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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인터뷰①] “패소 두려웠다면 시도조차 안 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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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kbtlove@kuc.or.kr 입력 2019.02.07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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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승소’ 한지만 군 “힘들어도 하나님의 길이 옳으면 믿고 가는 것”
한지만 군과 부모님이 대법원 승소 판결 후 첫 안식일에 자리를 같이했다. 뒷편의 붉은벽 건물이 K대 의학전문대학원 강의동이다.
“패소 사례가 자꾸 생기면 다른 사람이 피해보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그런 게 무섭고 두려워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궁극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안식일 성수를 위해 ‘토요 시험’을 거부하며 학교를 상대로 추가시험 요청 소송을 제기했던 한지만 군은 ‘만약 패소했을 경우, 다른 청년들에게 끼칠 영향 때문에 부담이 꽤 컸을 거 같다’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종교 때문에 특정 직업을 가질 수 없다면 그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판단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중도에 포기하면 오히려 패배자가 될 거 같다는 기분이었다. 힘들더라도, 하나님께서 이 길이 옳다고 말씀하시면 믿고 그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당시의 심경을 밝혔다.

<재림마을 뉴스센터>는 대법원 승소 후 첫 안식일이었던 지난 2일, 대구중앙교회에서 한지만 군과 그 가족을 만났다. 인터뷰는 약 2시간 동안 이어졌다. 그는 “솔직히”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목소리에는 때론 기쁨과 안타까움이, 때론 담담함과 감사의 감정이 교차했다. 이 자리에는 아버지 한기태 교장(영남삼육중.고)도 함께 해 그간의 상황과 소송 이후 애탔던 아비의 심정을 절절하게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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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소를 다시 한 번 축하합니다. 판결 후 어떻게 지냈습니까?
- 짧은 시간 동안 많은 분들에게 축하전화와 문자메시지를 받았습니다. 또한 그동안 도와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렸습니다. 마음고생이 굉장히 심했을 텐데, 저를 믿고 끝까지 지지해주신 부모님과도 함께 기쁨을 누렸습니다.

향후 복학에 관해 교수님들과 학교 관계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재판에서 제가 승소했기 때문에 이제 시험을 볼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흔쾌히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소송으로 인해 제가 시간을 허비했던 것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구제하려는 마음이 없어 보여 솔직히 아쉽기는 했습니다.

크게 바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전향적인 모습을 기대했는데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더 남아있는 거 같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아직은 더 조율해야 할 듯합니다. 복학까지는 다소 여유가 있어 2주일 뒤에 학교 측의 답변을 받기로 했습니다.

올해부터 1학년 과목의 시험과 수업이 모두 다 평일로 조정된 걸 확인했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모든 학년에서 토요일에도 수업을 하거나 시험을 치르곤 했습니다. 현재로서는 2학년 진급이 미지수인데, 1학년으로 되돌아간다 해도 전혀 문제없이 다닐 수 있을 것 같아 기쁩니다.

▲ 소식을 듣고, 주변에서 뭐라고 하던가요?
- 그동안 함께 마음 졸이며 기도해 주셨던 목사님과 장로님, 집사님, 친구들, 선후배들이 마치 본인 일처럼 기뻐해주셨고, 축하해 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그동안 함께 걱정해주고 격려해줬던 학과 친구에게 승소를 알렸고, 모두 다 축하한다며 기뻐했습니다.

News_9047_file3_v.png▲ 학과 친구들은 뭐라던가요?
- 같은 재림신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저를 도와주려고 애썼던 친구들이 있어요. 그들에게 전화를 해서 “같이 힘든 상황에서도 너희들이 나를 이해하고, 도와줬고, 받아줬기 때문에 내가 버틸 수 있었고, 이렇게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면서 고맙다고 인사했습니다.

그동안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솔직히 비 재림신자를 만나는 게 두려웠습니다. 그들에게 제 속마음을 표하거나, 상황을 털어놓는 것조차 힘들었어요. 그래서 의도적으로 교회에 다니는 친구들만 만났던 측면도 큽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아닌 친구들이 어려움에 처한 제게 먼저 호의를 베풀고, 편견 없이 바라봐 주고, 도움을 줬습니다. 오히려 “힘들겠지만, 버텨라. 우리는 너를 더 응원한다. 힘내라”고 많이 격려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주변에 그런 친구를 준비시켜 주시고, 보내주시고, 만나게 해주셨다는 게 참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바라는 점이 있다면, 그들에게 하나님을 알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주변에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그 중 5명과 유독 친했는데, 그들이 없었다면 아마 학교생활이 힘들었을 겁니다.

출석부에 이름도 없는 제가 수업에 참여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먼저 사인해주고, 관련 서류의 양식도 만들어주는 등 정말 큰 도움을 줬습니다. 이번 경험을 통해 앞으로도 제가 어떤 어렵고 외로운 상황에 처하더라도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순간마다 분명히 누군가를 통해 도움의 손길을 펼쳐주시리라는 걸 확신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그 친구들과 함께 재림교인 의치한의대생 모임 SMA(SDA Medicalstudents Association)의 해외봉사 활동을 가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지구촌 이웃을 위해 어떻게 봉사하는지 보여주고, 같이 감동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게 지금 제일 해보고 싶은 것 중 하나입니다.  

▲ 2017년 8월 대구지법에 소장을 제기한 후 1년5개월 만에 사건의 종지부를 찍게 됐는데,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어떤가요?
- 처음에 아버지께 소식을 들었을 때는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너무나 홀가분하고 기뻤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주님의 영광이 드러났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제가 기뻤던 순간이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 승리하셨던 순간이었습니다.

그간 힘들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그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을 만큼 큰 기쁨을 맛봤습니다. 하나님의 승리요,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위대한 순간이었습니다.

▲ 교장선생님은 결과를 제일 먼저 확인한 분인데, 마음이 어떠셨어요?
(한기태)
- 대법원 사이트에서 ‘심리불속행 기각’이라는 단어를 보고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그날 오전 11시45분에 확인했을 때만해도 고지가 없었거든요. 1월의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에, 2월로 넘어가면 소송이 장기화될 거 같아 여간 염려한 게 아닙니다.

그날 점심식사를 하던 중, 지만이가 “시간표를 확인했는데, 이상하게 1학년에 안식일 수업이나 시험이 하나도 없다”고 그러더군요. 그래서 뭔가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폭설이 내려 교정에 쌓인 눈을 치우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오후 2시께 확인하니 기각 판결이 났더라고요. 저절로 “이겼다!” “승소했어!”라는 외침이 터져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습니다.  

▲ 본인은 1학년 시간표에 안식일 수업이 없는 걸 어떻게 확인했나요?
- 승소하기 며칠 전, 신명철 변호사님께서 “판결이 늦어지면 피해가 커질 수 있으니 탄원서를 쓰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탄원서를 제출한 뒤로 혹시 시간표가 나온 게 있나 궁금해서 수시로 확인했죠.

그날도 시간표 파일을 여는데, 신기하게 유독 그 파일의 형식만 없는 거예요. 결국 2시간 동안 고생해서 파일을 확인했는데, 1학년은 토요일에 아예 시험이 없더라고요. 어느 정도 변화가 있는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 승소 후 처음으로 맞는 안식일이 더욱 각별할 것 같습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어떤 마음이었나요?
- 하나님께 무한히 감사하고 영광을 돌립니다. 매번 같은 안식일을 보내왔지만, 이렇게 기쁘고, 아무런 걱정 없이 보낼 수 있는 안식일은 무척 오랜만인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 아침에도 매우 기쁜 마음으로 교회에 올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현실의 삶에 어려움이 닥치면 안식일마저 온전하고 충만한 기쁨으로 보내기 어렵다는 연약함을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놀라운 승리를 주시고 이렇게 기쁘게 안식일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다시 행복감을 느끼는 안식일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과정 속에 하나님이 함께 하셨고, 그분께서 이 모든 결과를 이끌어 내셨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에 감사하고, 하나님께 경배를 돌리고, 주님을 찬양할 수 있는 뜻 깊은 안식일이었습니다.

News_9047_file4_v.png▲ 그동안 함께 애태우셨던 부모님께서도 오늘 안식일은 의미가 남달랐을 거 같습니다.(한기태)- 평소 제가 쓰는 <기도의 노트>가 있습니다. 그 중에 응답이 없는 기도제목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이번 재판이 그 중 하나였습니다. 그동안 마치 캄캄한 터널을 지나는 것 같았습니다. 겉으로는 웃었지만, 속으로는 무척 힘들었죠. 남들 앞에서는 명랑한 척, 괜찮은 척 했지만, 하나님께는 얼마나 많이 구하며 매달렸는지 모릅니다.

‘다른 기도는 다 들어주시면서, 왜 집안 문제와 관련된 기도는 이렇게 더디냐’며 인간적으로 원망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나니 그 터널 같던 암담한 시간이 우리에겐 준비와 은혜의 기간이었습니다. 오늘은 마치 우리 바로 옆에 계신 예수님을 만난 것 같아 너무나 행복합니다. 함께 기도하며 응원해준 모든 성도들과 아내에게 다시 한 번 고맙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 짜릿하고 감격적인 순간도 있었을 테고, 좌절과 막막했던 순간도 있었을 것입니다. 언제가 가장 힘들었습니까?
- 솔직히 승소 결정이 나기 직전까지 모든 순간이 다 힘들었습니다.(웃음) 미래를 알 수 없는 불안 속에서 지내야 했기 때문에 무척 괴로운 나날이었어요. 그 중에서도 출석부에 이름은 없는데 학교는 다니고, 수업은 듣지만 시험은 볼 수 없는 현실이 너무 버거웠습니다. 마치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거 같았어요. 그 시간 속에서 하나님께 얼마나 애타게 부르짖었는지 모릅니다.

돌이켜보면 오히려 휴학을 하고, 모든 조치를 기다리는 시간이 덜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고생했다고 격려해 주시면서, 축하해주시지만 제가 한 거라곤 단지 버티고, 참고, 흐르는 시간 속에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길 기도하며 기다린 것 밖에 없습니다. 제가 한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 만약 패소했을 경우, 다른 재림청년들에게 끼칠 영향 때문에 부담이 꽤 컸을 거 같습니다. 어떠셨나요?
- 처음부터 재판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 건 아니에요. 좀 전에 ‘제가 한 건 아무 것도 없다’고 말씀드렸는데, 실제로 그래요. 1심에서 패소하고 항소할 때도 변호사 선임이라든가, 고액의 소송비용이라든가 제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없었죠. 대법원 상고 과정에서도 무엇이 필요한지 몰랐어요.  

다만, 제가 할 수 있는 건, 제가 가진 건 아무 것도 없지만 소송을 위해선 결국 내 의지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건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풀어가야 할 개인의 신앙 문제라고 여겼죠. 아무 것도 없는 상태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도전해 보는 게 맞다고 확신했어요. 그래서 패소에 대한 부담은 부차적인 거였죠.  

그런데, 막상 국가인권위원회 제소가 기각되니까 솔직히 도망치고 싶더라고요. 앞이 캄캄하고 심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다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현실적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거 같았어요. 이제는 학교의 지침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체념이 들었죠. 강기훈 선생님께 전화 드려서 “더 이상 못하겠다”고 했어요. 아버지께도 “이제 학교를 그만 두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며칠 동안 핸드폰을 꺼놓고 ‘잠수’를 타기도 했죠.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참 희한한 게 그 과정 속에 하나님은 저에게 계속 깨달음을 주셨어요. 어느 순간, ‘어렵고 힘들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재판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죠. 그래서 소송을 결심한 거예요.

1심에서 패소한 후에도 파장이 있었어요. 하지만, 별로 걱정하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변에서 더 많이 염려하신 거 같아요. 항소를 결정했을 때도 이런저런 이야기가 들려왔지만, 개의치 않았어요. 혹여나 2심마저 패소하더라도 그건 저의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누구도 제 삶을 대신 살아주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저는 저에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가면 된다고 여겼어요.
  
이후에 종교·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병역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을 보면서 확신이 들었어요. 수십 년 동안 패소하고, 수많은 사람이 수감되면서도 끝까지 고투해서 결과를 뒤집는 여호와의증인 신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여태 안식일에 관한 판례 하나조차 제대로 없는 우리의 모습은 과연 어떠한가’ 되돌아 봤죠.

“패소 사례가 자꾸 생기면 다른 사람이 피해보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그런 게 무섭고 두려워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궁극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 개인적으로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종교 때문에 특정 직업을 가질 수 없다면 그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판단했어요.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중도에 포기하면 오히려 제가 패배자가 될 거 같다는 기분이었어요. 비록 힘들더라도, 하나님께서 이 길이 옳다고 말씀하시면 그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 다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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