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포예배소 박제호 집사 ‘태풍에 무너진 보금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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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kbtlove@kuc.or.kr
입력 2019.10.08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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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 ... 막막한 복구 작업에 눈 앞이 캄캄
지난 2일 밤 8시40분쯤이었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폭우가 쏟아졌다. 아내 이명녀 집사는 “뭔가 마음이 불안하다”며 빨리 집 밖으로 나가자고 재촉했다. 남편 박 집사는 “비가 억수 같이 내리는데 이 시간에 어딜 가느냐”며 안심시켰다.
그러나 이 집사는 한사코 “느낌이 심상찮다. 어디론가 몸을 피하는 게 좋겠다”며 성화였다. 급기야 혼자서 이불을 두 채나 쌌다. 곧 노부부는 중학교 1학년에 다니는 어린 손자와 함께 비바람을 뚫고, 동네어귀 마을회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잠시 뒤, 남편은 집에 두고 온 물건을 가지러 갔다 오겠다며 어두운 길을 나섰다. 방에 들어가 주섬주섬 가재도구를 챙기는데 갑자기 육감적으로 무언가 이상한 낌새가 들었다. 박 집사는 재빨리 방을 튀어 나와 툇마루에서 우비를 챙겨 입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꽝!’하는 굉음과 함께 불과 30초 전까지 자신이 머물러 있던 방으로 나무와 토사가 밀려들었다. 산사태가 난 것이다. 놀란 박 집사는 신발도 신지 않은 채 황급히 마당으로 뛰쳐나갔다. 조금만 지체했더라도 목숨을 잃을 뻔한 아찔한 상황이었다. 온 몸의 힘이 쭉 빠졌다. 순식간에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 그의 입에서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이명녀 집사는 “이 마을에 산지 40년이 넘는다. 그동안 숱한 태풍도 겪고, 비피해도 있었지만 이번 같은 난리는 처음이다. 이전까지는 아무리 강력한 태풍이 불어도 마음이 편안했는데, 이번엔 왠지 달랐다. 하마터면 큰일을 당할 뻔 했다”며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다. 부부는 그날의 예감이 ‘피하라’는 성령의 음성이었다고 믿는다.
하나님의 은혜로 목숨은 지켰지만, 이들 앞에 놓인 현실은 막막하다. 집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은 게 불행 중 다행이라면서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눈앞이 캄캄하다.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세간은커녕 변변한 옷가지 하나 챙겨 나오지 못했다. 학생인 손자는 책과 학용품, 교복, 컴퓨터 등 학업에 필요한 모든 게 진흙에 파묻혀 버렸다.
이 마을에 거주하는 18가구의 주민 가운데 가옥이 매몰되는 피해를 당한 건 이들이 유일하다.
5일 안식일 오후, 박 집사 내외가 출석하는 영남합회 후포예배소 성도들의 안내로 현장을 찾았다. 가파른 경사길을 올라 피해 가옥을 바라보는 순간, 너무 심각해 한동안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집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던 뒷산의 토사가 무너지며 주택이 폭격을 맞은 듯 초토화됐다. 한눈에 봐도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언제 폭삭하고 주저앉을지 모를 만큼 위태로웠다.
목숨을 건진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흙투성이가 돼버린 집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만큼 처참했다. 다시 폭우가 쏟아지면 산사태가 이어질지도 몰라 더욱 불안하다. 자칫 2차 붕괴가 일어날 위험성이 있어 집안으로는 한 발자국도 들어가지 못한다. 제 모습을 되찾으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려야 할 것 같았다. 아니, 진흙과 나뭇가지 그리고 살림살이가 뒤죽박죽 엉킨 잔해를 치우는 것보다 차라리 새 집을 짓는 편이 더 빠르고 편해 보였다.
여기에 6000평 가까운 논이 인근 하천의 범람으로 한순간에 모래밭이 돼 버렸다. 그는 “벼가 모두 쓰러져 하나도 수확할 수 없게 됐다. 사람의 손으로는 도저히 복구할 수 없는 지경이다. 모래를 빼내도 다시 농사를 지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직 경황이 없어 재산피해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게 계산도 못했다”며 눈물을 삼켰다.
하루아침에 소중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박 집사 부부는 요즘 마을회관에서 한뎃잠을 자고 있다. 고령의 노부부에겐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이제 날씨도 점점 추워지는데 올 겨울을 어떻게 나야할지 기약이 없다. 이웃들이 간간이 밑반찬이라도 갖다 줘 당장의 끼니는 해결할 수 있지만, 잠자리가 불편해 몸이 축나는 느낌이다.
게다가 언제까지 이 생활을 계속해야 할지 몰라 더욱 답답하다. 피해자가 많지 않기 때문에 복구지원이나 자원봉사자의 도움도 거의 없다. 소식을 듣고 자식들이 한달음에 달려왔지만,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 외엔 달리 손을 쓸 수 있는 게 없었다. 복구를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뾰족한 대책이 없다.
주말 사이, 공무원들이 찾아와 상황을 점검하고 자료를 조사해 갔다. 그러나 언제 얼마나 지원해 줄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일단은 기다려보라는 말만 되풀이 했을 뿐이다. 당국이 어떤 지원책을 내놓을지 당분간은 답을 기다려야 한다.
형체만 덩그러니 남은 정든 보금자리를 바라보던 두 부부의 눈가에 어느새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남편 박제호 집사는 “솔직히 지금은 사는 게 아니라, 버티는 거”라고 했다. 목소리 끝이 바르르 떨렸다. 그는 “복구 작업은 엄두도 못 낸다. 마을회관에 앞으로 얼마나 더 머물러야 할지도 모르겠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내 이명녀 집사에게 지금 제일 필요한 게 뭐냐고 물었다.
“지금으로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 것도 모르겠고, 어떤 생각도 나지 않아요. 마음이 착잡한 게 이루 말할 수가 없네요. 성도들께서 저희 가족을 위해 기도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거밖에 바라는 게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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