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혜의 Interview-e] 박인환 장로 김차남 집사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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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한반도를 지나며 중부지역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폭우는 국민을 공포와 슬픔으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내 일이 아닌 이상 아무리 큰 사건도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잊히게 마련. 하지만 경북 예천 지역 산사태 사건을 ‘소식’이 아닌 ‘실제 피해’로 경험한 사람들에게 그날의 사고는 ‘과거’가 아닌 ‘현재진행형’이다. 남들처럼 ‘더 나은 미래’는 커녕 ‘그날’ 이전의 평범한 일상이라도 회복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재림신문>이 여전히 그날 재해의 여파 한가운데 머물면서도 하늘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박인환 장로와 김차남 집사 부부를 만났다.
어느새 반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부부는 그때 일을 떠올리면 아직도 목이 멘다. 박 장로가 재림연수원에 기도하러 가고 없던 밤, 홀로 집에서 자다가 변을 당했던 김차남 집사는 지금도 동네에서 ‘천운을 타고난 사람’이라 불린다. 토사가 가슴까지 덮친 상황에서 어떻게 탈출해 나와 이렇게 살아 있는지 다시 한 번 들으면서 ‘하나님이 그를 살리셨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었다.
하룻밤 새 소중한 보금자리를 잃고 오갈 데 없던 부부는 사건 직후 두 달간은 군청에서 지원해 준 펜션에서 생활했고, 이후에는 8평짜리 컨테이너에서 지내고 있다. 지원받을 수 있는 보상금이 전혀 없는 상황이어서 더욱 암담하다.
다행히 전국 각지에서 성도들이 보내 준 성금과 친구들이 수백만 원씩 보내 준 돈이 모였다. 작은 부지를 구입하는데 성공했지만, 집 지을 돈이 있을 리 만무하다. 백방으로 알아본 결과 5000만 원을 지원받을 수 있는 길이 어렵게 열렸다. 하지만 그나마도 9월 20일까지 준공검사를 완료해야만 받을 수 있다. 수중에 당장 몇백만 원도 없는데 무슨 수로 그 날짜에 맞춰 집을 지을지 막막하다.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지만 기자를 보자마자 “성도님들께 고맙다는 인사를 꼭 하고 싶다”는 김차남 집사는 앞선 기사에서 봤던 그 얼굴 그대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얼굴도 모르는 우리를 위해 성도님들이 따뜻한 사랑을 보내주신 덕분에 이렇게 힘을 내서 잘 살고 있다. 옷도 얼마나 많이 보내주셨는지 원래 있던 옷보다 지금 가진 옷이 더 많다. 이것이 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겠냐”고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벌써 반년이나 지났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하나님이 분·초를 쪼개서 살리셨다”고 고백했다.
“아내가 살아 있는데 집이 없어진들 대수인가”라고 말하는 박 장로의 떨림은 슬픔이나 황망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였다. 이 사고를 겪고 나서 ‘이 세상은 내 집이 아니’라는 것을 더욱 뼈저리게 느꼈다.
지인으로부터 전수받은 비법으로 강정을 만들어 팔고 있는 부부는 어떻게든 살길을 인도해 주실 하나님을 믿는다. 고속도로를 빠져나가고도 시골길을 한참 달려 작은 길로, 더 작은 길로 들어가면 ‘예림강정’이라는 스티커간판이 보이는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박 장로는 “내가 비록 어려운 일을 당했지만 쓰러지고 좌절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한다. 하나님을 믿으면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어서 직접 만든 강정 40~50박스를 가끔씩 동네 사람들에게 나누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그가 이처럼 이웃과 소통하려는 이유는 딱 하나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다.
“하나님의 말씀은 옥토에 뿌려져야 잘 심겨서 열매를 맺는데, ‘옥토’는 어느 순간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공을 들이고 필요한 부분을 도와주면 내 진심이 전해지고 그들의 마음이 열려 전하는 말씀이 뿌리내리게 될 것이다”
그의 말에는 수십 년간 선교하며 깨달은 내공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하지만 아무리 계산해도 준공 날짜에 맞춰 집을 지을 정도의 수입은 나올 수가 없어 보이는데 나눔이 웬 말이냐 묻자 그는 빙그레 미소지었다. 마음이 있으면 행동은 자연스럽게 뒤따른다는 뜻이다. 실제로 얼마 전에는 ‘심장병 수술을 해야 하는 파키스탄 소녀 세실라’에 대한 기사를 보고 50만 원을 송금했고, 그 나라 목회자 양성을 위해 예전부터 주기적으로 후원금을 보내고 있다.
젊은 시절 엄청난 액수의 월급을 받고 일한 적도 있지만, 그는 하나님의 사업을 하기로 선택했다. 당시 어린 두 딸을 두고 1000명선교사 1기로 참여했다. 역사적인 1000명선교사 1번이었다. 이후 10년이나 선교사로 살았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가정을 위한 경제활동보다 하나님을 전하는 선교활동이 우선이었고 몇 년 후 다시 해외 선교지로 떠났다.
먹을 것이 전혀 없는 오지에서 고구마 하나를 겨우 얻어 4~5명이 나눠 먹으며 하루를 버티던 때도 있었다. ‘굶는 일을 밥 먹듯’ 하면서 배운 것은 ‘비우고 나누는 일에는 끝이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 이 일을 겪은 것도 내가 가진 것이 너무 많아서 더 비우고 나누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가르침이라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동안에는 강정 판매 수익에서 50%를 하나님께 드렸는데, 집 지을 때까지만 수입의 20%만 드리겠다고 했다”며 겸연쩍게 웃는다. “컨테이너에서 살 수 있는 기간도 정해져 있고 내가 하나님 믿는 사람인 것을 온 동네 사람이 다 알고 있다. 방 한 칸이면 충분히 살지만 오갈 데 없는 사람, 아픈 사람과 더불어 살고 싶은 꿈이 있어서 방 두 칸으로 설계는 마쳤다. 내 진짜 집은 하늘에 있으니, 다른 사람과 더불어 하늘을 사모하며 사는 집을 짓는 것이 유일한 소원”이라 말하는 박 장로를 따라 김 집사는 벌써 집을 짓기라도 한 것처럼 해맑게 웃는다.
“네~ 예림강정입니다”
인터뷰 도중 5만 원짜리 강정 두 박스를 주문받았다. 설탕이나 방부제, 색소 첨가 없이 우리네 전통방식으로 국내산 곡물과 조청을 사용해 옛 맛을 재현한 그의 수제 강정은 이제껏 못 먹어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은 사람은 없다는 입소문이 날 정도로 맛있다. 9월이 다가올 즈음 이 부부의 집을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지어주실까 기대하며 서울로 차를 몰았다. 문의 ☎ 010-7577-3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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