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혜의 Interview-e] ‘패스파인더와 함께’ 김성관 장로, 김용경 집사 부부
“앞으로 25년만 더, 50년 채울 생각입니다”
묘목을 심지 않으면 거목을 기대할 수 없듯 교회의 미래가 튼튼하길 바란다면 어린이와 학생, 청년 사역에 관심과 애정을 쏟아야 한다. ‘패스파인더’는 어린 아이들의 마음에 씨앗을 심고 물을 주며 교회 안에서 신앙의 뿌리를 건강하게 내리면서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는 필수 사역이다. 서중한합회 별내행복교회를 다니는 김성관 장로는 청년 시절 교회에서 교사로 임명받은 이후 2000년부터 교사, 부대장으로 2년간 봉사한 후 2002년에 지도자급을 수료하고 2003년에 클럽대장으로 봉사를 시작했다. 김용경 집사는 10년이나 먼저 이 사역을 시작했으니 무려 35년째 몸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 부부의 봉사 기간보다 이들이 한 역할이 평범하지 않았다. 김 장로는 교육 자료를 만들고 보급하는 일, 대총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교재를 목회자들에게 번역해 달라 부탁하며 프로그램이 더욱 체계화해 나갔다. 그는 “가장 힘들었던 만큼 보람 있는 일은 제복(상의) 제작을 위해 국내 단체복 공장을 수소문하고 발로 뛰었던 경험이다. 수량이 많지 않고 인지도도 없던 때라 단체의 제복을 선뜻 제작해 주겠다는 곳이 없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방문한 공장에서 ‘해 보자!’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 정말 기뻤다”는 말을 하며 아이처럼 좋아했다.2000년 무렵, 패스파인더 대원은 계속 늘어났지만 제복이 없어서 전국에 보급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임시방편으로 교회별로 북미지회에서 만든 제복과 비슷하게 자체적으로 제작하거나 흰색 티셔츠를 맞춰 입고 활동하기도 했지만 통일감을 주기엔 어려웠다.“지회 청소년부장, 연합회 청소년부장은 다 입고 있는데 지도자들은 정복이 없었어요. 2009년 서중한합회 패스파인더 캠포리에 새롭게 제작된 제복을 입게 됐고, 그때 지도자협회를 조직했습니다. 그해에 미국에서 국제캠포리도 열릴 예정이었고 마달피에서 지도자대회도 열린다고 해서 어렵게 정복을 주문하고 제작해서 맞춰 입고 갔습니다. 서중한합회 지도자 5명이 구색을 갖춘 정복을 입고 나타나니 여러 곳에서 관심을 보였어요”새로운 직업이 생기기라도 한 듯 일이 커졌다. 여러 교회에서 공동구매로 주문하고 발주하며 물건을 받아 집 베란다에 쌓아 놓고 직접 포장하고 발송하는 일을 몇 년간 하게 됐다. 초기에는 물품 대금으로 지불할 자금이 없어서 아내와 상의한 끝에 회사 퇴직금을 중간 정산받았고, 자금이 들어와도 다른 것을 만들기 위해 재투자하며 자금을 순환시켰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주문 온 것을 확인하고 포장하면 새벽 2시였어요. 아내가 다음 날 출근하면서 택배를 발송했죠. 그러다 맞벌이 부부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일이 커져서 연합회 청소년부로 모든 자료를 이관했죠. 그런데 핀(배지)을 직접 디자인하는 일은 계속 했어요. 미국에 가니 우리나라 핀이 인기가 너무 많아서 어찌나 뿌듯하던지요. 지금은 핸드폰 그립톡, 크록스 지비츠까지 디자인하고 제작하고 있어요”우리나라는 패스파인더 역사가 그리 길지 않기 때문에 자료가 많지 않아서 이들이 직접 디자인하고 만든 패치와 핀을 EMS로 보내고 미국에 갈 때도 갖고 갔다. 품목이 점점 다양해지니 이제는 북미지회 패스파인더 역사관 안에 한국관이 따로 마련돼 있다. 브라질처럼 패스파인더 규모가 큰 나라도 갖지 못한 전시관이 마련돼 있으니 가서 볼 때마다 참 뿌듯하다고 한다. 퇴근 후 진행한 인터뷰라 배가 고플 법도 한데 김성관 장로와 기자 앞에 놓인 음식이 식어 가고 있었다. 이미 식사를 마치고 조용히 듣고 있던 김용경 집사가 입을 열었다. “미국에서 열리는 캠포리에 참석한 아이들은 ‘우리나라 핀이 이렇게 인기가 많은데 내가 이런 걸 소유하고 있구나’ 확인하고 패스파인더 대원이라는 것을 자랑스러워해요. 그런 모습을 보면 또 힘이 나고 정말 즐거웠어요”지도자로 봉사하면서 클럽 대원, 지도자들에게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 전하는 것이 떳떳하지 않아 향상급 교재를 대원들과 함께 공부했다고 한다. 기도와 말씀묵상을 더 열심히 하며 신앙도 성장한 것 같아 패스파인더 사역자로 일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는 부부다. 김 장로는 “이 사역은 절대 혼자 할 수 없다. 부부가 함께하고, 자녀와 함께 하는 사역이다. 사역을 할수록 지도자는 성장한다. 패스파인더 행사를 위해 온 교인이 적극 동참하며 후배 지도자들을 격려해 달라”며 성도들의 협조를 구했다. 그런 부모의 모습을 본 딸(김지은)과 아들(김상훈)까지 교회에서는 물론이고 해외 봉사에도 함께 다닐 정도로 부모의 사명이 대를 이어 전해지고 있다. 안산에서 활동할 때는 30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에서 구도자 여섯 가정(15명)이 패스파인더 활동에 참여했다. 5년 정도 그들과 함께 활동했는데 교회 선교부에서 후원받아 그들에게 <가정과 건강>과 <시조> 그리고 <패스파인더 월 안내문>을 발송했고 언젠가부터 그들이 재림교회에 대한 색안경을 벗고 삼육두유를 사먹는다고 말하며 그때 뿌려진 씨앗이 언제 어떻게 열매로 맺힐지 기대된다고 한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최대 목표는 패스파인더 이동식 박물관 운영입니다. 그리고 얼마전에 북미지회에서 열렸던 캠포리에서 50년간 패스파인더 지도자로 봉사한 이들을 위한 특별 핀 수여식이 진행됐다. 현재 서중한 시니어마스터가이드라는 모임의 회원으로 활동 중인데, 후배들을 위해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지원하고 협력할 예정이다. 그래서 50년간 지도자로 봉사한 핀 수여식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 또, 핀 트레이드 문화를 위해 핀 트레이드(핀 교환) 학교를 만들고자 한다. 미래산업의 핵심기술로 자리잡고 있는 드론 분야에서 활동하기 위해 무인동력비행장 4종 교육을 이수했고 지도자도 모집 중이다”라며 패스파인더에 대한 강한 애정과 비전을 드러냈다. 지금까지 해 온 일만큼이나 방대하고 원대한 꿈을 이야기한다. 한국 패스파인더를 위한 헌신에 재림성도 중 한 사람으로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자 “우리는 이 프로그램이 조금 더 선명하고 체계적으로 운영될 수 있게 노력했을 뿐이다. 훨씬 오래 전부터 패스파인더가 정착할 수 있게 헌신한 분들의 보이지 않는 수고야말로 주목받아야 마땅하다”라며 손사레를 치는 부부의 미소가 크리스마스 트리를 감싼 전구보다 밝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