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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바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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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사미디어 등록일 2023.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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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특별한 바구니가 있다. 열면 언제나 내게 행복을 선사한다. 은혜의 바구니다. 나만의 행복 저장소요 값진 보배함이다. 기쁘고 감사한 일이 생길 때, 감격에 겨워 하늘 향해 찬양을 올릴 때 그 순간을 담아 두는 곳간이다. 잊지 않기 위해서다. 자취로 남기기 위해서다. 종종 되새기며 그때로 되돌아가 그 기쁨의 순간에 다시 머물고 싶어서다. 이렇게 차곡차곡 모은 소소한 행복 조각들로 은혜 바구니가 그득히 차오르고 있다. 


은혜의 샘물은 주로 내가 봉사하는 장학회에서 솟는다. 외국에서 온 유학생들을 돕는 단체다. 신앙이 훌륭하고 실력이 뛰어난 인재들이 학업에 몰두하여 세계 일꾼으로 준비되도록 힘껏 돕는다. 아시아와 유럽, 남미, 아프리카 등 세계 각국에서 온 대학생들이 혜택을 받고 있다. 


장학 사업을 하도록 내 등을 떠민 분이 있다. 한 세기도 전에 사신 분이다. 미미 샤펜버그 선교사다. 1907년에 한국에 와서 삼육대학교의 전신인 북한 순안 땅에 의명학교 설립을 돕고 교육에 헌신한 분이다. 처녀의 몸으로 와서 12년간 봉사하고 질병으로 본국으로 돌아가 이듬해 사망하였다. 한국을 위해 순교하신 것이나 다름없다. 현 삼육대학교 캠퍼스 한 모퉁이에 이분의 기념비가 서 있다. 종종 비 앞에서 그녀의 삶을 떠올려 본다. 


이분이 한국으로 오게 된 스토리도 놀랍다. 어느 날 밤에 강 건너편 흰옷 입은 사람들이 손짓하며 도와달라는 꿈을 꾸었다. 다음 날 재림교회 선교본부인 대총회로부터 편지가 왔다. 조선에 선교사로 가라는 내용이었다. 이 나라를 잘 몰라서 도서관으로 달려가서 책을 펴 보니 거기 나오는 인물들이 꿈에 본 사람들처럼 흰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알고 태평양을 건너 멀고 먼 미지의 땅, 조선에 발을 디딘 것이다. 당시 나이 23세였다. 복음의 불모지요 근대 교육이 싹트기 전인 20세기 초에 젊음과 생명을 바친 이런 분들이 계셨기에 오늘날 우리나라는 탄탄한 고등교육 기관을 가진 선진국으로 성장하였다. 이분처럼 고상한 사업에 열정을 쏟을 젊은이들을 키우고자 뜻을 같이하는 자원봉사자들이 모였고, 재활용 가게를 열며 장학회를 운영하게 되었다.


은혜의 바구니에 담긴 스토리 하나를 꺼내 본다. 어느 날 외국인 유학생들이 모이는 교회의 담임목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안타까운 형편에 놓인 학생을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베트남에서 온 유학생 아내가 출산을 했는데 아이 오른쪽 팔에 장애가 있어 치료비로 큰 금액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으나 병원비를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마침 <사랑샵 장학회>에서는 특별 바자회를 계획하고 있었다. 학기가 마쳐 가는데 아직 등록금을 해결하지 못한 학생들이 있어 계속 도움을 요청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목사님의 전화를 받은 후 오전 내내 바자회 광고를 지인들에게 보냈다. 풍성한 기부금과 바자회 수익금이 모이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문자에 함께 실었다. 곧 ‘카톡’ 울림이 왔다. 최근 은퇴하신 목사님 사모님이다. 100만 원의 후원금을 보낸다고 했다. 놀라서 전화를 드렸다. 대답을 듣는데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가끔 알바를 하신다고 했다. 식단을 짜 주는 일인데 한 번에 5만 원이 들어오기도 하고 7만 원을 받기도 한단다. 그 돈은 따로 통장에 모으는데 100만 원이 쌓이면 비운다고 했다. 도움이 필요한 곳으로 보내는 것이다. 마침 바로 전날 100만 원이 모였는데 방금 문자를 받고 곧바로 장학회 통장으로 입금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타이밍을 잘 맞추시다니! 


바자회를 위해서 한 분이 강원도에서 고랭지 배추를 한 트럭 보내 주셨다. 저장 창고를 옮긴다고 카펫을 잔뜩 싣고 온 분, 공장에서 속옷 박스를 보내오는 분 그리고 큰 박스에 김을 꽉 채워서 보내 준 김 공장 사장님도 있었다. 은퇴 교수님 부부가 직접 재배한 들깨로 기름을 짜서 10병이나 가져왔을 때 우리는 환호성을 터뜨렸다. 은혜의 소나기였고 축복의 단비였다. 덕분에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풀이 죽어 있던 학생들이 생기를 얻었다. 라이베리아에서 온 한 학생이 장학금을 받게 된 소식을 듣자 즉시로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감사 기도를 올리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사랑의 전달자가 된 우리 봉사자들은 신이 났다. 


해외에서도 돕는 손길이 줄을 이었다. 개인이 후원하고 단체가 도와주었다. 김치 바자회를 열어서 수익금을 보낸 교회가 있었고, 집 주변의 도토리를 주워서 만든 도토리묵 가루를 팔아서 보내 준 분도 있었다. 매달 아들에게서 받는 용돈을 후원금으로 보내는 고마운 기부자도 있다. 자원하여 장학회를 홍보하며 기금을 모아 주시는 로마린다의 천사 같은 분도 있다. 


최근의 은혜 스토리를 열어 본다. 지난 8월의 일이다. 안식일에 우크라이나에서 온 재림교회 대학의 총장이 교회에서 특별 순서를 하였다. 전쟁 중에 학교에서 일어난 기적 같은 일들을 전해 주었다. 전쟁이 시작된 날, 학교를 비우고 피난을 가야 하는데 학생들과 교직원들에게 마땅한 이동 차량이 없었지만 모두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일곱 번의 폭격을 맞고도 학교 건물이 파손되지 않았으며, 후에 200여 명의 피란민들을 학교가 수용하여 함께 생활하는 동안 매 끼니가 해결되고 안전하게 지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마지막으로 한 문장을 덧붙이는데 마음에 콕 박혔다. “우리는 또 다른 기적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러시아군이 대학을 잠시 점령하는 동안 컴퓨터를 모두 망가뜨려서 새로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3만 불 이상의 비용이 필요하다고 했다. 


오후 내내 그분의 말이 뇌리에 맴돌았다. 3일 후면 본국으로 돌아간다는데 컴퓨터 비용을 모금하여 돕고 싶었다. 간절한 기도로 도움의 손길을 고대하고 있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 염원의 파동이 내 마음을 계속 흔들었다. 잘 아는 분과 의논하였고 우리는 지인들에게 호소문을 보내기 시작했다. 한 분에게서 2만 불을 낸다는 연락이 왔다. 이사를 앞두고 준비한 금액에서 떼어서 보낸다는 감동적인 소식이었다. 숨은 기부에 늘 앞장서는 은퇴 교수님이 큰 금액을 보냈다. 크고 작은 온정이 줄을 이었다. 놀랍게도 하루 만에 필요한 금액이 모였다. 주의 백성이 뜻을 모을 때 하나님은 기적을 만드신다는 것을 다시 한번 체험했다. 전쟁으로 아파하는 이웃을 안아 주는 사랑이었고 연대와 협력의 힘이었다. 세상에 험한 소문들이 많지만 이렇게 따뜻한 마음들이 있어 은혜의 해가 밝게 빛나고 어두운 삶에 희망의 꽃이 핀다. 기부자들은 한결같이 뜻깊은 일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서 오히려 감사하다고 했다. 기부금을 전달했을 때 그분들은 또 하나의 기적이 일어났다며 감격해했다.


어려서 바구니를 들고 다니며 봄나물을 캐고 산나물을 뜯었다. 나풀하게 자란 쑥을 칼로 잘라서 바구니에 소복소복 담곤 했다. 이른 봄에 산에 올라 누리장나무 연한 순을 따고 고사리를 꺾어 와서 엄마에게 칭찬받는 것이 좋았다. 동그란 대바구니는 이렇게 고향과 가족의 추억을 가득 담아 낡아지지 않는 모습으로 마음 한편에서 달랑거리고 있다. 지금은 일상에서 길어 올리는 감사와 은혜의 순간들로 삶의 바구니를 채워 가고 있다.


우리는 모두 생명을 주신 분 앞에서 이 세상에서의 삶을 계산할 때를 맞을 것이다. 시간과 기회와 재능을 어디에 썼는지 그분께 대답해야 한다. 인생 결실의 바구니를 펼쳐 놓을 때가 온다. 나만의 안락과 쾌락을 위해 써 버리는 삶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은 사랑의 열매들로 인생 바구니를 채워 가자. 어릴 적 엄마에게 나물 바구니로 칭찬받았을 때처럼 그분께 “잘하였구나. 착하고 충성된 딸아!”라는 말을 들을 수만 있다면 ‘아~’ 이 땅에서 잠시 겪는 수고의 기억들은 순식간에 날아갈 것이다. 



​권영순 목회학 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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