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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사미디어 등록일 2024.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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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이 존경하는 세 영웅

우리나라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일본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이 들 수밖에 없다. 대표적으로 <임진왜란>과 <일제 강점기>의 역사만 돌아보아도 일본은 우리 민족을 침략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잔인한 만행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반일 감정이 앞설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종종 일본 역사에 대해 배우기를 꺼리거나 일본인이 존경하는 영웅들에 대해 별로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역사를 외면하는 것만이 최선은 아니며, 객관적인 입장에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관에 대해 이해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나 자신도 이 글을 쓰면서 거부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일본 역사에 대한 객관적인 직면은 건강한 역사관을 갖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인들이 존경하는 세 영웅은 센고쿠 시대(1467~1573)에 살았던 오다 노부나가(1534~1582),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장본인인 도요토미 히데요시(1536~1598) 그리고 에도 바쿠후(江戶 幕府)의 초대 쇼군(將軍)인 도쿠가와 이에야스(1543~1616)이다. 이들은 우리 민족의 영웅인 충무공 이순신 장군(1545~1598)과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다. 


일본인이 존경하는 세 영웅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서로 다른 리더십을 가지고 있었다. 이른바 ‘울지 않는 두견새 논쟁’이 대표적인 예이다. 일본인들은 위에 언급한 세 사람의 성격을 ‘두견새가 울지 않을 때의 반응’에 비유했다. 오다 노부나가는 “두견새가 울지 않는다면 죽여 버려라!”라고 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두견새를 울게 만들어 버리겠다!”고 했으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두견새가 울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다 한다. 


불같은 성격의 오다 노부나가는 난세를 평정할 수 있는 비결을 ‘무력’으로 꼽았을 만큼 거침없는 성격의 주인공이었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겼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타협과 처세’를 무기로 삼았으며, 차분한 성격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기다림과 인내’를 리더십의 덕목으로 삼았다. 



세 원숭이

몇 해 전, 일본을 여행하던 중 도쿄에서 북쪽으로 약 2시간 운전해서 도키치 현 닛코(日光)에 위치한 한 온천을 방문했다. 온천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건축물이 있다고 해서 여행 일정에는 없었지만 우연히 들렀는데 그곳이 바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영묘(靈墓)가 있는 도쇼구(東照宮)였다. 동조궁 입구의 한 현판에는 세 마리의 원숭이 조각상이 있었다. 가장 왼편에 있는 원숭이는 귀를 막고 있었고, 가운데에 있는 원숭이는 입을 막고 있었으며, 오른편에 있는 원숭이는 두 손으로 자기의 눈을 가리고 있었다. 


공자도 논어(論語)에서 “예가 아닌 것은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며, 말하지도 말고, 행하지도 말라(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行).”고 했다. 아마도 논어를 통해 널리 알려진 만큼 일본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전반에서 인지도가 있는 개념으로 일본에서는 원숭이와 연결시킨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리더십이 ‘기다림과 인내’로 정의된 것이 <세 원숭이 조각상>과 무관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임계점(Critical point)

지금까지 지내 온 삶을 잠시 돌아보면 ‘기다림과 인내’가 우리 인생에 많은 유익을 가져다준다는 걸 알면서도 인내하거나 기다리지 못해서 중도에 포기하고 좌절감을 맛볼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물은 결코 99도에서는 끓지 않는다. 99도까지 끓지 않던 물을 수증기로 바꿔 놓는 것은 마지막 1도의 차이다. 모든 물질에는 임계점이 있는데 이 임계점을 넘지 않으면 구조와 성질이 바뀌지 않는다. 물이 섭씨 100도에 도달해야 비로소 끓기 시작하고 기체로 바뀌는 것처럼 완전히 차원이 다른 영역으로 가기 위해서는 임계점을 넘어야 한다. 


종종 우리 삶에서 꿈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 조금만 더 기다리고 인내한다면 우리는 우리 삶의 또 다른 영역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99도가 될 때까지 아무런 변화가 없던 물이 갑자기 끓게 되는 것처럼 종종 우리 삶에서 우리가 목표하고 꿈꿔 왔던 일들이 도무지 진전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 ‘그동안 공들여 왔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라는 의심이 들 때가 있다. 바로 그때 조금만 더 노력을 기울이면서 기다리고 참아 본다면 예상치 못했던 놀라운 성취를 맛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 당장 내가 기울인 노력만큼 가시적인 결과나 변화가 없어도 조금만 더 인내하면 우리는 머지않아 기대하고 바라던 소망을 이룰 수 있게 될 것이다. 


등산을 하고, 마라톤을 하며 거의 목표 지점에 이르렀을 때 공통적으로 던지는 질문이 있다.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어요?” “골인 지점까지는 얼마나 남았나요?” 그때마다 들려오는 대답은 “정상까지 거의 다 왔어요. 조금만 더 힘내세요.” “골인 지점까지 얼마 안 남았어요. 조금만 더 힘내세요!”이다. ‘힘들다’고 해서 정상을 앞두고 발길을 돌려 하산한다면, ‘힘들다’고 해서 골인 지점을 불과 얼마 남겨 두지 않고 달리기를 포기한다면 얼마나 안타깝겠는가! 조금만 더 힘을 내면 산 정상에 오를 수 있고, 골인 지점을 통과해 목에 완주 메달을 걸 수 있건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정상 부근에서 또는 골인 지점에 가까이 이르러서 포기하고 마는지 모른다. 


조금만 더 견디고 인내해 보자! 일찍이 18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작가인 사무엘 존슨(Samuel Johnson, 1709~1784)은 “부지런함과 기술로 불가능한 것은 거의 없다. 세상의 위대한 업적은 대개 힘(strength)이 아닌 인내(perseverance)로 일궈진다.”라며 <인내하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한 바 있다. 


어느덧 우리는 지금 2024년 한 해의 끝자락에 서 있다. 조금만 더 참아 보자! 조금만 더 힘을 내보자! 성경의 기자 야고보도 우리에게 충고하며 격려하고 있지 않은가!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야고보서 1장 4절)


​박재만 ​시조사 편집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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