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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인터뷰②]싸울 힘 없다며 버틸수록 ‘전진하라’ 음성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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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kbtlove@kuc.or.kr 입력 2019.02.08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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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승소’ 한지만 군 “말씀에 순종하고자 끝까지 노력하는 길 선택”
한지만 군과 아버지 한기태 교장이 그간의 소송 자료를 들여다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학생이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재판까지 간 이유는 무엇입니까?
- 솔직히 개인의 명예와 행복을 생각했다면 결코 하지 못했을 겁니다. 많은 분들이 ‘내가 만약 너 같은 상황이었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소송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어요. 오로지 하나님께 기도하고 울부짖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소송은 안식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현실적인 도구로써 최후의 수단이었기 때문에 한 겁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이곳에 보내신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괴롭고 어렵고 도망가고 싶었지만, 말씀에 순종하고자 끝까지 노력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사실 약대 재학 시절, 토요 시험을 거부해서 같은 과목에서 F학점을 두 번이나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한 교수님께서 저를 끝까지 이해해 주지 않으셨어요. 결국 4학년이 돼서야 교수님이 저를 측은하게 생각하셨는지 “내가 너에게 평생 원망 들으며 살고 싶지 않다”면서 허용해 주셔서 겨우 학점을 이수했습니다.    

그렇게 졸업을 하고 나니까 ‘내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해서 안식일을 지킨 건지’ 아니면 ‘어떤 의무감 때문에 그렇게 한 건지’ 혼동이 왔어요. 솔직히 고백하면, 토요일에 시험은 보러 가지 않으면서, 예배는 지각하거나 나태하게 안식일을 보낸 적이 많습니다.  

이후에도 ‘내가 그렇게까지 해서 얻은 게 무엇일까’ 생각을 많이 해 봤어요. 그런데, 그렇게 철저하게 안식일을 구별한다고 했으면서도 진정한 행복을 누리지는 못한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앞으로 이런 순간이 온다면 이렇게까지는 하지 말아야 겠다’고 마음먹었죠. 재림교인으로는 살겠지만, 이렇게 고집스럽게 투쟁하지는 않겠다고 다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저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군대에서도 그다지 큰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 안식일을 지킬 수 있게 해 주셨어요. 논산훈련소에서도 편안하게 오전부터 온전히 안식일을 성수했고, 자대 배치를 받고 3일 만에 교회 출석을 허락받았습니다. 기적처럼 군대에서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교회에 갈 수 있었어요.

하지만,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한 후 첫 시간표를 보고 ‘이건 답이 없다’는 생각이 덜컥 들었어요. ‘교수님을 찾아갔는데, 안 된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하는 걱정이 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학교 출신이자 막 인턴에 들어간 한 후배가 교회에서 저를 보자 “토요일 시험 어떻게 할 거냐”고 묻더라고요. 안식일 성수가 생각처럼 쉽지 않을 수 있다면서 영남합회 종교자유부장 목사님 전화번호를 알려줬어요.

그제야 ‘이젠 결단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열심히 성경을 보고, 간절히 기도하고, 집중해서 설교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개강 후 안식일 문제를 해결해야 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면서 걱정이 커졌어요. 솔직히 학교를 상대로 이길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첫 학기라 아는 친구도 없었기 때문에, 마땅히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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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신기하게도 절대 투쟁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가슴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계속 드는 거예요. 그 뒤로 최기웅 목사님, 송웅규 선배 등 주변 분들이 관심을 갖고 기도해 주시기 시작했어요. 그 즈음부터 강기훈 선생님께서도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시면서 본인의 경험담이나 학교를 어떻게 상대하고, 해결해 나가야 할지 많은 조언을 주셨습니다.

답이 없다고 생각해 답답했었는데, 참 많은 힘이 됐습니다. 의지할 곳이 없어서 무척 외롭게 느껴졌거든요. 간절한 마음으로 매일 새벽 일어나 기도하고 성경을 읽었어요. 어떤 날은 울면서 학교를 갈 때도 있었습니다. 너무 힘들어 성경을 읽을 수도 없을 때는 방송설교를 보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나는 싸울 힘이 없다’며 버티면 버틸수록 하나님은 저에게 계속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어요.

여러분은 어떻게 보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진짜’ 신앙심이 없어요. 이번에 대법원까지 간 것도 신앙심이 투철해서가 아니에요. 제가 여기까지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저는 단지, 어느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단순한 마음에서 출발했을 뿐이에요. 그런데, 그 투쟁의 과정에서 확실하게 느낀 건 ‘하나님이 쓰시고자 하시면, 비록 그 사람이 부족하더라도 그의 생각을 주관하시며, 함께 일할 준비된 사람을 보내주신다’는 거예요.

제가 이 학교를 선택했을 때는 좋은 교육과 시스템, 경쟁력을 갖춘 곳이라는 판단에서였는데, 갈등이 커지면서 얼마나 후회했는지 몰라요. ‘의전원을 준비할 때 왜 하나님을 더 많이 바라보고 결정하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들었어요. 심지어 ‘여기는 내가 다닐 수 없는 곳’이라거나 ‘재림교인이 이곳에 온 자체가 잘못’이라는 비관적인 생각도 했죠.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버텨보자’는 오기가 들었어요.

되돌아보면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이쯤에서 그만 둘까’하는 고민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셨어요. 저를 이 학교에 보내신 것 자체가 그분의 큰 계획이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네 시작은 미약했지만 끝은 창대하리라’는 말씀이 새롭게 느껴져요. 시작할 때는 제 마음이 정말 미약했거든요. 그런데, 오히려 일이 진행되면 될수록, 제 마음의 강단도 더 커지고, 견딜 수 있는 힘도 튼튼해졌어요. 학교에서 어떠한 조치를 취한다 해도 그에 대한 면역력이 커졌죠. 어떤 면으로는 ‘내가 지레 포기할 거라 생각하고, 나를 얕잡아본다’는 느낌도 있었어요. 그래서 더 포기하기 싫었어요. 어떻게든 인내하고, 참아내서 꼭 하나님의 정의를 이뤄내겠다는 각오로 버텼어요.

아마 이 시간에도, 저와 똑같은 마음으로 학교나 직장 혹은 가정에서 신앙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그분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고, 그 곁을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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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심 패소 후 무척 아쉬워하던 지만 씨의 표정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소할 거라 믿었습니까?
- 100% 확신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지는 건 오히려 더 이해가 안됐어요. 법에 무지해서 그런지, 저는 분명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웃음)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어느 누구도, 특히 법조인들조차 “이건 이기기 어려운 싸움”이라고 하셨다고 해요. 항소할 때 신명철 변호사님이 제게 “승소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네가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겠냐”고 물으셨어요. 솔직히 그 당시 저의 선택지는 둘 중 하나였어요. 어렵더라도 하나님의 길로 가든지, 아니면 안식일을 포기하고 학교로 돌아가든지.

저는 갈 곳이 없었어요. 그래서 ‘이거 하나 붙잡고 간다’는 생각으로 항소를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종교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에서 왜 내가 져야 하지?’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그래서 오히려 희망이 생겼어요.

나중에 듣고 보니까 그게 생각처럼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더라고요. 그래서 더욱 하나님께서 이 재판에 함께하셨다는 확신을 갖게 됐죠. 이게 어느 한 사람이 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셨기에 가능했다는 분명한 체험을 한 거 같아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어떠한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오로지 인내하고 기다리는 것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아시니, 하나님께서 결과를 책임져 달라고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그것이 승소이면 개인적으로 더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또 다른 길을 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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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면에서 그런 확신이 들었나요? 특별히 용기가 된 말씀이나 찬미, 기도의 음성이 있었습니까?
- 물론 제 부족한 믿음 탓에 중간중간 인간적인 두려움이 올라와서 걱정한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본인 일처럼 걱정해주시고 도와주시는 강기훈 선생님, 신명철 변호사님, 그 외에도 경제적으로 후원해주시는 성도님들, 전국에서 기도해주신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 중에서도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이사야 41:10)는 말씀이 큰 용기가 되었습니다. 저를 붙들어 주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제 상황과 딱 맞는 거 같아 위로가 되었습니다.

저를 오른손으로 붙잡아주신다는 것 자체가 나의 삶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약속이라는 생각으로 다가갔던 것 같아요. 힘겨운 상황을 버텨내느라 버거웠지만, 그래도 그런 상황에서도 말씀을 통해 많은 위로와 용기를 얻었습니다.  

▲ 이 일을 통해 어떤 교훈을 얻었습니까?
- 매순간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자는 교훈이 가장 커요. 주님께 간구하고 그분을 끝까지 붙잡아야 한다는 걸 배웠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상을 주신다’는 히브리서의 말씀처럼 여호와를 끝까지 의지하고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의 뜻을 두고 다함께 기도하며 하나님께 울부짖는다면 그 기도는 분명히 응답해주신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새기게 됐어요. 포기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떠한 길을 준비해주시는지 끝까지 찾고 연구하고 실행해야 한다는 것 또한 배웠습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저는 신앙이 나약해요. 형식적으로 기도하는 일도 많았고요. 말씀연구에 대한 관심도 크지 않았고, 성경지식도 많이 부족했죠. 고백컨대, 기복적인 신앙도 많았어요. 그런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이제야 진정으로 저 자신의 하나님을 만났다고 여겨져요. 아마 ‘하나님을 만졌다’는 표현이 적절할 거예요. 이젠 누구에게라도 살아계신 그분의 존재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News_9050_file3_v.png이런 경험을 해서인지 요즘은 말씀에 관한 관심이 부쩍 늘었어요. 오히려 부족함을 많이 느끼죠. 개인적으로 성경을 더 많이 연구하고,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단순히 감사하는 수준을 넘어 이제는 일상의 사소한 습관이라도 신앙적으로 정립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무엇보다 품성에 변화가 일어났으면 좋겠어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라, 저 스스로의 신앙을 발전시키고 예수님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길 바라요. 하나님께서 제 삶을 주관해 주시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버님께서도 이 일을 통해 깨달은 바가 있으실 것 같습니다.(한기태)
- 고민하고 힘겨워 하는 아들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가슴이 찢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저의 옛 모습을 돌이켜보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 아들에게 제가 안식일 문제로 직장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습니다.

사실 제가 정말 가고 싶었던 곳이 H 그룹 연구소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꿈에 그리던 그 기업의 입사시험에 합격한 것입니다. 당시 인사부장에게 전화가 왔는데, 제가 “토요일에는 근무할 수 없으니, 안식일을 보장해 달라. 그렇지 않으면 출근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일주일 후에 연락을 주겠다고 하더니 결국 어려울 것 같다면서 합격을 취소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정말 가고 싶었던 곳을 안식일 성수를 위해 포기했습니다.

그 전에는 한 유명 제과회사에 입사했다가 3개월 만에 뛰쳐나온 경험도 있습니다. 그러고 안식일을 지킬 수 있는 학교에서 근무했는데, 월급은 1/5 수준으로 줄었지만, 마음은 너무 행복했습니다. 학교에서 예배를 드리고, 마음껏 찬양하고, 사랑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훨씬 더 가치 있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뒤돌아보니 제가 교장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제 지나온 삶을 비춰볼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께 충성하는 자를 절대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에게 결단코 손해를 주시지 않습니다. 조금만 참으면 되는데, 인간이 그걸 못 참아서 쓰러질 뿐입니다. 끝까지 참고 견디면 놀라운 축복과 보상을 해 주십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재림교인이 된 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어요. 아마 제가 일반 기업에 계속 다녔더라면 교회에 남아 있지 않았을 겁니다. 저희 가족은 이번에 재림성도의 뜨거운 사랑을 절절하게 체험했습니다. 국내외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분들이 격려해 주시고, 용기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흔들리지 않고, 버틸 수 있었습니다.

다만, 바라기는 안식일을 지켜야 하지만 여러 가지 각기 다른 사정으로 그러지 못하는 분들을 비난하지 않길 바랍니다. 그런 분들을 오히려 더 많이 격려해야 합니다. 더 따뜻하게 감싸 안고, 끌어줘야 합니다. 마음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한 형제가 되어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도와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늦은 비 성령이 더 빨리 임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다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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