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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스크럼블 산책
스크럼블 교차로와 하치공 이야기도쿄 시부야의 스크럼블 교차로는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어디로 가는 사람들인지 모를 수많은 사람이 신호등이 녹색불로 바뀔 때마다 네 방향에서 동시에 쏟아져 나오는 장관으로 유명합니다. 영화와 드라마의 단골 촬영지가 된 이곳은 도쿄를 방문한 여행자들이 반드시 들러야 할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교차로 위에서 도쿄의 심장 박동을 느끼고, 주변 고층 건물에서 내려다보며 교차로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은 저 교차로를 건너 어디로 가고자 하는 것일까를 생각해 봅니다. 분명 유명한 교차로 한번 건너기 위해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들은 저 교차로를 건너 어디론가 다시 분명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시부야 스크럼블 교차로에 선 사람들은 각기 다른 목적지로 향하며, 저마다의 꿈과 열정을 품고 스크럼블 교차로를 건너는 것이겠지요. 한편 스크럼블 교차로 한쪽에는 작은 광장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하치공 동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치공은 1920년대에 살았던 충실한 개로 주인이었던 우에노 히데사부로 박사가 퇴근할 때마다 시부야역으로 마중 나갔던 이야기로 유명합니다. 주인이 사망한 뒤에도 하치공은 무려 10여 년 동안 매일같이 역으로 나가 죽은 주인을 기다렸습니다.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하치공의 동상은 사실 두 번째로 세워진 것입니다. 충견 하치공은 자신이 죽기 전에 자신을 기념하는 ‘하치공 동상’의 제막식(1934년 4월)에 참석하였고, 1935년 3월 8일에 죽은 주인을 기다리며 역 앞에서 생을 다하자 수많은 사람이 모여 충견의 장례를 치러 주었습니다. 그러나 1934년에 세워졌던 첫 번째 동상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군수품 제조를 위해 패전 하루 전인 1945년 8월 14일에 용해되어 결국 기관차의 부품이 되었다고 합니다. 시부야 하치공의 이야기는 단순히 한 마리 충성스러운 개의 일화로만 기억하기에는 왠지 모를 아쉬움이 있습니다. 1920~30년대 일본은 전통적 가치와 현대화 사이에서 갈등하던 변화와 격동의 시대였습니다. 하치공이 주인을 기다리던 시부야역은 막 철도가 발전하며 근대 도시로 변모하던 상징적인 장소였습니다. 오늘날 하치공은 단순히 사랑받는 도시의 상징을 넘어 역사의 소용돌이와 급격한 변화 속에서도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것이 가지는 따뜻한 공감력을 잃지 않아야 함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는 존재로 남아 있습니다. 아오야마 공원묘지도쿄 시부야의 스크럼블 교차로에서 약 3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아오야마 묘지에는 하치공의 주인 우에노 히데사부로 박사의 무덤이 있습니다. 그 옆에는 하치공의 무덤도 함께 자리하고 있습니다.아오야마 묘지는 일본 도쿄도 미나토구에 위치한 도립공원 묘지로 1872년에 조성된 일본 최초의 공영 묘지입니다. 이곳은 도심 속의 평화로운 안식처이자 일본의 근현대사가 깃든 공간으로 묘지 중앙을 가로지르는 일차선 도로를 따라 택시들이 지나가고 양옆에는 벚꽃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계절마다 변하는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에 담고자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고 있습니다. 이 공원 묘지에는 210기의 외국인 무덤이 있으며 그중 두 기는 한국인 것입니다. 한 명은 갑신정변의 주역이었던 개혁파 김옥균, 다른 한 명은 일본 육군사관학교 유학생이던 박유굉입니다. 김옥균과 박유굉 그리고 그렌저김옥균은 조선 후기의 개혁가로 조선을 근대화하고자 하는 열정적인 꿈을 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조선 내부의 보수적 반발과 외세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 속에서 실패로 끝나 버리고 맙니다. 그가 시도했던 갑신정변은 단 3일 천하로 끝났고 그는 조국을 떠나 망명객으로, 도망자로 남은 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암살자를 피해 태평양의 작은 섬, 북해도 그리고 도쿄 변두리에서 숨어 지내던 그는 결국 중국에서 암살당했습니다. 그의 시신은 조선으로 운반되어 양화진 나루터에서 능지처참당했습니다. 그의 머리는 효수되었고 나머지 시신은 조선 팔도로 보내져 저잣거리의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의 시신을 거두어 무덤을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당시 사회적 분위기로도 불가능해 보였으나 현재 그의 무덤은 충남 아산시 영인면, 일본 도쿄 아오야마 묘지, 일본 야마나시현 진조지(眞淨寺)라는 절 이렇게 세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흙으로 돌아갈 육신 하나 제대로 남기지 못한 그의 무덤이 3곳이나 된다는 것은 그의 삶이 후대에 전하고자 하는 그 무엇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김옥균의 묘비에는 그의 비범한 재능과 비극적인 삶을 함축한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아, 비상한 재주를 가졌으나 비상한 시대를 만나 비상한 공도 없이 비상한 죽음을 맞이하였다”(嗚呼, 抱非常之才. 遇非常之時, 無非常之功, 有非常之死…). 김옥균의 무덤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박유굉(朴裕宏, 1867~1888년)의 무덤이 있습니다. 그는 일본 육군사관학교에서 유학하던 중 갑신정변 당시 행동대원으로 참여했으나 정변의 실패 후 동료 유학생들이 처형되고 고향의 부친이 구금되는 등 심리적 압박감과 구한말 조국의 정치적 혼란과 강대국의 대립 속에서 깊은 고뇌 끝에 21살의 젊은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무덤 앞에서는 당시 조선 청년들이 느꼈을 시대적 좌절과 무력함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아오야마 묘지의 한 구석에 사후 100여 년 이상을 조용히 자리하고 있는 박유굉과 김옥균의 묘는 근대 조선을 꿈꾸었던 젊은 청년의 부서진 꿈과 비범한 재능을 펼쳤던 개혁가의 흔적을 보여 줍니다.김옥균의 무덤 바로 왼쪽 곁에는 윌리엄 그렌저(1844~1899)라는 미국인 선교사의 무덤이 있습니다. 그는 일본에 파송된 최초의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선교사로 일본 재림교회의 기초를 세운 인물입니다. 1896년에 도일하여 도쿄를 중심으로 선교 활동을 펼쳤던 그는 단 3년간의 사역을 이어 가던 중 병으로 그의 사랑하는 선교지에서 생을 마쳤으며 아오야마 묘지에 묻혔습니다. 그의 헌신은 일본인 구니야 히데 전도사를 통해 이어졌고, 그 복음은 결국 한반도로 전파되었습니다. 오늘날 한반도에 뿌리내린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시작은 그의 사역에서 비롯되었습니다.역사의 스크럼블 교차로도쿄의 아오야마 공원묘지는 단순히 누군가의 삶의 끝을 담은 공간이 아닙니다. 이곳은 다양한 삶의 이야기와 역사의 흐름이 교차하는 스크럼블입니다. 묘비마다 새겨진 이름들은 서로 다른 시대와 배경 속에서도 꿈을 품고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을 담고 있습니다. 김옥균의 개혁의 꿈, 그렌저 선교사의 복음의 헌신 그리고 박유굉의 고뇌와 좌절은 시대와 배경은 달랐지만 모두 자신의 길을 찾고자 치열하게 살았던 증거들입니다.이곳에서 잠들어 있는 이들의 이야기는 과거에서 오늘로, 내일로 이어지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희는 지금 무엇을 꿈꾸며 어떤 열정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너희의 삶은 후대에 어떤 흔적으로 기억될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오늘 우리의 삶은 언젠가 긍정이든 부정이든 누군가의 길을 밝히는 무언의 역사가 될 것이다.” - 남형우 일본에서 17년째 사역 중인 선교사 -
가정과 건강
용서는 나를 위한 선물
새해를 맞이하면 항상 지인들에게 감사와 행복을 기원하는 전화나 카톡을 보낸다. 반세기를 살아온 인생의 인연 중 고마운 사람들은 따스한 마음의 온기를 느끼게 하고, 마음을 콕콕 아프게 한 사람들은 고개를 저으며 그 기억들을 지워 버리려 한다. 또한 가슴 아픈 사연으로 만났지만 인생의 스승이 되어 준 분들을 떠올리면 그분들이 가르쳐 주신 인생의 정석을 펼쳐 내 마음의 사용법을 다시금 수정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용서가 죽기보다 힘든 일이지만 우리에게 행복의 선물이 될 수 있음을 실제적으로 보여 주신 용서의 정석 같은 분이 있다. 그분을 생각할 때마다 누군가를 향한 미움으로 혼탁했던 나의 마음이 조금은 맑아지게 된다.어느 날 한 중년 남자분이 자기 어머니를 만나 줄 수 있는지 문의해 왔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분노로 식사도 하지 않고, 누워만 계셔서 돌아가실 것 같아 걱정이 된다는 것이었다. 아들의 간절한 요청에 따라 어머니를 만나기로 하였고, 상담실로 들어오는 그분을 본 순간, 마치 높다란 겨울 산꼭대기에서 거친 바람에 시달려 앙상해진 나무가 떠올랐다. 그분에게 어떤 말을 듣지 않아도 마음속에 얼어붙은 한 많은 사연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분은 갑작스럽게 아들에 의해 낯선 상담실에 온 것에 분노하셨고, 아무 말도 없이 1시간 넘게 자리를 지키다 돌아가셨다. 아들의 팔에 의지하여 상담실을 나가는 그분의 뒷모습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아 불안하였다. 그분을 그냥 보내 드린 것에 대한 내적 갈등을 하고 있을 때 아드님이 다시 찾아왔다. 그는 어린 시절 집에서 아버지의 폭력과 욕설 때문에 매일이 지옥이었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자신은 상담을 통해 마음의 평안을 찾았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그 고통 가운데 사시는 것 같아 슬프고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얼마 남지 않은 여생 동안 어머니가 조금이라도 평안하고 행복하셨으면 좋겠다며 눈물로 호소했다. 아드님의 눈물 어린 고백은 용기 없던 내 마음을 움직였고, 나는 아드님과 함께 그분의 집을 방문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분은 낯선 상담자의 방문을 달가워하지 않으셨지만 자신의 매몰찬 반응에도 찾아온 나를 거부하지는 않으셨다. 매주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찾아가 인사드리던 어느 날, 그분이 직접 상담실을 찾아오겠다고 말씀하셨다. 이제는 낯설지 않은 상담자를 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으시더니 그동안 자신이 겪었던 충격적인 일들을 쉴 새 없이 털어놓기 시작하셨다. 꽁꽁 얼어붙은 기억들을 하나씩 풀어놓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져 숨을 고르기 위해 가슴을 치며 눈물과 함께 토해 내듯이 고통스러운 이야기들을 쏟아 내셨다. 그리고 남편에게 무기력하게 당했던 설움과 자신의 무능력함으로 자녀들을 지켜 주지 못한 죄책감에 죽고 싶다고 하셨다. 이제는 죽어서도 복수할 수 없는 배우자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악순환을 이루고 몸과 마음이 지쳐 있는 그분에게 공감하며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나는 한 가지 부탁을 드렸다. 10분 동안 빈 의자를 향하여 온 힘을 다해 막대기를 휘둘러 보라고 요청하자 그분은 나를 의아하게 쳐다보시다가 막대기를 힘껏 휘두르기 시작하셨다. 하지만 체력이 약하셔서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막대기를 내려놓으셨다. 그 후 나는 그분께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한 미움과 분노는 용서하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던지기 위해 뜨거운 숯을 움켜쥐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라는 한 불자의 말을 들려 드렸다. 지금은 이 땅에 존재하지도 않은 남편을 향해 하루 종일 미움과 분노 속에 계시는 모습이 던질 대상이 사라져 뜨거운 숯을 던지지 못하고 스스로를 아프게 하시는 것 같아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돌아가신 배우자에 대한 분노가 그분의 심장병을 악화시키고, 남편의 폭력 속에서도 온몸을 던져 끝까지 지켜 낸 자녀들과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을 방해하는 것 같아 걱정이 된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그분은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긴 비극적인 세월을 견뎌 온 마음의 힘을 돌아보며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나에게 되물으셨다.그분과 나는 매주 만날 때마다 몸의 긴장과 경직을 풀기 위한 이완 훈련을 진행하고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과 감정, 생각을 분석하며 상처받고 힘들어했던 자신을 위로하고 공감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금의 관점에서 최선을 다해 버티고 견뎌 낸 자신의 긍정적인 순간과 선택을 떠올리며 그 장면들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도 적어 보았다. 정말 미운 배우자였지만 그의 비참한 인생사를 알기에 술과 폭력으로 자기 자신과 가족을 괴롭혀야 했던 남편을 불쌍히 여기며 용서하는 편지도 써 보았다. 다시금 배우자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올라올 때는 스스로 몸과 마음을 지키고 가족 및 지인의 도움을 요청하는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였다.마지막으로 남은 생애 동안 그분이 바라던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고통 속에서 함께 견디며 살아온 자녀들과의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 갈 수 있는 희망 리스트도 작성하였다. 3개월 뒤 추수 상담에서 아드님과 다시 만난 그분은 자신만의 용서의 정석에 따라 꾸준히 마음 훈련과 수영을 하면서 더욱 건강하고 행복한 얼굴을 하고 계셨다. ‘용서는 나를 위한 선물’이라는 심리학의 정석을 몸소 보여 주신 그분은 미워하는 이들을 향한 복수로 자신의 삶과 건강을 해치지 않고 악연으로 엮어 놓은 끈을 놓음으로 자유롭고 행복한 삶에 집중하는 것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셨다. 새해를 맞아 그분처럼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인연으로 행복한 삶의 선물을 받는 한 해가 되기를 희망하며 새롭게 시작해 본다.- 김세미 기독교 상담학 박사 -
교회지남
세 가지 주장
우리의 종말론을 점검해 보며
최근 어느 기사에서 우리 교회의 종말론에 대해 세 가지 이의를 제기했다. 첫째, 마지막 때 로마 교황의 역할에 대한 우리의 확인은 틀렸고 둘째, 가톨릭교회에는 선한 사람이 많으며 셋째, 우리의 종말론은 실패했다는 것이다.먼저는 첫째 주장에 대해서다. 다니엘 2장에 의하면 네 왕국 바벨론(금), 메대-바사(은), 그리스(놋쇠), 로마(철, 이후 철과 진흙)의 출몰은 주께서 “결코 멸망하지 않는 한 왕국”(단 2:44, 한글킹)을 세우실 때로 이어진다.다니엘 7장에서 네 왕국 바벨론(사자), 메대-바사(곰), 그리스(표범), 로마(용, 이후 그 머리 위의 작은 뿔)의 출몰은 “영원한 나라”(단 7:27)가 세워질 때로 이어진다.다니엘 8장에서 세 왕국 메대-바사(숫양), 그리스(숫염소), 로마(작은 뿔)의 출몰은 “때의 끝”(단 8:17, 19) 즉 작은 뿔이 “사람의 손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깨지”(단 8:25)는 때로 이어진다.위의 세 장에서 고대 그리스 이후에 등장해 마지막까지 존속하는 세력은 누구인가? 오로지 로마뿐이며 그 외에는 전혀 없다(이교 로마, 이후에는 교황 로마).그 동일 세력인 로마가 요한계시록 13장에 재등장하는데 여기서 그 모습은 다니엘 2장과 7장에서 끌어온 이미지, 특별히 다니엘 7장의 작은 뿔인 교황 로마이다. 비록 “치명적인 상처”(계 13:3, 한글킹)를 입기는 하지만 교황 로마는 치유될 뿐 아니라 “짐승의 우상”(15절)을 둘러싼 박해의 중심이 된다. 사실 로마는 짐승이며 다니엘 2, 7, 8장에 따르면 마지막까지 존재한다.둘째 주장에 대해서는 한번 상상해 보자. 만약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대총회에서 재림교회만이 그리스도의 모든 은덕을 소유하고 있으며 재림교회를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렇다면 그것은 아주 넓은 의미에서 로마교 조직이다. 우리가 믿으면 그리스도께 직접 받을 수 있는 것이 로마교의 신학에 따르면 오로지 로마 교회 기관을 통해서만 제공된다. 적그리스도란 단지 ‘그리스도를 저항하는’ 존재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존재이며 교황 로마에 딱 들어맞는 묘사다. 개신교 종교 개혁가들이 교황 로마를 한사코 ‘적그리스도’라고 칭한 이유가 그 때문이다. 여러 오류 가운데서 우리가 특히 반대하는 것은 로마의 신성 모독적인 ‘구원’ 시스템이다. 로마 교회에 선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예언과 상관없는 사항이다.마지막으로 우리 교회의 종말론은 실패했는가? 만약 예수께서 재림하셨는데도 그에 앞서 일요일 박해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 주장이 맞을 수도 있겠다. 그렇지 않은 이상 무슨 실패인가? 일요일 박해가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 이스라엘 자손은 이집트에서 430년을 보냈다. 과거에 교황이 패권을 쥐었던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단 7:25)라는 기간은 1,260년에 달했다. 다니엘의 메시아 예언은 490년 뒤의 일이었다. 다니엘 8장 14절에서는 2,300년을 내다봤다. 우리가 지금까지 170년을 기다렸다고 해서 실패라고 보기는 매우 어렵다. 더군다나 그 끝에 시간적 단서를 붙이지 않는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다. 재림 신자들은 예수께서 더 일찍 재림하실 걸로 예상하지 않았느냐고? 그게 어떻다는 말인가? 바울은 아직도 그리스도가 재림하지 않았다며 일찍부터 낙심에 빠진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히브리서를 썼다. 그런데 그게 이미 1,900년 전의 일이다. 무슨 의문이 얼마나 많이 남아 있든 우리의 종말론에 대해 의심할 이유가 전혀 없다. 마지막 때는 올 것이다. 아마도 우리가 준비되기 전에 올 것이다. - 클리퍼드 골드스타인 대총회 안식일학교 교과 편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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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 교육: 그 절실한 시대적 과제
들어가면서2013년에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이 한 착한 여학생에게 종종 마실 물을 부탁했다. 학생은 밝은 표정으로 물을 떠 왔고 선생님은 그 물로 목을 축이며 수업을 했다. 어느 날 선생님은 한 학부모로부터 그 물이 화장실 양변기 물이라는 말을 듣게..
가정과 건강
작성일
2025-01-08
88
묻지마 채식
하루 종일 과일만 먹으면 일어나는 일최근에 속이 좀 좋지 않아서 금식을 했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완전한 금식이라기보다는 과일만 먹으면서 며칠을 보냈다. 과일은 위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소화가 쉽기 때문에 충분히 먹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 ..
가정과 건강
작성일
2024-12-31
87
조류 탐사하기 딱 좋은 계절
며칠 전 도시에서 대학생들이 과학관을 찾아왔다. 함께 산과 강가로 다니며 탐조를 하였는데 흔히 볼 수 있는 왜가리와 백로를 보고도 얼마나 기뻐하는지 함께한 시간이 큰 보람으로 다가왔다. 침울해하던 학생들이 생글생글한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보며 새를 보는 것이 이렇게 사..
가정과 건강
작성일
2024-12-23
86
갈대, 억새
많은 분이 갈대와 억새를 구별하기 힘들어하시는 것처럼 저도 처음 농사를 지을 때 이 둘을 구별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던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갈대와 억새를 정확하게 구별하는 방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보통 조경에서 갈대는 수변에서 장관을 연출하거나 수질 정화..
가정과 건강
작성일
2024-12-16
85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 놓치면 안 되는 것들
나는 종종 해안 도로를 산책하면서 많은 시민이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는 모습을 본다. 이제는 이런 광경이 익숙해졌고 우리 주변에서 반려동물들을 만나게 되는 일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2023년 통계에 따르면 현재 반려동물을 기르는 인구가 천만을 넘어 천사백만에 이른다고 ..
가정과 건강
작성일
2024-12-09
84
봄
평화롭던 우리 가정에 늦둥이 딸이 생겼다. 늦둥이라 그런지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너무도 예쁘고 사랑스럽다. 우리 딸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곱슬머리이다. 아빠도 곱슬, 엄마도 곱슬이라 아기는 곱슬이 곱빼기가 된 것 같다. 잘 모르시는 분들은 “파마했나..
가정과 건강
작성일
2024-11-26
83
자아를 내어 주는 삶
어느 날 2학년 담임 선생님에게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었다. 한 아이가 시험에서 95점을 받았는데도 울고 있었다. 주변을 보니 다른 아이들도 90점 이상의 성적을 받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선생님이 이유를 묻자 “엄마한테 혼날 거예요.”라..
가정과 건강
작성일
2024-11-19
82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비만 탈출 프로젝트
안녕하세요. 『가정과 건강』 특집 기사에서 만나게 된 트레이너 정은혜입니다. 요즘 나이와 상관없이 많은 분이 다이어트, 건강 회복, 근력 강화 등 다양한 고민을 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고민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이렇게 인사드리게 되었습니다. 집이나 일상생활에서도 ..
가정과 건강
작성일
2024-11-13
81
스트레스 해소, 아프리카의 얼룩말처럼
20대 대학생 A 씨는 1교시 수업을 위해 서둘러 지하철을 탔다. 평소보다 사람이 조금 많았지만 타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10분 후 갑자기 어지럽고 속이 매스껍고 식은땀이 났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숨도 잘 쉬어지지 않았다. 아버지가 심장 마비로 돌아가셨기..
가정과 건강
작성일
2024-11-05
80
재산을 증여받을 때 세금 없이 얼마까지 가능할까?
최근 상담에서 가장 많이 다루는 주제 중 하나는 부모가 자녀에게 재산을 증여할 때 적용되는 증여세법의 개정 내용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재산을 주는 사람이 살아 있을 때 재산을 무상으로 받으면 그것은 증여에 해당된다. 기존에는 부모가 자녀에게 재산을 무상으로..
가정과 건강
작성일
2024-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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