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교과에는 나오지 않는 교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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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신문>은 개편을 맞아 ‘교과에는 나오지 않는 교과 이야기’를 신설했습니다. 교과에서 직접 다루지는 않지만, 배경 지식이나 특징을 좀 더 깊이 있고 흥미롭게 공부할 수 있는 코너입니다.
첫 연재로 <마은영의 ‘헬라어로 읽는 에베소서 특징’>이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저자는 삼육대 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앤드류스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현재 미국 GTU(GRADUATE THEOLOGICAL UNION)에서 박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를 헬라어로 읽으며 발견한 원문의 아름다움과 한역본에서는 찾기 어려운 특징을 알기 쉽게 설명합니다. 그럼, 오늘부터 마은영 님을 따라 에베소서를 기록한 고대 헬라어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겠습니다. - 편집자 주 -
야!
‘…?!’
아, 오해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독자들을 무례하게 부른 것이 아니라, 현대 그리스어로 인사한 거랍니다. 에베소서를 비롯한 신약성경이 기록된 헬라어에 대해 소개할 참이거든요.
“야(γεια)!”는 그리스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인사말입니다. 그렇지만 이걸 기억해서 훗날 하나님 나라에서 사도 바울을 만나 반갑다고 “야!” 하시면 안 됩니다.
헬라어가 고대에 쓰이기 시작해 현대에 이르기까지 몇 천년을 생존한 몇 안 되는 언어 중 하나지만, 시대가 지나면서 인사말을 포함해 사용되는 용어, 문법, 표현법 등이 많이 달라졌거든요. 마치 우리가 오늘날 한글을 잘 안다 해도 세종대왕이 쓰신 “나랏말ㅆ·미 듕귁에 달아…”에서 아리송할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헬라어는 시대적으로 크게 다섯 가지 정도로 분류합니다. 트로이의 목마 이야기는 가장 오래된 헬라어인 호메로스식(Epic), 소크라테스의 말들은 고전(Attic/Classical), 성경은 코이네 (Koine) 헬라어로 적혀 있습니다. 그 이후에도 중세 헬라어를 거쳐서야 현대 헬라어에 도달하게 되니, 헬라어가 생존한 시간과 비교할 때 다른 언어에 비해 변화가 적다고는 해도 현대 헬라어 성경과 코이네 헬라어 원본을 비교하면 그 차이를 현저히 느낄 수 있습니다.
“헬라어 문법 공부는 실제로 성경공부에 별 쓸모가 없어”라던 친구들의 목소리도, “헬라어를 알면 새로운 진리가 발견되나?” 하는 의문 혹은 공포의 목소리도 모두 들리는 것 같네요. 먼저 확실히 말하자면, 헬라어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진리를 알지 못한다거나, 헬라어를 안다고 해서 근본적인 진리가 바뀌는 일은 없습니다.
신약성경은 헬라어로 기록됐으나 인간의 표현을 뛰어넘어 성령께서 우리에게 직접 말씀해 주시는 책이 아닙니까. 성경을 읽는 우리의 목적은 멋진 언어의 기교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심령을 쪼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접촉하는 것이며,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역본들로도 충분히 그 목적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저는 헬라어로 성경을 읽고, 마치 소중한 보물을 꺼내 오듯 거기에서 배운 것을 여러분과 나누려 할까요? 역본이 훌륭하게 원문의 내용을 전달하는 경우가 많지만, 어떤 경우는 번역하면서 원 표현의 독특성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보면 형형색색의 생생한 사진을 번역본이 흑백사진으로 만드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동영상처럼 유동적인 표현이 번역본의 사진 속에 박혀버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즉, 원어로 보면 저자들이 강조하고자 하는 부분을 좀 더 자세히 그리고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강조점을 통해 저자의 의도와 열정을 새롭게 알게 될 때 느끼는 희열이, 제게는 개인적으로 헬라어로 성경을 꾸준히 읽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자! 이제 저의 말을 듣고 헬라어로 성경을 읽고자 하는 갈망이 생기셨나요? 신약성경을 원어로 접하고자 하는 노력은 아주 가치가 있으나,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으로 성경의 원어들을 풀이한 오프라인과 온라인 도구를 사용할 경우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문법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없으면 자연스럽게 단어의 뜻이 무엇인지에 주의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특정 단어의 기원이나 뜻이 독특해 깊은 감동을 받아 하나나 소수의 단어의 뜻에 의지해 해석의 방향을 결정하게 되는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한국어 표현으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네 동생, 정말 미인이다!”라는 말을 듣고 이렇게 반응하는 것과 같을 수 있습니다. “미(美)의 기원은 ‘제사드리는 양(羊)이 크다(大)’는 것이니까, 네 말은 내 동생을 제사 드리고 싶다는 거야, 동생이 양을 닮았다는 거야, 아니면 크다는 말이야?”
언어의 기원이나 뜻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을 피해야 할 이유는 위에서도 언급한 헬라어 변천의 역사와 관련 있습니다. 구약이 기록된 히브리어와 달리, 헬라어는 신약성경의 언어로 사용될 때 이미 시간과 환경이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단어의 기원이나 파생의 역사와 상관없이 특정 상황이나 문맥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표현법이 된 것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특정 단어가 돋보인다 하면, 거기에 의존한 해석을 하기 이전에 그 단어가 사용된 이유를 전체적인 구조와 문맥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찾도록 노력하면 좋을 것입니다.
여기까지의 설명을 읽으니 제 말에 신뢰가 가시나요? 죄송하지만 한 가지 더 주의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헬라어로 성경을 읽는다고 하여, 제 말이 무조건 옳다거나 유일한 해석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원문의 특징에 대한 설명과 그에 대한 저의 해석을 구분하기는 독자들에게 드리는 저의 숙제입니다.
성경을 포함한 고전의 묘미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오랜 시간이 지나고 다양한 사람이 읽어도 여전히 그것이 주는 교훈이 있다는 것과 한 사람이 여러 번 읽으며 되새길 만한 다양하고 깊은 의미가 계속 발견된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성경은 거룩한 경전으로서 겸손한 마음으로 대할 때 심령을 쪼개고 사람을 새롭게 하는 힘이 있는데, 그 경험은 매번 새로울 수 있습니다.
제가 원어적 특징을 언급하면서 그 까닭으로 제시하는 설명이나 신학적 메시지에는 성경이 직접 말한 것이 아닌 이상 저의 개인적 해석이 들어감을 감안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의 생각을 참고하시되, 각 개인이 성령의 인도를 겸손히 구하며 더 깊은 이해와 개인적 적용을 경험하길 기도합니다. 그럼, 다음 주부터 본격적으로 <헬라어로 읽는 에베소서> 연재를 시작하겠습니다.
■ 추천 및 감수: 김상래 교수(삼육대 신학과 / 전 삼육대 총장, 신학연구소장)
저자 마은영 자매는 대학 재학 시절 매우 진실하고 성실하고 신실한 신학도였습니다. 우등입학에 우등졸업이었지요. 그가 현재 박사과정을 공부하는 GTU는 신학에 있어 거의 최상급 명문학교입니다. 그는 그곳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이수하며 학부 학생들에게 헬라어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그의 학문적 실력은 향후 교회에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이번 기고에서도 전문적이고 깊이 있는 내용을 대중이 알기 쉽게 풀어 전달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재림신문> 독자 여러분에게 유익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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