다고 애써 말한 후 진찰실 밖으로 나가 쏟아지는 눈물을 펑펑 흘리셨더란다.
15년 전 어머니가 흘린 눈물이 떠올라 어느덧 내 눈에도 눈물이 가득 고였다. 원치 않게 다쳐 아파하는 자식의 모습에 속상하고 서러운 눈물이 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으랴. 나는 아이와 어머니의 눈물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내 눈에도 가득 고인 눈물을 보며 아이의 엄마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았고, 이내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날, 진정한 위로는 경험을 통해 나오는 것임을 깨달았다. 누군가에게 진정한 위로가 되어 주라고, 희망을 주라고⋯ 그때 내게 그런 아픔을 허락하셨나보다. 그리고 훈장처럼 그 흔적을 크게 남기셨나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의 이마를 볼 때마다 어머니를 홀로 눈물짓게 만든 큰 흉터⋯. 시도 때도 없이 철없는 남학생들의 놀림의 대상이 되었던 큰 흉터⋯. 어린 여학생이 감당하기에는 쉽지 않았던 흉터⋯.
내 앞머리 속에 가려진 나의 오랜 아픔이자, 지울 수 있다면 지워버리고 싶었던 흔적이 오늘은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 쓰이고 있었다. 그냥 위로가 아닌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되는 진정한 위로 말이다. 오늘만큼은, 나에게 오랜 아픔이었던 흉터가 사랑스러웠다.
진정한 위로는 경험을 통해 나온다는 것을 깨달은 오늘⋯. 오늘은 감히, 힘들고 아픈 사람들에게 힘을 내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은 너무 힘들고, 참기 힘들 만큼 아플지라도, 힘을 내라고 말하고 싶다. 당신과 나의 아픈 경험이 언젠가 위로가 필요한 누군가에게 '진정한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힘을 내자고 말하고 싶다. 그 사실 만으로도, 당신과 나는 의미 없이 아픈 것이 아니라 충분히 가치 있게 아픈 것일테니… 힘내자,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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