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목회자가 평신도에게 전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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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김범태 기자
kbtlove@kuc.or.kr
입력 2010.11.08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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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마른 심령에 성도의 아름다운 믿음은 큰 영향...”
목회자대표 이광원 목사가 전한 ‘목회자가 평신도에게 전하는 마음’을 담은 글을 옮긴다.
저는 교회 최일선에서 목양하는 한 작은 목회자로서 이 역사적인 기도회에 성도님들에게 저의 목회적 소회(所懷)를 말씀드리게 되어서 부끄러움과 함께 특권으로 생각을 합니다.
저는 가을바람이 불어오면 알 수 없는 불안감으로 조바심을 느낍니다. 이러한 느낌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목회 초년부터 찾아 온 강박 심리입니다. 들판에 곡식들이 익어가고 가판 시장에 과일들이 쏟아져 나오면 더욱 쫒기 듯 초조해집니다. 봄과 여름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섭리는 어김없이 풍성한 가을을 주시건만 저의 농원은 이리도 부실한지 올해도 여전히 그 계절병을 앓고 있습니다.
저에게도 똑같은 봄과 여름이 있었고 지나간 달력의 빈칸엔 무엇인가 일한 흔적으로 까맣게 채워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을이 오면 미미한 수확을 바라보며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청년 윤동주는 그의 서시(序詩)에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자주 자주 이 시구(詩句)가 생각이 나서 스스로 제 영혼을 흔들어 깨웁니다. '나는 정말로 이러한 양심과 신앙이 있는 것인가?' '올 한해도 봄과 여름을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이 살았는가?' 또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면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는데 '올 한 해 나에게 주어진 모든 일들을 다 이룬 것인가?' 이런저런 반성과 성찰을 하게 됩니다.
목회자로서 시간을 올바로 사용했는가하는 자책을 크게 합니다. 하루 일과 속에서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너무 빈약합니다. 새벽시간에 교회당 유년관에서 드린 비몽사몽간의 기도와 서너 장의 예언의신 독서, 한두 장의 성경독서로 한 시간 정도를 보내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루가 시작되면 진종일 성경 한 줄 읽지도 못하고 지나가는 때가 태반입니다. 공식적으로 이루어지는 예배와 심방, 그리고 경조사 시에 행하는 설교를 위하여 준비하는 것을 빼고는 영성을 증진하기 위해 좋은 시간들을 활용하지 못한 허물이 큽니다. 안식일이 다가오면 벼락치기로 하는 교과공부와 금요일 저녁 설교, 안식일 예배 설교를 위하여 밤잠을 설쳐가며 준비하는 제 자신의 모습이 늘 한심하지만 이 틀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해야 생활할 수 있는 시대이지만 너무 많은 시간을 신문이나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기사를 읽느라 허비하고 있습니다. 밤 10시30분 이전에는 취침하리라 단단히 마음을 먹고 인터넷에 접속하지만 11시를 넘기고 자정에 이르는 때도 많습니다.
어제 저녁에는 교인들과 함께 일을 보고 늦게 들어 와 이런저런 업무를 처리하느라 자정을 넘기고 1시에 잠자리에 들었다가 새벽 5시에 울리는 전화기 벨소리에 힘들게 일어났습니다. 늦게 자면 새벽을 깨우기가 힘들어 집니다. 요즘은 10시30분을 마지노선으로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목회자의 영성생활이 엉성해지면 설교에 영향을 미치고 설교가 부실하면 교인들의 교회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지 못한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낍니다. 목회를 하면 할수록 설교하기가 두렵다는 선배님들의 이야기가 이제야 실감이 납니다. 그러나 여전히 고심하고 있으며 기도로 씨름하고 있습니다. 설교주제, 성경본문, 설교제목 등을 기도하며 간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주제를 쉽게 설명하기 위하여 적절한 예화를 찾아내는 것이 갈수록 어렵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따분하고 늘 하는 소리가 그 소리라는 비판에 몸 둘 바를 모릅니다. 아예 설교 초장부터 졸고 있는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 제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납니다. 예수님께서 설교하시면 백성들이 즐겁게 들었다고 하였는데 '나는 왜 그렇게 하지 못하는가?' 라는 자책감이 저를 괴롭힙니다.
제 설교가 감동이 되지 않는 것은 제가 설교한 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설교문을 쓰고 그것을 보관합니다. 그 원고 그대로 다시 쓰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쌓아 둔 설교문 봉투가 두껍게 늘어나는 것을 보면 볼수록 겁이 납니다. 이렇게 많은 설교를 하였는데 과연 나는 그대로 살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과연 성도님들은 이 말씀들로 인하여 얼마나 은혜를 받았으며 변화되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올해는 지난해와 같지 않게 많은 성도들이 결석을 하고 교회가 이런 저런 이유로 썰렁해졌습니다. 그 이유를 제 자신이 그리고 저희 내외가 또 교회 직원회에 가지고 나가 분석해 보았습니다. 물론 근본적으로 목회자의 책임입니다. 저는 목회자야 말로 "무한 책임자"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교인들이 교회 출석에 등한히 하는 것은 목회자가 교회를 신명나게 목양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목회자가 아무리 좋은 기별을 선포한다고 하더라도 그 설교를 실천할 수 있는 동력은 목회자의 열정과 희생적인 헌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못할 때 설교는 설교로 그치고 생활은 다르다는 사상이 백성들의 마음속에 은연중에 만연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목회자가 솔선수범, 모범이 되지 못하고 이기적이고 세속적이었기 때문에 교인들도 알게 모르게 그렇게 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어떻든지 제가 세상을 좋아하고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모습으로 비치지 않도록 노력하며 애쓰고 있습니다.
저는 요즘 한 부인을 구원하기 위해 온 힘과 정성을 다해 기도하고 노력하며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에 유대에서 충분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갈릴리로 가는 도중에 사마리아 수가 동네 앞 우물가에 앉아 계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제자들도 없는 조용한 정오의 우물가에서 심령이 가난한 오직 그 한 여인을 위하여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를 길러 주신 것을 생각합니다.
저는 제가 접촉하는 그 젊은 부인이 이 시대의 수가 우물가에서 만나는 영혼이기를 바라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더욱 부지런히 찾아가 방문하고 그러한 영혼들을 위하여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 바쳐 충성하는 목회자가 되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저의 교회와 교인들은 참으로 순수하고 좋은 분들입니다. 괜한 공치사(空致辭)가 아니라 사실이 그렇습니다. 제가 변하면 저희 교인들도 더욱 새롭게 변화되어 큰 부흥을 이루리라 확신합니다.
마지막으로 성도님들에게 바라는 것은 이 시대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은 저희들의 부족함과 한없는 안타까움이 있을지라도 그 현실을 넘어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고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을 지켜주시기를 바랍니다. 저희 목회자들은 하나님과 교회의 성업을 위하여 헌신하고 희생하시는 성도님들을 바라보면 큰 힘과 용기가 됩니다.
저희들의 메마른 심령에 성도님들의 아름다운 믿음은 큰 영향을 끼칩니다. 우리가 함께 힘을 합쳐, 처지고 내려가려는 한국 교회의 중력을 떠받치고 더욱 상승시키는 부흥과 개혁을 이루십시다. 저희들은 오직 이 한 일을 위해 신명을 다 바치겠습니다. 이전보다 더욱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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