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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홍준의 삼육동 통신] 청춘의 독서⑤ 윤재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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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 김범태 기자 kbtlove@kuc.or.kr 입력 2020.02.13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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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만남 ... 젊음을 풍요롭게 살 지우는 검증된 경험”
윤재영 교수는 “독서는 만남”이라고 정의하며, 젊음을 풍요롭게 살 지우는 검증된 경험이라고 의미를 풀었다.
삼육대학교 홍보팀은 인터뷰 기획 <청춘의 독서>를 연재한다. 삼육대 교수들이 청춘 시절 품었던 고민과 의문, 희망 혹은 사랑 같은 것들을 ‘독서’라는 화두로 풀어보는 인터뷰 코너다.

코너 이름인 <청춘의 독서>는 유시민 작가의 동명 저작에서 따왔다. 하지만 기획 의도는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p.141)는 문장에 보다 가깝다.

청춘은 느닷없이 지나가 버렸지만, 저들의 인생에 여전히 깊고 뚜렷한 흔적으로 남아있는 ‘책’에 관해 묻는다. 그리고 그 대답을 함께 나눈다.

이 대화가 삶의 갈림길에 선 삼육동의 청춘들뿐 아니라, <재림마을> 가족에게도 유의미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라 여겨 해당 기사를 여기 공유한다. - 편집자 주 -  


▲ 교수님께 독서란 어떤 의미인가요?
- ‘만남’입니다. 이미 상당히 검증된 사상이나 생각을 가지고 있는 어떤 인격과의 만남이 제게는 독서입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갔는지,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러한 의문에 대한 해답은 그 일을 가장 잘 해냈던 사람에게 묻는 것입니다. 이미 이 땅에 없는 사람의 지혜나 생각을 알 수 없으니, 그들의 책을 읽는 방법밖에는 없는 것이지요. 그러한 만남을 원한다면 독서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 청춘은 자아형성의 시기이기도 합니다. 청춘 시절 어떤 책에 영향을 받으셨나요?
- 위인전을 유독 많이 읽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많은 사람이 알고 존경하는 슈바이처와 관련한 책을 특히 많이 읽었습니다. 슈바이처의 위인전을 읽으면서 어린 나이에 삶에 대해 상당히 많은 가르침을 받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전공과 진로를 선택하는 데 있어 큰 영향을 받은 인물입니다.

슈바이처의 대표적인 저술로 잘 알려진 <나의 생애와 사상>뿐만 아니라, <슈바이처의 유산>이라는 책도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미국 재벌가의 상속자였던 윌리엄 래리머 멜런 주니어는 슈바이처에게 영향을 받아 서른일곱 나이에 의대에 들어가고, 평생 아프리카에서 의료봉사에 헌신합니다. 그가 슈바이처와 주고받은 편지를 모은 서간집입니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할 때는 제인 애덤스의 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헐하우스(Hull House)’라는 복지관을 설립하고 매우 진보적이고 변혁적인 사회복지 실천 방법들을 제시합니다. 도시 빈민층에게 일방적으로 시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살면서 평등하고 상호 호혜적인 관계를 형성합니다. 애덤스의 사상은 나중에 세계평화운동으로 확장됐고 미국 여성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습니다.

국내에는 <헐하우스에서 20년>이 애덤스의 책 중에는 유일하게 번역 출간돼 있습니다. 해외 서적은 여러 권 소장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라는 그림 동화책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제인 애덤스의 삶과 업적이 그림으로 잘 나와 있어서 수업시간에 활용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마음속으로 사숙(私淑)하는 위인들의 책은 신간이 나올 때마다 자연스럽게 구매해서 읽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슈바이처와 제인 애덤스 관련 책은 모두 소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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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상서나 인물에 대한 책을 많이 읽으신 것 같습니다. 왜 그런 책에 끌리신 걸까요?
-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몰라서? 지금도 제가 맞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웃음) 위대한 선배들의 삶은 그의 사상과 더불어 우리에게 의미와 지혜를 줍니다.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그 인물의 삶 속에서 어떻게 체화되고 실현되었는지 하는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대학생 때 강준만 교수의 <인물과 사상> 시리즈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흥미를 느낄 수밖에 없는 제목이었지요.(웃음) 정치·사회 현안에 대한 비평과 함께 당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인물들을 분석한 월간지였는데, 가장 흥미롭게 많이 읽었던 책입니다. 창간호부터 22호까지는 지금도 소장하고 있습니다.

▲ 사회복지의 여러 분야 중 특별히 장애인 운동에 관심을 두고 활발히 활동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계기로 장애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 단순합니다. 친구 중에 장애인이 많았는데 그들을 따라다니면서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야학운동을 하고, 장애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친구들이었습니다. 그전에는 장애보다는 사회적 규범에 의해 낙인이 찍힌 사람들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가령 기지촌 여성이랄지. 하지만 그것은 머리로 관심을 가진 부분이었고, 결국 주변에 계속 형성되는 사람들이 장애인이었기에 발을 들여놓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게 됐습니다.

2000년대 초 ‘자립생활운동’이라는 활동을 했습니다. 기존에는 장애인 문제가 장애인 당사자에 내재해 있다고 생각했었죠. 장애인이 재활하고 교육과 훈련을 받아서 사회에 적응해야 한다는 개념이었습니다. 그런데 자립생활운동은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운동이고 당시 국내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는데, 20년이 지난 지금은 관련 센터가 200여 개가 생겼고 국가 정책에도 많이 반영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때 같이 활동했던 운동가들과 여러 연구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 사회복지학자로서 혹은 실천가로서 최근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 요즘은 신체장애인보다 인지적·지적 발달장애인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치매 노인, 의사소통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발달장애인, 인지적 능력이 전혀 없어서 우리가 이성적인 존재라고 평가하지 않는 사람들이 주체적으로 우리 사회 한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방법은 뭘까, 이게 가장 큰 고민입니다.

많은 지적 장애인이 지역사회로부터 배제돼 시설에 들어가 살고 있습니다. 그런 시설을 없애자는 것이 요즘 장애인계의 가장 큰 화두입니다. 국가에서는 이미 장애인을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돌보는 ‘커뮤니티 케어’를 확대하겠다고 선언을 했지만, 이러한 커뮤니티 케어를 뛰어넘는 ‘커뮤니티 리빙’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케어’는 그 주도성이 제공하는 쪽에 있지만, ‘리빙’은 장애인을 주체로 세우고 우리 사회의 한 시민으로 초청하는 개념이지요.

케어는 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사회적 약자가 의존적으로 존재할 때 이를 제도와 공공자금을 통해 해결한다는 것은 어느 선에 가면 불가능해질 겁니다. 장애인 스스로 주도적으로 뭔가를 해나갈 수 있는 공동체가 발현돼야 한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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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님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 능력이 뛰어나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교수님처럼 사회적 소수자나 약자를 봤을 때 마음과 몸이 움직여질 만큼 감수성이 예민하지 못합니다. 누구나 슈바이처나 제인 애덤스 같은 삶을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더구나 요즘처럼 갑질과 막말, 차별, 혐오가 만연한 시대에 교수님의 말씀이 일반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요? 질문이 너무 냉소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개인적으로 제가 엄청난 공감 능력이 있다거나, 헌신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주변 사람과 제가 속한 사회의 한계를 보면서 이를 해결할 방법은 뭐가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사회복지를 시작했고, 그것이 우연히 연결돼서 장애인 문제까지 이어진 겁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사회적 약자를 다시 보지 않으면 앞으로 우리의 존엄성을 우리 스스로가 지키기 어려워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제 나이가 80이 되는 2050년 정도가 되면 우리나라에 65세 이상 인구가 38%가 됩니다. 지금은 15% 정도인데, 배가 훨씬 넘는 인구가 노인이나 사회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분들이 되는 거죠.

그들의 의존을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자립, 독립, 어떤 남성적인 성취, 이런 것에 가치를 부여하고 지향했다면, 앞으로는 의존, 관계, 돌봄 이런 것에 가치를 두지 않으면 우리가 나이 들어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상황에서 전혀 우리 삶의 존엄성을 보장받을 수 없는 상태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의존’이라는 것이 이전에는 예외적인 현상이었지만, 이제는 ‘독립’보다 훨씬 더 보편적인 상황이 되는 거죠.

어쩌면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절대적 의존 속에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돌봄이 없었다면 우리는 태어나지도 자라지도 이렇게 살아 있을 수도 없습니다. 죽을 때도 우리는 철저히 의존적인 존재로 죽기에 오히려 의존이라는 조건은 우리 인간에게 익숙하고 굉장히 보편적인 경험이라는 것이죠.

이처럼 우리 속에 본능적으로 흐르고 있는 돌봄, 다른 사람을 돌보려 하는 본능이 우리 사회에서 깨우쳐지지 않으면 향후 엄청나게 많은 돌봄이 필요하게 될 현실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돌봄이라는 것을 어떤 ‘좋은 일’ 혹은 ‘선한 일’ 같은 막연한 개념으로 접근하기보다, 머리로 이해해야 하는 부분도 상당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닥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라도 우리의 공감 능력은 필수로 배양해야 할 과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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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책 질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앞서 독서는 교수님께 ‘만남’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시대의 청춘들이 독서를 통해 어떤 만남을 갖길 바라시나요?
- 가치 혼란의 시대입니다. 워낙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고 미래는 불확실합니다. 이럴 때 검증된 누군가, 신뢰할만한 누군가를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큰 특권입니다.

3~4년 전 한 남학생이 연구실로 찾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 건장한 친구가 엉엉 울기 시작했습니다. 한참 있다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봤더니 자기 엄마가 친엄마가 아니라는 것을 어제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냥 이 방에 들어오고 싶었고, 그냥 자기는 눈물이 나와서 울었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실질적으로 독서라는 것은 그런 대상자를 찾아가는 경험입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로 고민이 많고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을 때 주변에 믿을만한 어른이나 동료가 있으면 찾아가서 이야기하듯이, 우리 주위에 존재하지 않고 이미 선대에 살았던 사람을 찾아가는 방법은 책을 통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여러분의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독서는 젊은 시절을 살지우고 풍요롭게 하는 경험입니다. 특히 고전, 이미 수백 년 동안 검증된 인물, 그리고 그의 사상을 접하는 것은 청춘들에게 가장 절실한 일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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