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 교육: 그 절실한 시대적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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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면서
2013년에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이 한 착한 여학생에게 종종 마실 물을 부탁했다. 학생은 밝은 표정으로 물을 떠 왔고 선생님은 그 물로 목을 축이며 수업을 했다. 어느 날 선생님은 한 학부모로부터 그 물이 화장실 양변기 물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여학생이 친구들에게 그 사실을 자랑삼아 말한 것이다. 충격을 받은 선생님은 병가를 내고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휴직하였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교육의 본질’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던져 주었다. 과연 사람에게 무엇을 먼저 가르쳐야 하는가? 현대 사회는 사람의 효용 가치를 그가 지닌 정보와 기술의 양으로 판단한다. 그래서 교육도 거기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사람이 잘못되면 그가 지닌 정보와 기술은 오히려 우리 사회를 허무는 무기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역시 무엇보다 먼저 ‘사람다움’을 가르쳐야 한다는 사회적 자각이 일어난 것이다.
인성 교육이란?
다음 해인 2014년 대한민국 국회는 세계 최초로 아주 특이한 법을 제정한다. 이름하여 ‘인성교육진흥법(Character Education Promotion Act)’이다. 이 법의 취지는 이름 그대로 다양한 교육 현장에서 ‘인성 교육’을 진흥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 법이 공포되자 찬반 논란이 제기되었다. 논란의 핵심은 국가 권력이 정신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자들은 심지어 ‘인성파괴촉진법’이라고까지 표현한다. 그러나 반대자들도 ‘인성 교육’ 자체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발적인 시민운동으로 더 강력히 전개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녕 ‘인성 교육’은 절실한 시대적 과제이다.
예전에 어른들이 종종 하던 ‘다섯 개의 사람 인(人) 자 이야기’가 있다. “사람[人]이라고 다 사람[人]인가 사람[人]이 사람[人]다워야 사람[人]이지”라는 뜻이다. 이 단순한 이야기에 인성 교육의 필요와 내용이 다 담겨 있다. ‘사람답지 않은 사람’이 있는 것이 인성 교육의 필요이고, ‘사람다운 사람’을 만드는 것이 인성 교육의 내용이다. ‘사람다움’을 추구하는 ‘인성 교육’은 오래전부터 동서양의 종교와 사상과 철학에 맥맥이 이어지고 있다. 그것은 유불선(儒佛仙)으로 대표되는 동양 사상뿐 아니라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으로 대표되는 서양 사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단적인 예를 들어 유교의 군자론(君子論), 기독교의 성화론(聖化論), 헬라 철학의 중용론(中庸論)이 모두 ‘인성 교육’에 닿고 있다. 이 모든 가르침에 담겨 있는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교육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
인성 교육의 가능성
‘인성 교육’을 이해하기 위해 우선 구분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종종 인성과 혼동되는 개념인 ‘성격’이다. 성격(personality)은 한 개인의 성향을 나타내는 큰 틀로 그 사람이 외향적인지 내향적인지 신중한지 도전적인지 등을 규정하는 특징이다. 요즘 젊은 층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MBTI가 성격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도구이다. 그러니 성격은 타고난 ‘기질(氣質)’에 초점을 맞춘다. 반면에 인성(character)은 한 개인이 지닌 도덕적 가치와 행동 지침과 관련된 것이다. 정직함, 예의 바름, 끈기, 책임감 등 그 사람이 추구하는 신념이나 원칙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 인성은 훈련과 학습을 통해 잘 양육된 ‘자질(資質)’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성격 교육’이란 말은 잘 쓰지 않는다. ‘성격’은 타고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성 교육’은 흔히 쓴다. ‘인성’은 교육으로 길러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성격과 인성은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다. 인성은 선천적인 기질에 더해 개인이 겪는 경험, 지식, 습관에 의해 형성된다. 성격 유형에 따라 특정한 도덕적 가치가 두드러질 수 있으며,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성격이 변화하기도 한다. 이처럼 성격과 인성은 긴밀히 연결되어 완전히 분리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차이를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인성 교육’이 시작된다.
나오면서
반복하지만 인성은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옳은 것을 선택하고, 추구하고, 개발하는 포괄적인 인격적 요소이다. 교육을 통해 이런 요소를 길러야 한다는 사회적 자각은 우리뿐만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구미도 마찬가지이다. 그 결과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아예 새로운 학위 과정이 개설되었다. 이 모든 현상은 ‘인성 교육이 절실한 시대적 관제’임을 웅변하고 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자 인성 교육이 강력한 ‘개인적 과제’로 다가왔다. 그래서 나름대로 공부를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남편을 따라온 영국의 대학교에서 ‘인성 교육학’을 만났다. 나를 끌어당기는 그 가치의 힘이 너무 컸기에 여러 부담을 무릅쓰고 그 과정에 뛰어들었다. 이제 이런저런 교육 현장에서 초·중·고·대학생들을 만난 경험과 두 아이를 키우면서 느낀 소회, 무엇보다 ‘인성 교육학’을 공부하면서 느낀 고민과 희망을 몇 회에 걸쳐 전하며 함께 생각할 기회를 만들어 보고자 한다.
- 김성이 영국 버밍엄대학교 인성교육학 석·박사 과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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